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검색을 하던 남편이 묻는다.
“휴가 어디로 갈까?”
“내 의견이 뭐가 중요해요. 내 뜻대로 갈 것도 아니면서.”
“그래도 가고 싶은 곳은 있을 거 아냐?”
“물론 있지요. 한 번 읊어 봐요? 번잡하니까 휴가 성수기는 싫어요. 사람들 다 여행 다녀온 뒤에 가면 좋겠어. 인적 드문 깊은 산속이었으면 좋겠고. 온종일 뒹굴뒹굴해도 좋을 것 같고, 마음 내키면 산책도 하고, 낮잠 한 숨은 필수, 심심하면 가져간 시집도 큰소리로 읽는 최대한 게으르게 최대한 간섭 없이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거기에 덤으로.......”
말끝을 흐리니 남편이 고개 돌려 대답을 재촉한다.
“나 혼자 가는 휴가였으면 좋겠다는 뭐 그런 소박한 바람이랄까.”
“푸흡!”
남편의 짧은 비웃음이 꿈을 깨라는 신호라는 거 잘 안다. 그건 어디까지나 머릿속에서만 가능한 꿈이라는 것 쯤 나도 잘 안다.
내 현실의 휴가는 이러할 테니까. 산 대신 바다. 혼자 대신 4명. 그 시기도 가장 번잡한 성수기. 한가함 게으름은 끼어들 틈이 없는 휴가일 것은 빤하다.
휴가 결정권은 온전히 아이들에게 있다. 그래서 세게 한 마디 던져봤다.
“얘들아, 이번 휴가 지리산 종주 어때? 3박4일 정도?”
“노노노노노.”
이구동성으로 결사반대다.
“그럼 어디 갈까?”
“바다요!”
두 녀석 다 같은 대답이다.
“바다가 뭐가 좋아! 어딜 가나 모래가 찌글거려서 엄마는 싫어!”
“그냥 휴가 동안 송평 해수욕장 왔다 갔다 할까? 다 같은 바다잖아.”
휴가지 결정에 예약까지 도맡아 하는 남편은 가장 쉬운 선택지의 미끼를 던져본다.
“싫어요. 그래도 휴가인데 예전처럼 섬으로 가요!”
환이 말을 되받아 인이가 논리적으로 설득하려 든다.
“저는 어느 바다든 상관없어요. 가족들이랑 해수욕도 하고, 같이 밥도 해먹고, 산책도 가고, 게임도 할 수 있어서 휴가가 좋은 거예요. 엄마 아빠랑 같이 가는 그게 좋은 거예요.”
요것 봐라 제법이네.
“그러면 송평 해수욕장도 괜찮겠네?”
은근슬쩍 속마음을 떠보니
“이왕이면 배타고 섬으로 가면 좋고, 집 밖에서 자는 재미도 있고 하니까 환이 의견에 한 표!”
그리하여 내 바람과 반대편의 휴가를 찾아 우리는 완도 금일도 해당화해변으로 떠났다. 그렇다고 불행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큰 파도를 타며 누구보다 스릴을 만끽한 사람은 나니까. 하루 세끼 먹을거리를 도맡아 챙긴 남편 덕분에 칙사나 다름없는 휴가를 즐겼으니까. 그러고 보니 이번 휴가는 나름 해피엔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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