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죽리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요소를 골고루 갖춘 숨은 명소라 할 수 있다. ‘신비한 바닷길’과 태양의 ‘오메가 현상’. 그리고 섬 사이로 지는 일몰. 이는 자연이 선사하는 3종 선물세트다.

중학교 시절. 학교에서 단체관람으로 보았던 영화 ‘십계(十戒)’는 성경 ‘출애굽기’에 나오는 ‘모세의 기적’을 다루고 있다. 모세가 파라오의 허락을 얻어 이집트로 끌려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마음이 변한 파라오의 군대가 추격해오고. 여호와 하나님의 힘을 빌려 지팡이를 내리쳐 홍해를 가르는 모세의 기적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동, 그 자체였다. ‘십계’를 비롯해 ‘벤허’, ‘쿼바디스’와 같이 ‘스펙타클’한 영상미가 돋보이는 대작이 잇달아 영화관에 걸리던 시절. 컴퓨터그래픽이 발달한 요즘의 시각으로 보자면 조잡한 영상일 수도 있겠지만 그 시절, 그 영화들은 ‘추억의 명화’로 나에게 기억되고 있다.해남에도 하루 두 번 ‘모세의 기적’이 재현되는 곳이 있다. 송지 대죽리 앞바다가 바로 그곳이다. 대죽리 앞바다에는 마치 쌍둥이와 같은 죽도(대섬)와 증도(시루섬), 두 개의 섬이 나란히 사이좋게 떠있다. 두 섬은 간조사이에 노루목에서 죽도사이 1.2km가 연륙이 된다. 죽도는 사리 때 바닷길이 열리지만 증도는 간조 때마다 바닷길이 열린다.

 

제부도에 대한 추억

경기도 화성시에 제부도라는 섬이 있다. 한국판 원조 ‘모세의 기적’으로 유명세를 탄 섬이다. 나는 그 섬을 즐겨 찾았다. 지금은 여느 유원지와 다름없이 번잡한 섬이 됐지만 예전 내가 처음 찾아갔을 때는 그야말로 한적한 풍경이었다.

섬으로 진입하는 길목에 간이매점 하나가 물때에 맞춰 문을 열었을 뿐, 방문객의 발길도 뜸한 그저 그런 어촌에 지나지 않았다. 90년대 초반까지였다. 당시 만 해도 제부도로 가는 길은 구불구불 산길을 타고 넘어야했던 비포장 길이었다. 비가 내리고 나면 진흙탕 길로 변해 커브를 돌 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자칫 도랑으로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그러던 것이 도로가 포장되면서 급속도로 변하기 시작했다.

조립식 간이매점 하나 있던 길목으로는 상가가 형성됐고 해수사우나 시설까지 들어섰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제부도로 들어가는 길은 콘크리트로 포장이 됐고, 제부도의 풍광이 좋은 곳으로는 횟집과 펜션, 모텔이 들어찼다. 여름철에나 알음알음으로 찾아가던 제부도는 사철 즐겨 찾는 수도권의 관광명소로 자리매김을 한 것이다.

내가 제부도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고교 시절로 기억된다. 당시 내가 다니던 교회에서는 청년부 여름 수련회를 제부도로 정해 놓고 다녔다. 바다가 갈라지고 길이 드러나 걸어서 들어갈 수가 있어 마치 성경 ‘출애굽기’에 나오는 모세의 기적을 연상시킨다는 것이었다. 그

랬다. 야영할 텐트와 취사도구까지 챙겨들고 들어가야 했던 제부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탈출해 홍해를 건넌 것만큼이나 고난의 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청춘 남녀들의 행복한 동행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큰 기쁨으로 충만했으리라.

영화 ‘십계’에서 주인공 모세가 지팡이를 들어 홍해를 갈라 하나님의 힘을 보여줬을 때 느꼈던 전율을 제부도 바닷길에서 보게 되다니. 그 길을 걷는다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다는 기쁨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영혼이 순수했던 시절의 바다는 내게 축복과도 같은 감동을 선사했다.

그리고 내가 신문사에서 주말 레저판을 맡으면서 ‘가볼만한 곳’으로 제부도를 쓸 기회가 있었다. 역시 90년대 초였는데 나는 ‘제부(濟扶)’라는 섬 이름을 ‘부소(扶蘇)가 바다를 건넜다’라고 해석을 했다. 부소라면? 그렇다. 진시황의 장자로 몽염과 함께 만리장성을 축조하라는 명을 받고 나가 있다 조고와 이사의 계략으로 죽음을 당한 비운의 왕자가 아니던가.

