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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해남 땅 구석구석] ‘남도의 동백꽃’으로 뜨겁게 살다 간, 시인 김남주와 삼산 봉학리 생가
사람들은 그를 ‘한국의 체 게바라’라고 했다. 그럴 만도 했다. 대중에게 그를 각인시킨 시집의 제목이 섬뜩했다. 나의 칼 나의 피!시인 김남주(金南柱, 1946~1994). 짐작한 대로 그에 대한 수사(修辭)는 강렬하다. 민족시인·전사(戰士)시인·혁명
해남군민신문   2017-03-30
[다시 보는 해남 땅 구석구석] 검덕굴’, 그 이름에 숨은 뜻은…
사람들은 연정리와 월호리가 경계를 이루는 골짜기를 ‘검덕굴(골)’이라 불렀다. 검덕굴이라니. ‘검(儉)’은 ‘검다’는 의미로 단군왕검에서와 같이 ‘우두머리’의 의미가 있다.즉, ‘왕검(王儉)’의 ‘검’은 ‘검다’, ‘둘러싸다’에서 나온 ‘감(아래아(,
해남군민신문   2017-03-16
[다시 보는 해남 땅 구석구석] 천상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비밀의 정원, 땅끝조각공원 & ㄱ미술관
그 해 겨울은 유난히 쓸쓸했다. 수수께끼처럼 풀리지 않았던 청춘의 방정식.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떠도는 나그네 되어 무작정 찾아간 광주(光州). 그곳에서 친구인 N과 만났을 때. 그는 연인인 S와 함께였다. 스무 살 시절. 수원에서 모임이 있던
해남군민신문   2016-06-10
[다시 보는 해남 땅 구석구석] 명량해전 뒤에 숨어 있는 또 하나의 역사, ‘어란 여인’을 말한다
‘어란(於蘭) 여인’은 허구(虛構)다. 적어도 이 이야기는 이러한 전제로 시작해야 맞다. 10년 전인 2006년. 송지 산정리에 거주하는 박승룡 선생이 ‘어란 여인’을 일반에 공개하자, 이의 실체를 둘러싸고 말들이 많았다. 호사가들은 ‘실존인물이냐,
해남군민신문   2016-05-27
[다시 보는 해남 땅 구석구석] ‘충신골’ 삼산면 충리 이유길 유허비와 오충사
해남읍 용정리에 오충사(五忠祠, 해남군 향토유적 제16호)가 있다. 이름 그대로 다섯 충신을 모신 사우다. 마을의 이름을 따 ‘용정사(龍井祠)’로도 불리는 오충사는 숙종 38년(1712)이순신을 배향한 충무사로 건립됐다. 이어 영조 16년(1740)에
해남군민신문   2016-04-03
[다시 보는 해남 땅 구석구석] 봄이 오면 가지마다 꽃 잔치 흥겨운 곳, 산이 보해매실농원
무슨 바람이 불어서였을까. 황사가 심하게 몰려온 날 오후. 매화꽃을 만나러 산이면 예정리에 있는 보해매실농원을 찾아갔다. ‘춘설(春雪)이 난분분하니’도 아니고, 하필이면 황사 낀 날이라니. 모처럼의 봄나들이가 왠지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과연 매화꽃을
해남군민신문   2016-04-03
[다시 보는 해남 땅 구석구석] 속도에 밀려난 쓸쓸한 상점들의 거리, 계곡 둔주포 & 덕정리
계곡의 모든 길은 둔주포로 통한다? 그랬다. 둔주포(屯舟浦)를 빼놓고는 계곡면을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넘실대던 바다가 뭍으로 바뀌기 전, 계곡면의 유일한 포구였던 둔주포는 번성한 장시(場市)로서 제몫을 톡톡히 해냈다. 지금이야 길도 좋아지고 새로운 길
해남군민신문   2016-04-03
[다시 보는 해남 땅 구석구석] “황 선생이 쩌그 저 방에서 ‘장길산’을 썼지라.”
2003년 이맘때쯤이었을 것이다. 친구와 함께 수성리 길을 걸어갈 때 그가 말했다. “저기 커다란 느티나무가 서있는 집이 소설가 황석영이 살던 집이라네.”황석영(黃晳暎)이 해남에 머물며 대하소설 ‘장길산(張吉山)’을 집필했다는 이야기는 익히 알고 있었
해남군민신문   2016-02-28
[다시 보는 해남 땅 구석구석] “부처의 법이 수레바퀴처럼 끝없이 이어지리니...”
우리나라의 오래된 절집들을 다니다 보면 창건한 스님의 대개가 원효나 의상대사, 또는 자장율사이거나 도선국사인 경우를 보게 된다. 그 분들의 도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어서 동서남북 가히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그런데 뜻밖에도 고운(孤雲) 최치
해남군민신문   2016-02-28
[다시 보는 해남 땅 구석구석] 국보가 된 ‘자화상(自畵像)’의 문인화가가 살던 곳
누구냐 넌?장판교(長坂橋)에서 단기(單騎)로 조조(曹操)군과 마주 선 장비(張飛)의 모습이 이런 얼굴은 아니었을까. 유비(劉備)의 아들 아두(阿斗)를 품에 안은 조자룡(趙子龍)이 조조 군의 포위를 필사적으로 뚫고 장판교를 향해 말을 달렸다. 이때 다리
해남군민신문   2016-02-28
[다시 보는 해남 땅 구석구석] “여보게. 차나 한 잔 하고 가게.”
