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로 돌아간다면? 단언컨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 시대상황에 짓눌리고 번민 속에 헤맸던 그때보다 지금이 더 좋다. 꿈꾸었던 욕망은 모조리 이기적인 것이 되어 입 밖으로 내뱉지도 못했던 시절이라 나는 늘 답답했다.그런데 얼마 전 우리 집에 놀러온 조카들을 보며 청춘이 얼마나 설레는 이름인지 알게 되었다. 꽃피는 청춘의 봄날이 다시 온다면 근사하게 살아보고 싶을 만큼 그들은 눈부셨다.올해 28살인 내 조카 솔이는 서울에서 외국계 회사에 다닌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 휴학을 하고 미국인 집에 보모로 들어가 1년을 살았다. 유학이니 어학연
불교에는 도반, 법우라는 말이 있다. 수행의 길을 함께 걷는 벗, 친구 쯤 되는 말이다. 마음 수행을 하려면 바른 가르침과 올곧은 스승, 그리고 힘들고 먼 길 함께 가며 동무가 되어줄 벗이 필요한 법이다. 어디 수행뿐일까. 고단한 인생길에도 이 세 가지가 있다면 금상첨화일 거다.간절하게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수행을 해야겠다.’ 마음속에서 요동치는 목소리가 들릴 때 쯤 해남에서 법륜스님 법문이 있다고 했다. ‘내 마지막 스승은 법륜스님이다.’ 떡 줄 스승은 안중에도 없는데 나 혼자 그리 작정하고 있던 터라 쾌재를 불렀다. 그
행복, 지극히 추상적인 그 말은 경험의 과정을 거치면 구체성을 띤다. 우리 집 두 녀석이 유치원 다니던 무렵, 한 이불 속에서 이야기 나누다 꿈길로 떠나곤 했던 기억이 내겐 행복의 순간이었다. 재잘거리다 깔깔대고,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다 흥얼거리기도 하면서 ‘어여 자자.’ 같은 말 몇 번씩 반복하다 까무룩 잠 속으로 빠져들던 그때.“엄마, 오늘 이야기는요?”밤마다 새 이야깃거리를 장만해야 하는 게 귀찮기도 하고, 끝없이 불러달라는 자장가에 입에서 단내가 났지만 생각하면 그게 다 행복이었던 거다. 아기 땐 얼른 커서 눈 마주치며 이야
여름 끝자락을 붙잡고 겨울이 찾아온 듯하다. 가을은 점 하나 찍고 떠나갔다. 겨울 채비를 서둘러야할 때다. “창문에 뾱뾱이 (에어캡) 붙이자.”아침 밥상을 물리자 남편은 준비물을 챙기기 시작한다.“제가 보조할까요?”“당연한 말씀.”오늘도 두 부자는 환상의 콤비다. 환이가 분무기로 물을 뿌리면 남편은 에어캡을 붙인다. 크기가 맞지 않는 것들은 자와 칼로 재단을 해 잇대어 붙여야 한다.“자랑 칼 준비!”“넵! 자칼(자와 칼) 대령이오!”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다. 그런데 진도가 더디다. 꼼꼼쟁이 남편은 뭐든 대충하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 맞다. 10년 넘게 소식 없던 사람의 연락을 받으면 긴장부터 한다.“잘 살지? 수술하고 쉬는 중이야.”불쑥 걸려온 친구의 전화에 말문이 막혔다. 짐작대로 암이라고 했다.“궁금하고 또 보고 싶어서.”죽음 언저리를 서성이게 되면 추억속의 벗이 떠오르는 건 인지상정인가 보다. 아마 나도 그럴 것 같다.요 며칠 젊은 나이에 삶을 마감한 사람들 이야기가 자주 들려온다. 가수 신해철의 갑작스런 죽음. 이탈리아 취재 중 심장마미로 운명을 달리 했다는 한겨레신문사의 구본준 기자. 모두 내 또래의 사람들이다. 같은 시대를