그런데 뜬금없이 부소라니. 역사적인 사실은 그렇다 쳐도 부소와 관련한 전설은 경남 남해 금산에 가면 만날 수가 있다. 금산 정상에서 걸어가면 만나는 부소대가 그것인데 여기에는 두 가지의 전설이 있다. 하나는 진시황의 아들 부소가 유배를 왔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단군의 셋째아들 부소가 이곳에서 천일기도를 올렸다는 전설이 그것이다.

‘부소’라는 이름은 동명이인이고, 사실 확인도 할 수 없는 전설에 지나지 않지만 남해 먼 금산 꼭대기의 바위에 부소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무슨 의미이겠는가. 1987년 봄에 그곳을 찾았던 나는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제부도에 부소의 이름을 차용했던 것이다.

 

곳곳에서 관측되는 ‘해할(海割) 현상’

제부도와 같이 우리나라에서 바다가 열리는 곳은 진도군 고군면 회동리 앞바다, 여천군 화정면 사도, 충남 보령군 웅천면 관당리 무창포 해수욕장 앞바다, 전북 부안군 변산면 운산리 하도 등 수십 군데에서 보고되고 있다.

이처럼 바다가 갈라지는 ‘해할(海割, Crossing the Sea) 현상’이 많이 발견되는 것은 우리나라 남해안이나 서해안이 고조와 저조의 조차가 다른 나라보다 크기 때문이다. 바다 갈라짐 현상은 조수간만의 차에 따라 해수면이 낮아지는 저조기에 주변보다 해저 지형이 높은 곳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 것이다.

바닷길은 육지와 섬, 섬과 섬 사이에 파도와 조류의 영향으로 해저 언덕이 형성된 곳에 생긴다. 저조기에 바닷길이 만들어지면 걸어서 육지와 섬, 섬과 섬 사이를 건널 수가 있다.

이러한 바다 갈라짐 현상이 두드러진 곳은 제부도다. 제부도와 서신면 송교리 구간 2.3km의 물길은 하루에 두 번 썰물 때면 어김없이 갈라져 우리나라에서 가장 잦은 ‘모세의 기적’을 보여준다. 썰물에 물길이 드러나기 시작해서 밀물로 다시 덮일 때까지 6시간 동안 바닷길이 열리는데 그 시각은 날마다 조금씩 다르다.

이곳은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제부도 사람들이 허벅지까지 빠져가며 육지로 건너가는 뻘 길이었으나 이제는 자동차도 다닐 수 있는 ‘물속의 도로’가 되었다. 제부도는 예로부터 육지에서 멀리 바라보이는 섬이라는 뜻에서 ‘저비섬’ 또는 ‘접비섬’으로 불렸다.

그러다 조선시대 송교리와 제부도를 연결한 갯벌 고랑을 어린아이는 업고, 노인은 부축해서 건넌다는 의미에서 ‘제약부경(濟弱扶傾)’이라 했는데 제부도는 여기에서 이름이 유래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 바닷길이 열리면 바지락 등 갯것을 캔다. 대죽리 조개잡이 체험장’이라는 조형물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이 간혹 있지만 그대로 지나칠 정도로 소홀히 다뤄지고 있는 것이 대죽리 ‘신비의 바닷길’의 현주소다
소홀히 다뤄지는 해남의 명소

해양수산부 국립해양조사원이 지난해 3월 공개한 ‘바다 위를 걷다, 신비의 바다 갈라짐’ 책자를 보면, 국내에서 바다 갈라짐이 나타나는 곳은 제부도와 진도를 비롯해 인천 실미도, 소야도, 서산 웅도, 보령 무창포, 부안 하섬, 고흥 우도, 통영 소매물도, 창원 동섬, 제주 서귀포 서건도 등 11곳으로 유감스럽게도 대죽리 앞바다는 언급조차 되고 있지 않다.

일몰이 아름답고 매년 여름 조개잡이 체험장을 운영하고 있음에도 이러한 신비한 자연현상이 제대로 홍보조차 되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참으로 유감스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이곳은 지난 2000년부터 여름철에 하루 두 번 바닷길이 열리는 썰물 때 조개잡이 체험장을 운영하고 있다.

