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밥 좀 빨리 먹자!”
가방 내려놓기 바쁜 아들을 보챈다. 미리 차려놓은 밥상으로 딸을 밥 먹여 학원 태워다 주고 아들과 마주 앉았다. 늦겠다 싶어 선 채로 후루룩 밥을 마신다.
“촛불집회 가게요?”
엄마 하는 모습이 평소와 다름을 눈치 채고는
“나도 따라 갈래요.”
하며 아들도 밥을 서둘러 먹는다.

늦게 퇴근해 녀석들 챙기다보면 시간은 9시를 향해 달려가기 일쑤다. 마음은 있어도 촛불집회는 늘 뒷전이었다. 내가 든 촛불 하나는 보잘 것 없지만 고립무원에 놓인 유가족들과 실종자 가족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리 하고 싶었다.

나는 아직 사건 이후 진도를 가지 않았다. 자원봉사를 위해, 음식을 만들어서, 현장이 궁금하여 많은 사람들이 다녀왔다지만 나는 갈 수 없었다. 실종자 가족들의 처진 어깨를 볼 자신이 없었고, 날마다 등대 앞에 차려진다는 실종자들의 밥상을 바라볼 용기도 없었다. 무엇보다 5개월 넘게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있는 그 차가운 바다를 대면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러는 중에 진도에서 가슴 아픈 사연들이 들려왔다. 실종자 가족이 머무는 체육관을 비워달라는 요구가 있었고, 자원봉사자들의 식사 지원은 이미 끊겼으며, 실종자 가족들의 식사마저 지원하지 않을 거라는 소식이었다. 사람이 해서는 안 될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는 채널마다 유가족들을 몰아세우고, 민생을 살려야할 때 세월호에 얽매어서 되겠냐고 떠들었다. 노란 리본을 달지 말라는 교육부 지침이 학교에 전달되었다는 우스운 뉴스도 있었다. ‘조작한’ 여론을 앞세워 또 한 번 그들을 침몰 시키려고 하는 각본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었다.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의 발언은 그들 각본의 하이라이트였다. 털끝만큼의 진심도 느껴지지 않는 비정한 민낯을 하고 있었다.
“4월16일 이후, 실종자 가족들은 170번의 4월16일을 마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장에서 그들을 돕고 있다는 한 변호사의 이야기는 길었다. 하지만 촛불집회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나를 따라오는 말은 그 한 마디였다.

지난한 구조에 지친 그들을 보며 ‘인양을 해야 하는 거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던 게 사실이다. 그들을 위해서도 나은 선택이 아닌가 생각했다. 사는 일이 죽는 것만 못한 삶일 테니 차라리 이제는 결정해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 충분히 찾을 가능성이 있으며, 인양하는데 1년이 넘게 걸리는데 찾아야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듣고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하는 말들이 얼마나 큰 죄악인지 알았다.

나의 무지에 깊이 사죄한다.
촛불 하나 밝힌다. 그 곁에 촛불 하나 더 켜진다. 촛불과 촛불이 손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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