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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에 밀려난 쓸쓸한 상점들의 거리, 계곡 둔주포 & 덕정리이해덕(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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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4.03  10:3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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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시절 둔주포는 계곡면의 중심지였고 해남의 대표적인 포구마을이었다. 교통 중심지에 위치한 덕에 둔주포는 식당과 슈퍼는 물론 사진관이며 농약상, 이발관, 미장원, 다방 등 다양한 종류의 상점들이 들어설 정도로 상업이 번성했다.

계곡의 모든 길은 둔주포로 통한다? 그랬다. 둔주포(屯舟浦)를 빼놓고는 계곡면을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넘실대던 바다가 뭍으로 바뀌기 전, 계곡면의 유일한 포구였던 둔주포는 번성한 장시(場市)로서 제몫을 톡톡히 해냈다.

지금이야 길도 좋아지고 새로운 길도 생겨났지만 뱃길로 대처를 오가던 시절에 계곡면은 상면과 하면으로 나뉠 정도로 생활의 터전이 갈려 있었다.

대체로 상면은 비곡면(比谷面) 지역으로 우리말로 빌메밑 골짜기를 가리켰다. 골이 깊은 곳이라는 의미였다. 이에 비해 비교적 넓은 들을 가진 하면은 청계면(淸溪面) 지역으로 둔주포를 중심으로 북적거렸다.

1914년 군, 면 통폐합에 따라 청계면과 비곡면이 합쳐져 계곡면이 되고서도 이러한 지역 간에 보이지 않는 나뉨 현상은 지금도 원주민들 사이에서는 회자되고 있을 정도다. 둔주포는 자연부락으로 법정리인 계곡면 덕정리(德鼎里)에 속한다.

 

   
▲ 없는 것 빼고는 다 있을 것 같은 둔주슈퍼, 번성했던 그 시절을 불티나게 팔렸을 ‘유엔표 팔각성냥’이 아직도 쌓여있다.
둔주슈퍼의 유엔표성냥

마산면 맹진마을에서 다리 하나를 건너면 둔주포에 닿는다. ‘맹진노두(맹진나루)’가 있던 이곳 월평천은 만조 때는 나룻배로 하천을 건너다녔으나 간조 때는 배를 움직일 수가 없어 노둣돌을 놓았는데 돌의 크기가 2m나 되는 큰 돌이었다. 이 돌은 징검다리와 같은 역할을 했다. 지금은 맹진교가 놓여 맹진과 둔주포를 잇고 있지만 바다였던 시절에는 젓배와 여객선이 드나들던 선창이 있던 곳이다.

둔주포와 맹진, 북창은 선창으로 북적이던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흔적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한적한 농촌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그야말로 산천의구란 말은 옛 시인의 허사일 뿐임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둔주포로 들어서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둔주슈퍼다. 없는 것 빼고는 다 있을 것 같은 둔주슈퍼는 여느 농촌의 상점이 그렇듯 만물상이다. 겉보기와는 다르게 안으로 들어서면 꽤 널찍한 공간에 온갖 잡화들이 진열돼 있다. 그 중에서 통에 든 성냥이 눈에 띈다. ‘유엔표 팔각성냥이다. 지금은 사양산업으로 사라졌지만 한때 국내의 성냥공장은 30여 곳이나 됐다. 유엔표(유엔성냥아리랑표(조일성냥공장비사표(남성성냥기린표(경남산업사돈표(영화인촌), 그리고 지난 2011년 말 마지막으로 문을 닫은 경북 의성의 향로표(성광성냥)가 그것이다.

인천에서 대한성냥공장이 쌍노루표를 제일 먼저 생산한 것이 계기가 돼 인천에 성냥공장~’이라는 노래가 세간에 유행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성냥 매출이 급격히 떨어진다. 과거에는 다방에 앉아 성냥개비로 탑을 쌓기도 하고 담배도 많이 피웠다. 석유곤로를 켤 때도 성냥이 필요했다. 그런데 일회용 라이터가 나오고, 가스는 자동 점화되고, 난방은 전기로 하는 세상이 되니 성냥을 쓸 일이 없어졌다.

이젠 구시대의 유물과도 같은 성냥을 이곳에서 만나다니. 40년 된 슈퍼를 운영하고 있는 김광림 아주머니는 아직은 라이터를 사용할 줄 모르는 노인네들이 성냥을 찾는다고 했다. 지난해 간판이 바람에 떨어져버린 뒤로 아직까지 간판 없이 그냥 영업을 한다는 돈주슈퍼 아주머니는 어쩔 수 없어문을 열고는 있지만 그래도 주말이면 가학산 휴양림을 찾는 손님들이 물건을 사간다고 근황을 들려준다.

 

포구로서 번성했던 둔주포

둔주포는 계곡면과 옥천면의 내륙으로 깊숙이 연결돼 있기 때문에 일찍부터 해상교통이 발달했다.