일지암(一枝庵)은 초의(草衣, 1786~1866)선사가 홀로 ‘다선일여(茶禪一如)’를 생활화하기 위해 그의 나이 서른아홉에 짓고 살던 암자다. 초의는 일지암을 짓기 훨씬 전에 금강곡(金剛谷)의 가장 깊은 골짜기에 띠집을 짓고 살았다. 당시 주변은 병풍
해남군민신문   2016-02-27
[다시 보는 해남 땅 구석구석] 무소유의 성지, 우수영 법정 스님 생가
대학 1학년 때였다. 무슨 과목이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20대 후반의 여자 시간강사였는데 첫 수업시간에 칠판에 ‘무소유’ 세 글자를 써놓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선 법정(法頂, 1932~2010) 스님을 이야기 하는 것이었다. 당시 책은 문고판으로 나와
해남군민신문   2016-01-23
[다시 보는 해남 땅 구석구석] 우수와 비애의 유랑시인 옥봉 백광훈과 옥천 옥산서실
옥봉(玉峰) 백광훈(白光勳,1537~1582), 고죽(孤竹) 최경창(崔慶昌,1538~1583), 손곡(蓀谷) 이달(李達,1539~1612로 추정). 사람들은 그들을 가리켜 ‘삼당시인(三唐詩人)’이라고 부른다. 고려시대 송나라 문화를 적극 수용하며 조선
해남군민신문   2016-01-22
[다시 보는 해남 땅 구석구석] ‘신비의 바닷길’이 열리는 곳, 송지 대죽리
중학교 시절. 학교에서 단체관람으로 보았던 영화 ‘십계(十戒)’는 성경 ‘출애굽기’에 나오는 ‘모세의 기적’을 다루고 있다. 모세가 파라오의 허락을 얻어 이집트로 끌려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마음이 변한 파라오의 군대가 추격해
해남군민신문   2016-01-22
[다시 보는 해남 땅 구석구석] “해남에도 철비(鐵碑)가 있었네.”
내게 인상적으로 남아있는 철비(鐵碑)는 경북 울진과 봉화를 잇는 십이령(十二嶺), 열두 고갯길에 있는 보부상 불망비다. 십이령은 동해 바닷가 마을인 경북 울진 흥부 장터에서 하당을 지나 두천을 거쳐 크고 작은 열두 고개를 넘어 영남 내륙인 봉화 소천장
해남군민신문   2015-12-31
[다시 보는 해남 땅 구석구석] 별난 상점이 있는 거리, ‘땅끝해뜰마을’ 영전리
“저물어가는 을미년(乙未年) 세모(歲暮)에 북평면의 끝자락, 땅끝의 관문격인 영전리(永田里)를 찾았다. 이번 나들이 길에는 박승룡, 김천수 두 분 선생께서 기꺼이 동행해 주셨다. 송지 산정 사시는 박 선생은 전남도 교육위원을 두 차례 역임한 교육계의
해남군민신문   2015-12-27
[다시 보는 해남 땅 구석구석] 갈대와 철새의 황홀한 군무
“고천암(庫千岩) 하면 먼저 생각나는 것이 갈대였다. ‘고천후조(庫千候鳥)’라 해서 해남8경으로 고천암 철새를 꼽고 있지만 내가 먼저 만난 것은 갈대였고. 그래서인지 내게 있어 고천암 갈대는 강렬한 영상으로 머릿속에 남아있다. 2003년 12월 성탄
해남군민신문   2015-12-27
[다시 보는 해남 땅 구석구석] ‘이곳에 가면 겨울은 없다’ 관두산 용굴동 풍혈
산림청은 지난 8월 화산 관두산(館頭山,178m) 용굴동 풍혈을 국가 산림문화자산으로 지정했다. ‘산림문화자산’이란 산림과 함께 살아온 선조의 생활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역사적·생태적·경관적·정서적으로 보존할 가치가 큰 유·무형의 자산을 말한다. 국가
해남군민신문   2015-12-10
[다시 보는 해남 땅 구석구석]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삼국유사’의 ‘가락국기’를 보면 다음과 같은 기사가 보인다.‘저는 아유타(阿踰陀)국의 공주인 허황옥(許黃玉)이라고 합니다. 부모님 꿈에 상제께서 “가락국왕 수로는 하늘에서 내려 보내 왕위에 오르게 했으나, 아직 배필을 정하지 못했으니 공주를 보내라”
해남군민신문   2015-12-05
[다시 보는 해남 땅 구석구석] ‘누구의 무덤일까?’ 해남 옥천 고분군(성산 만의총)
옥천 성산리(星山里)에 있는 만의총(萬義塚)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문득 남원 ‘만인의 총’을 떠올렸다. 정유재란 당시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한 민·관·군을 합동으로 매장한 ‘만인의 총’은 이름 그대로 만 명의 무덤이다.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만의총
해남군민신문   2015-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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