주민들도 물때를 맞춰 바닷길이 열리면 이곳으로 나와 바지락과 굴 등 갯것을 캔다. 77번 국도를 타고 송호리 방면으로 가다보면 멀리 두 개의 섬이 그림같이 떠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대죽리 조개잡이 체험장’이라는 조형물이 있는 널찍한 주차공간에 차를 세우고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이 간혹 보이지만 대개는 그대로 지나쳐 땅끝을 찾아간다.

대섬과 시루섬이라는 나름대로의 고유한 이름마저 아는 사람이 드물 정도로 소홀히 다뤄지고 있는 것이 대죽리 ‘신비의 바닷길’의 현주소다. 이웃인 중리에는 ‘허준 유배지’가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유명세를 탄 적이 있다. 단지 드라마 세트장이 있었다는 것 뿐, 허준이 이곳 해남으로 유배를 왔었다는 어떠한 기록도 없는 허구임에도 사람들은 친절한(?) 입간판을 보고 사실로 믿기까지 했다.

단지 인기 사극의 세트장을 해남군은 관광 홍보에 이용하려 열을 올렸던 것이다. 역사적인 개연성은 명확한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외면하는 해남군이 드라마상의 허구인 허준 유배지의 홍보에 이토록 집착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 일까. 알다가도 모를 이중적인 잣대로 관광객들을 현혹시키려던 해남군의 근시안적인 행정은 허준 유배지라는 과대포장으로 고스란히 들통 나고 만 셈이다.

 

자연이 선사하는 3종 선물세트

해남군은 대죽리 조개잡이 체험장을 사진 찍기 좋은 ‘녹색명소’로 조성했다. 사진 찍기 좋은 녹색명소는 생태·문화·역사 등 자연문화자원을 활용한 사진 찍기 좋은 곳을 친환경적으로 조성해 지역 녹색관광 명소로 개발함으로써 국내관광 및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한 사업이다.

대죽리 앞바다는 12월 27일부터 1월 5일까지 죽도와 증도 사이로 지는 일몰이 장관이다. 바다에 수증기가 많을 때에는 ‘오메가 현상’도 관찰된다. 태양이 그리스 문자인 오메가(Ω)처럼 보이는 오메가 현상은 대기역전층이 형성된 맑고 추운 날 관측되는 ‘빛의 굴절 현상’으로 사막의 신기루와 같은 원리다.

원인은 대기의 역전층이 만들어져 일어난다. 보통 대기는 위로 올라갈수록 온도가 낮아진다. 그러나 가끔 수평선 바로 위에서 윗부분이 아랫부분보다 온도가 높게 될 때가 있다. 그러면 햇빛이 꺾이는 정도가 달라진다. 태양의 중간 부분이 더 많이 꺾여 수평선 쪽으로 태양의 절반 아랫부분이 거울에 비친 것처럼 하나 더 보인다. 이 때문에 태양의 전체 모양이 마치 오메가 글자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처럼 대죽리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요소를 골고루 갖춘 숨은 명소라 할 수 있다. ‘신비한 바닷길’과 태양의 ‘오메가 현상’. 그리고 섬 사이로 지는 일몰. 이는 자연이 선사하는 3종 선물세트다.

 

스토리텔링이 필요해

진도 신비의 바닷길은 고군면 회동리와 의신면 모도리 사이 약 2.8km의 바닷길이 40여m의 폭으로 바다 속에 길이 만들어진다. 매년 이 현상을 보기 위해 국내외 관광객 100여 만 명이 몰려와 바닷길이 완전히 드러나 있는 약 1시간의 기적을 구경한다.

전세계적으로 일시적인 해할 현상을 보기 위해서 가장 많은 인파가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이곳 진도 신비의 바닷길은 1975년 주한 프랑스 대사 피에르 랑디가 진도로 관광을 왔다가 이 현상을 목격하고 프랑스 신문에 소개하면서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됐다. 1996년에는 일본의 인기가수 덴도 요시미가 이를 주제로 한 ‘진도이야기(珍島物語)’라는 노래가 130만 장이라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일본인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진도 신비의 바닷길 축제는 1978년 1회를 시작으로 벌써 40년 가까이 이어오며 지역의 대표축제로 자리를 잡았다. 이에 비해 해남은 거의 무명에 가깝다. 진도군은 ‘신비의 바닷길’에 ‘뽕 할머니’라는 스토리텔링을 입혀 성공을 거뒀다. 스토리텔링에 인색한 해남군으로서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 가치를 제대로 활용조차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다가 열리는 대죽리에도 ‘백마를 타고 오는 초인(超人)’과 같은 감동의 스토리텔링을 입혀봄이 어떻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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