예전 산이, 마산, 계곡과 옥천지역 일대는 오호만(烏湖灣) 연안권으로 계곡천 상류지역인 선진 마을과 옥천천 상류인 백호 마을까지 바닷물이 넘실거렸다. 지금은 내륙 깊숙한 곳에 있는 이들 마을에서는 지하수를 파면 염분이 나온다고 할 정도로 땅은 바다였던 기억들을 갖고 있다. 이러한 지리적인 이유로 둔주포는 북창과 공세포와 더불어 한때 포구로서 번성했다.

둔주포는 계곡면이 바다와 접했던 유일한 포구였다.

지금은 폐교가 된 계곡중학교와 초등학교, 농협 둔주지소 등 면소재지에 있어야할 관공서들이 이곳에 있다. 지금은 빈 상가가 즐비하지만 한때 5일장이 섰고 포구가 있어 항상 사람들로 붐볐던 둔주포다. 둔주슈퍼 앞이 장이 섰던 곳이며 다리 건너 맹진쪽으로 우시장이 섰다. 이곳 우시장은 옥천 이일시와 더불어 쌍장(雙場)으로 유명했다.

이처럼 한 시절 둔주포는 계곡면의 중심지였고 해남의 대표적인 포구마을이었다. 교통 중심지에 위치한 덕에 둔주포는 식당과 슈퍼는 물론 사진관이며 농약상, 이발관, 미장원, 다방 등 다양한 종류의 상점들이 들어설 정도로 상업이 번성했다.

이러한 둔주포의 영화는 인근 북창에 1930년대 해남 최초의 변전소가 들어섬으로써 해남에서 가장 먼저 전기의 혜택을 보게 된 영향도 무관하지 않다.

 

어주에서 반가의 가양주가 된 진양주

진양주(眞釀酒)는 찹쌀과 누룩과 물로 빚은 황금빛이 도는 약주다. 진양주는 200년 전 궁녀 최씨가 궁궐을 나온 뒤에 영암 덕진면에 광산 김씨 집안의 소실로 들어오면서 민가에 전해졌는데, 광산 김씨 집안의 딸이 이곳 덕정리로 시집오면서 해남 술이 됐다. 임금님이 마시던 어주(御酒)가 반가(班家)의 가양주가 돼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199310월 전남도무형문화재 제25호로 지정됐다. 진양주는 경주교동법주와 더불어 약재가 들어가지 않은 한국의 대표 술로 꼽힌다. 진미(眞味)라 불리는 찹쌀로만 빚은 술이라 진양주라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해남 진양주의 기능보유자인 최옥림은 영암 군서면 동구림리에서 이곳 덕정리 장흥 임씨 집안의 임종모와 결혼한 뒤 시어머니로부터 진양주 제조 비법을 배웠다. 최씨 궁인을 후실로 맞은 것으로 전해지는 김권(金權)은 헌종 때 이조좌랑과 사간 벼슬을 지낸 뒤 낙향한 인물로, 최옥림의 시증조모가 김권 집안에서 덕정리로 시집온 덕진 광산 김씨다.

진양주는 찹쌀과 누룩만으로 빚은 전통 약주로, 쉽게 취하지 않으면서도 과음해도 뒤끝이 깔끔해 한번 마셔본 사람은 다시 찾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의 명주로 손꼽힌다. 탁월한 향과 달착지근하면서 한 없이 당기는 맛을 지닌 진양주는 애주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각종 품평회에서 명주로 꼽히고 있다. 진양주는 지난 2009년 제2회 대한민국 전통주 품평회에서 약주 부문 최고상인 금상을 받았다. 같은 해 6월에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OECD 정상회의와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 개막식 만찬에서 건배주로 사용돼 세계인의 호평을 받았다.

 

   
▲ 장흥 임씨는 매년 3월 삼군사에서 제향을 지낸다. 장흥 당동 마을에 임호의 아버지인 정경공(貞敬公) 임의(任懿)의 유허비를 세워 장흥 임씨 발상지를 기념하기 이전에는 이곳 삼군사에 모여 문중의 결속을 다졌다. 지금은 삼군사에서 ‘예양사(汭陽祠)’로 사당의 편액을 바꿔 달았다.
장흥 임씨 삼군사

장흥 임씨는 계곡면 덕정리를 비롯해 강절리와 당산리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장흥 임씨 시조인 임호(任顥)는 중국 송나라 소흥부(紹興府)출신으로 배를 타고 한반도로 건너와 장흥의 정안현(지금의 관산읍) 천관산 아래 임자도에 정박한 후, 옥당리 당동(堂洞) 마을에 개기(開基)한 것으로 전해진다. 장흥 임씨의 조상은 도교의 시조이자, 중국 건국 신화에 중국을 처음으로 통일한 군주로서 문명의 창시자로 숭배되고 있는 황제 헌원씨(黃帝 軒轅氏)로 알려져 있다. 장흥 임씨는 고려시대 문과 급제자 12,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8, 무과 급제자 16, 생원시 급제자 7, 진사시 급제자 15명을 배출한 호남의 대표 성씨 가운데 하나다.