“아이가 세 살이 될 때까지는 엄마의 사랑을 아낌없이 주어야 합니다. 초등학생 때는 따라 배우는 시기이니 모범을 보여야 하고요. 사춘기가 되면 홀로 설 준비를 하는 때이니 뒷짐 지고 서서 지켜봐야 합니다. 그리고 20살이 넘으면 가차 없이 정을 떼야 해요. 그때부터는 남의 자식을 바라보듯 무심할 수 있어야 합니다.”법륜 스님 법문에 나오는 이야기다. 부모로서 이런저런 상담거리를 풀어놓으면 스님은 언제나 이 답을 들려주신다. 결혼도 해보지 않은 스님께 자식 키우는 고충을 묻는 것도 얄궂지만 열 자식 키운 경험자보다 더 명쾌한 답을 내
양파까지 심고 나니 8개월의 긴 텃밭 농사가 마침표를 찍는다. 서른 가지 넘는 농사로 바쁘게 산 한 해였다. 본업보다 더 마음 쓰고 공들여 일군 게 농사다.농사짓기를 한 마디로 말하면 ‘풀과 전쟁’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100평 남짓한 땅을 기본 3번씩은 풀을 제거해준 것 같다. 그랬는데도 장마가 끝난 뒤 우리 밭은 풀밭이 되어버렸다. 내 능력으론 이길 수 없는 싸움임을 알고 백기를 들어야 했다. 다른 농약 다해도 제초제만은 뿌리지 말자는 약속을 어기고 싶었던 순간이 많았다. 다행히 풀숲에서도 고구마는 짱짱하게 컸고, 땅콩은 여물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은 실감나지 않았다.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보았지만 믿기지 않으니 슬픔도 내 것이 아니었다. 세상에 다시없이 좋은 아버지였기에 그의 부재는 절망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저 멍하니 앉아있을 뿐 울지 않았다.그때 먼 데서 친구가 찾아왔다. 한 때 죽이 잘 맞아 날마다 만났던 대학 시절 벗이었다. 친구는 다짜고짜 나를 끌어안았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울음보가 터졌다. 꺼이꺼이 목 놓아 울었다. 친구는 아무 말 없이 울고 있는 나를 보듬어 주었다. 슬픈 어깨를 어루만져 다독여주고, 그도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자부하건데 나는 알뜰한 주부다. 어쩔 때보면 궁상맞기까지 하다. 4,5 천 원 커피는 아까워 못 마시고, 명품 꼬리표 단 가방 한 점 없다. 주변에서 애들 옷 물려받아 입히고, 중고물품 파는 가게 단골이기도 하다. 물건을 살 때는 목록을 적어 그것만 사는 편이다. 물 아끼려고 빨래는 모아서 하고, 지구를 위한 일이라 말하지만 진짜는 전기 요금 아까워 에어컨도 없이 산다.우리 같은 월급쟁이는 아끼는 게 사는 길이다. 알뜰히 아껴야 저축을 좀 더 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외식 횟수가 뜸해졌다. 아이들이 어릴 땐 그래도 한 달에 한 번
