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만한 텃밭 농사를 짓지만 마음만은 노회한 농사꾼이다.
바람 불면 토마토 가지가 꺾일까, 바랭이에 치어 땅콩이 뿌리를 못 내릴까 걱정이다.
가장 크게 애간장 끓게 한 것은 계속되는 가뭄이었다. 장마가 시작 되었다고 하는데 마른 장마만 이어지니 속이 타들어 갔다.
소꿉놀이 같은 농사에도 이리 마음 쓰이는데 진짜 농사꾼 마음을 어떨까 싶었다.
그러다 드디어 비가 오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시원하게 쏟아지는 비를 보고 있자니 그리 반가울 수가 없다. 꿀꺽꿀꺽 빗물을 삼키는 작물들의 아우성이 들리는 듯했다.
그렇게 비는 여러 날 오락가락하며 내렸다. 장마 전선이 며칠 째 남부지방을 오르내리며 하늘을 구름으로 덮었다.
그러자 슬슬 비가 반갑지 않았다. 몸은 끈적대고 집안 여기저기에서 눅눅하고 퀴퀴한 곰팡내가 나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나무 도마에 하얀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비지땀 나게 더워도 좋으니 쨍 하고 비추는 햇빛이 그리웠다. 간사한 게 사람 마음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파란 하늘이 선물처럼 기다리고 있다. 올려다보고 또 올려다봐도 물리지 않는 어여쁜 하늘이다. 두둥실 떠있는 흰 구름도 반갑다.
서둘러 아침 밥 먹고 집안 살림을 마당으로 꺼냈다. 우선 눅지근한 이불을 죄다 가져다 빨랫줄에 널어놓으니 난민촌이 따로 없다.
“나눠서 널지 한꺼번에 다 널고 그래.”
남편이 도와주며 한 마디 거든다.
“저 햇볕이 너무 아까워서. 언제 숨어 버릴지 모르잖아요.”
“장마 다 끝났어. 이제 더울 일만 남았는데 뭐.”
그래도 나는 고집을 부리며 부엌살림까지 내다 말렸다. 뜨거운 물에 삶은 식기들도 꺼내오고, 수세미로 벅벅 문질러 닦은 나무 도마는 가장 양명한 장소를 골라 햇볕바라기를 시켰다.
내친 김에 화장실의 녹아내린 비누까지 꺼내왔다. 큼큼한 냄새가 나는 신발들도 일렬로 줄을 맞춰 해님 구경시켰다.
“엄마, 우리 이사 가요?”
알면서 환이가 다가와 눙친다.
“아들도 빨랫줄에 널어 말릴까?” “진짜요? 저도 널어주세요.”
기분 좋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마당에 앉아 있으니 내 마음이 뽀송뽀송해지는 것 같다. 가능 하다면 나도 빨랫줄 한 자리 차지하고 말려지고 싶다.
꼬들꼬들 말려져 뽀드득 소리가 날 때까지 두 팔 벌린 채 있고 싶다. 금세 따가운 햇살이 지겨워질지언정 오늘은 저 햇발이 참 따사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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