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은 실감나지 않았다.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보았지만 믿기지 않으니 슬픔도 내 것이 아니었다. 세상에 다시없이 좋은 아버지였기에 그의 부재는 절망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저 멍하니 앉아있을 뿐 울지 않았다.

그때 먼 데서 친구가 찾아왔다. 한 때 죽이 잘 맞아 날마다 만났던 대학 시절 벗이었다. 친구는 다짜고짜 나를 끌어안았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울음보가 터졌다. 꺼이꺼이 목 놓아 울었다. 친구는 아무 말 없이 울고 있는 나를 보듬어 주었다. 슬픈 어깨를 어루만져 다독여주고, 그도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나의 통곡이 깊어지면 더 힘껏 안아주었다. 그는 아무 말 없었고, 그저 내가 하는 대로 나의 슬픔을 오롯이 지켜보며 곁을 내주었다.

사람들이 오가는 장례식장 한 가운데 얼마나 그렇게 서 있었을까? 정신을 수습하고 자리에 앉았을 때도 그는 앙다문 입술을 하고 한 번 쳐다보았을 뿐 말이 없었다. 그의 눈빛 속에 내 슬픔이 온전히 담겨있었다. 둘 다 아무 말 없었으나 꼭 껴안은 몸짓을 타고 내 슬픔은 그의 슬픔이 되어 있었다. 슬픔마저 하나가 되어 있었다. 세상에는 말보다 더 깊고 더 뜨겁게 공유되는 마음의 샘물이 있다. 말이 떠난 자리, 말보다 더 진한 말이 강물이 되어 흘러간다.

세상에 홀로 고아로 남겨진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득하다. 그래도 친구의 따뜻한 껴안음 덕분에 그때 일이 슬픔으로만 기억되어 있지 않다. 참 다행이다.

목요일 촛불 집회. 유가족의 참석 이야기를 듣고 함께 하기로 했다. 저녁을 굶은 아이들까지 데리고 나선 길이었다. 타인과 세상의 슬픔에도 눈물 흘릴 수 있기를 바라는 엄마 마음을 아이들은 알고 있으려나.

엄마라는 동변상련 때문일까. 유가족 아빠들 이야기보다 진혁 엄마의 말에 마음이 더 쓰였다. 사건 19일 만에 시신으로 돌아온 아들을 찾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기가 힘들었다. 눈물 섞인 음성과 분노에 찬 그의 말에 새겨진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200일 가까운 시간을 어찌 견뎠을까 생각하니 어떻게든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었다. 친구가 내게 그랬듯 나도 아무 말 없이 진혁 엄마를 안아주고 싶었다. 꼭 끌어안아주고 싶었다. 따스한 손길과 체온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알기에 꼭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때였다. 유가족에게 선물을 전하자며 진행자가 그들을 무대로 불렀다. 참석자들에게는 그들을 힘껏 안아달라고 주문했다. 그러자 망설이는 사람 없이 줄을 서서 유가족들의 손을 잡아주고 안아주는 것이었다. 유가족의 아픔과 함께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고, 잊지 않고 그들 곁을 지켜주겠다는 약속의 몸짓이었다.  

나는 진혁 엄마를 끌어안았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더 힘껏 껴안았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쏟아졌다. 진혁 엄마도 울고 또 울었다. 말없음 중에 수많은 말이 오고감을 느꼈다.

스산한 갈바람 부는 계절, 깊은 슬픔과 절망에 아파하는 이가 있다면 기꺼이 그들을 안아주자. 꼭 끌어안아주자. 슬픔은 덜어지고, 절망은 줄어들며 희망과 용기는 커져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해남군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