덕정리에는 장흥 임씨 삼군사(三君祠)가 있다. 조선 성종 때 충순위(忠順衛)를 거쳐 통례원좌통례(通禮院左通禮)를 지낸 관산군(冠山君) 임광세(任光世)와 그의 아들인 관흥군(冠興君) 희성(希聖), 그리고 손자인 예양군(汭陽君) 발영(發英) 3대에 걸친 인물을 모신 곳이다. 삼군사라는 편액을 받기까지는 손자인 발영의 공이 컸다. 발영은 임진왜란 때 종묘서령(宗廟署令)으로서 묘주(廟主)를 모시고 선조를 의주로 호종했다. 의주에서 무과에 급제, 안주목사가 되고, 이듬해 운량사(運糧使)로 군량수송에 공을 세웠다. 1604년 호성공신(扈聖功臣) 3등으로 예양군에 추봉, 형조판서에 추증됐다.

장흥 임씨는 매년 3월 삼군사에서 제향을 지낸다. 장흥 당동 마을에 임호의 아버지인 정경공(貞敬公) 임의(任懿)의 유허비를 세워 장흥 임씨 발상지를 기념하기 이전에는 이곳 삼군사에 모여 문중의 결속을 다졌다. 그러다가 1974년 삼군사 제향에서 장흥 임씨 발상지 사적을 보존하고 숭조사상을 앙양하기 위해 정경공 유허비를 건립키로 하고 이듬해 5월 현지에서 준공식을 가졌다. 지금은 삼군사에서 예양사(汭陽祠)’로 사당의 편액을 바꿔 달았다.

 

보성~임성리간 철도가 지나는 둔주포

보성~임성리간 서해선철도가 계곡면 일원을 경유함에 따라 해남지역도 철도가 깔리게 된다. 지난해 11월 우슬경기장에서 착공식을 가진 보성~임성리 철도는 지난 2003년 착공했으나 2007년 공사 중단 이후 사업비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지난해 8월 국토교통부가 추경예산으로 보성~임성리 100억 원과 더불어 서해선 복선전철 사업에 400억 원을 편성함으로써 공사가 본격화되고 있다.

보성~임성리 철도는 무안군 삼향읍 임성리~영암~해남~강진~장흥~장동~보성을 연결하는 구간으로 종전에 광주 송정리로 우회하던 것을 동서로 직선화하는 것이다. 이 구간이 완공되면 현재 목포에서 보성까지 2시간 가량 소요되던 것이 절반인 1시간으로 줄어들게 된다. 아울러 서남해안을 거쳐 부산에 이르는 보성~임성리간 철도는 호남선, 경전선, 전라선, 경부선까지 이어가는 대한민국 철도의 완결판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철도청에서 제시한 해남지역 통과 철도구간은 계곡면 여수리에서 덕정리를 거쳐 옥천면 신죽리로 이어지는 10.320km이다. 이 노선은 계곡 덕정리에서 여수리간 2km 구간은 농경지를, 신평리와 여수리 용계리 구간은 마을과 마을 사이를 통과하게 된다. 또 해남을 통과하는 철로는 주로 터널노선이 많은 것이 특징으로 터널 구간은 가학저수지 하부를 통과해 계곡 신평 610m 구간, 무이 1085m구간, 신죽덕정간 2230m, 가학잠두영암경계 2000m 등 총 5925m로 전체 통과 거리의 57,4%에 해당한다. 이로써 둔주포에도 철도가 지나가 제2의 전성기의 도래를 기대하는 분위기지만 당초 덕정리 인근에 들어설 예정이었던 해남역이 마산 월암리 뒤쪽 산 능선으로 변경된 점은 둔주포 주민들에게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만년동을 찾아서

다시 찾은 둔주포는 여전히 쓸쓸한 모습이다. 배가 드나들던 선창이 있었다는 둔주포 다리에서 멈춰 서서 바다가 뭍으로 변하는 후천개벽의 대역사를, 어찌 표지석 하나 없이 소홀할 수 있는 것인지, 잠시 망연해 하다 영암 미암방면으로 길을 잡는다. 예까지 온 김에 만년동을 가기 위해서다. 잠두리를 지나니 길가에 만년마을을 알리는 표지석과 정효자 비각이 있다. 길을 들어서 마을 앞 다리를 건너자마자 좌측으로 난 농로를 따라 만년제로 길을 잡는다.

산중호수와 같은 만년제의 풍광과 가까이 잡힐 것만 같은 가학산 두억봉을 벗 삼아 곧게 뻗은 임도를 타고 가니 골이 깊은 것이 가히 만년지지의 넉넉함을 갖췄다. 멧돼지 발자국이 어지러운 길옆의 너른 밭은 의외로 정돈이 잘 된 상태다.

임도를 타고 들어가면 산속에 숯을 구우며 살던 마을 터가 남아 있다. 더 이상의 진입은 왠지 만년동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다.

길을 멈추고 다시 그 길을 돌아 만년제 고갯길을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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