낡고 오래되고 묵은 것들이 손에 익어 편하다. 새 것의 주인이 되면 얼마간 그것이 나의 주인 행세를 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생겨 폴더형 2G폰을 스마트 폰으로 바꾸었더니 근 한 달째 그것 앞에서 쩔쩔맨다. 영 적응이 되지를 않는다. 시도 때도 없이 친구하자는 문자가 날아오고, 이야기하자고 ‘까똑 까똑’ 해댄다. 손바닥만한 화면에 각가지 광고가 뜬다. 단추 하나 잘못 누르면 원하지 않는 전화가 걸리고, 생뚱맞은 화면이 뜬다. 기계의 속도를 따라 갈 수 없어 아예 인터넷 접속을 꺼둔다. 그러니 좀 살 것 같다. 아! 나는 옛날 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조용히, 혼자서 망상피우는 일이다. 배 깔고 누워 감은 눈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망상이 최고다. 햇발 좋은 곳에 앉아 온몸으로 스며오는 따사로움을 받안으며 피우는 게으른 망상은 그 다음이다. 어제 같은 평화로운 오늘, 오늘 같은 무탈한 내일이 물처럼 흘러가는 그런 일상이 좋다. 칩거에 가까운 하루하루가 나는 참 좋다. 타고난 체질이다.그런데 가을이 되면서 자의와 타의로 일이 겹으로 생겼다. 대문을 열고 집밖으로 나가야할 일이 잦아졌다. 몸도 마음도 바빠 서있지 말아야할 줄에 서 있는 것 같다. 남의 옷을
“아들, 밥 좀 빨리 먹자!”가방 내려놓기 바쁜 아들을 보챈다. 미리 차려놓은 밥상으로 딸을 밥 먹여 학원 태워다 주고 아들과 마주 앉았다. 늦겠다 싶어 선 채로 후루룩 밥을 마신다.“촛불집회 가게요?”엄마 하는 모습이 평소와 다름을 눈치 채고는“나도 따라 갈래요.”하며 아들도 밥을 서둘러 먹는다.늦게 퇴근해 녀석들 챙기다보면 시간은 9시를 향해 달려가기 일쑤다. 마음은 있어도 촛불집회는 늘 뒷전이었다. 내가 든 촛불 하나는 보잘 것 없지만 고립무원에 놓인 유가족들과 실종자 가족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리 하고 싶었다.나는 아직 사건
나무를 이용한 전시실이다. 아이들이 우르르 안으로 들어간다. 나무로 만든 지게 같은 옛 물건들과 로봇 피아노 컴퓨터 틀까지 시대를 넘나드는 물건들이 즐비하다. 아이들은 만지고 두드려보느라 바쁘다. “오줌싸개가 소금 빌리러 갈 때 머리에 쓰던 물건이죠?”역시 5학년답다. 키의 쓰임새를 맞춘 녀석의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나는 비긋이 엄마 미소를 날려 보낸다.하늘은 파랗고 바람은 살랑대는 9월. 녀석들과 3번째 산행이다. 그 사이의 우리 사이는 스스럼이 없어졌다. 때에 따라 함께 하는 녀석들이 바뀌어 처음 보는 아이들도 있지만 친해지는
주택으로 이사 오고 햇볕과 바람이 참 귀한 존재라는 생각을 세삼 한다. 햇볕 좋은 날은 그냥 보내기 아까워 뭐라도 일거리를 만들고는 한다. 건조가 잘 되려면 햇볕을 타고 노니는 바람이 적절히 찾아와 주어야 또 제격이다. 그리하여 여름처럼 따사로운 햇살이 여러 날 이어지던 한가위 연휴에 벼르던 부각 만들기를 착수했다. 하늘 눈치만 살피다 미뤄둔 일이다.불린 찹쌀을 믹서에 갈아 쌀죽부터 쑤고, 감자는 얇게 썰어 끓는 물에 익혀 물기를 빼둔다. 김은 잡티를 골라 한 쪽에 놓아두고, 물기 빠진 깻잎도 채반에 받혀둔다. 그리고 마당 한가득
술이 당기는 게 아니라 숫제 시詩가 ‘땡긴다.’ 찐하게 시 한 잔 마시고 싶다. 정호승과 도종환과 신경림과 이시영 그리고 나희덕의 시까지 한데 버무려 인상불성이 될 때까지 흠뻑 취하고 싶다. 나무로 만든 사다리를 타고 올라, 가장 높은 꼭대기까지 올라가 신 새벽 세상을 향해 시어詩語로 쏟아내는 고성방가를 하고 싶다. 밤이면 풀벌레 쓸쓸히 울고, 서늘한 바람 폐부를 스치고 지나가서인가? 아니다. 계절과 상관없는 일이다. 시를 향해 미치듯이 날뛰는 이 심장은 필시 나이 들어가고 있음의 증거이다. 시는 한때 광장의 언어였고 젊은이의 뜨거
‘들장미 소녀 캔디’에 나오는 안소니. 노랑 곱슬머리를 한, 캔디에겐 언제나 친절했던 남자. 장미를 사랑했던 로맨틱한 남자. 뭇 친구들은 반항아 테리우스가 더 멋지다고 했지만 나는 가슴 따뜻한 안소니가 더 좋았다. 그리고 그는 조용히 내 가슴에 설렘으로 자리했다. 이럴 수가! 만화 영화 속 주인공을 사랑하다니! 그건 분명 내 첫사랑이었다.도서관에 갔다가 ‘들장미 소녀 캔디’ 시디를 발견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일요일 아침 8시면 어김없이 했던 그 만화영화. “밥은 안 차리고 뭐한다냐! 테레비 속으로 아조 들어가거라잉.”어김없이 이
예고 없이 불쑥 찾아왔다. 아니 무단침입이었다. 원래부터 제 집인 냥 태연하게 마당 한 자리를 차지하고 눌러앉았다. 그런데 그의 모습이 참으로 근사하고 멋있었다. 나무에 찰싹 달라붙어 공격 자세를 취하는 뿔 달린 곤충.“투구벌레야.”남편의 말에 환이는 인터넷을 검색했다.“투구벌레 또는 장수풍뎅이. 뿔이 있으니까 수컷이네요” “아빠 어렸을 때 많았어. 한 마리 잡으면 온종일 갖고 놀았지.”세상의 모든 곤충은 다 무서워하는 인이도 관심을 보인다.“사슴벌레나 장수하늘소하고는 어떻게 달라요?”그러자 이번에도 환이가 동물도감을 가져와 차이점
인터넷 검색을 하던 남편이 묻는다.“휴가 어디로 갈까?”“내 의견이 뭐가 중요해요. 내 뜻대로 갈 것도 아니면서.”“그래도 가고 싶은 곳은 있을 거 아냐?”“물론 있지요. 한 번 읊어 봐요? 번잡하니까 휴가 성수기는 싫어요. 사람들 다 여행 다녀온 뒤에 가면 좋겠어. 인적 드문 깊은 산속이었으면 좋겠고. 온종일 뒹굴뒹굴해도 좋을 것 같고, 마음 내키면 산책도 하고, 낮잠 한 숨은 필수, 심심하면 가져간 시집도 큰소리로 읽는 최대한 게으르게 최대한 간섭 없이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거기에 덤으로.......”말끝을 흐리니 남편이
하루에 두 번 출근 한다. 오전에는 텃밭으로, 오후에는 직장으로. 몸은 힘에 부쳐하는데 그래도 마음은 날마다 봄날이다. 땅콩을 심고, 고추 모종을 옮기고, 풀을 뽑아주고, 눈을 맞추고 그들의 안부를 묻는 일상이 복에 겹도록 행복하다. 흙을 만지작거리며 그 속에 숨은 보물 같은 인생의 맛을 느낀다. 참 희한하게 내겐 텃밭이 그대로 법당이다. 날마다 그곳에서 귀한 법문을 수없이 듣는다.물론 벅차고 힘들다. 풀을 뽑고 있으면 꽁무니를 좇아 금세 자라는 잡초들의 모습이 보일정도로 풀은 놀랍도록 왕성한 성장을 한다. 허점투성이 초보 농사꾼인
손바닥만한 텃밭 농사를 짓지만 마음만은 노회한 농사꾼이다. 바람 불면 토마토 가지가 꺾일까, 바랭이에 치어 땅콩이 뿌리를 못 내릴까 걱정이다. 가장 크게 애간장 끓게 한 것은 계속되는 가뭄이었다. 장마가 시작 되었다고 하는데 마른 장마만 이어지니 속이 타들어 갔다.소꿉놀이 같은 농사에도 이리 마음 쓰이는데 진짜 농사꾼 마음을 어떨까 싶었다.그러다 드디어 비가 오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시원하게 쏟아지는 비를 보고 있자니 그리 반가울 수가 없다. 꿀꺽꿀꺽 빗물을 삼키는 작물들의 아우성이 들리는 듯했다. 그렇게 비는 여러 날 오락가락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