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고 오래되고 묵은 것들이 손에 익어 편하다. 새 것의 주인이 되면 얼마간 그것이 나의 주인 행세를 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생겨 폴더형 2G폰을 스마트 폰으로 바꾸었더니 근 한 달째 그것 앞에서 쩔쩔맨다. 영 적응이 되지를 않는다. 시도 때도 없이 친구하자는 문자가 날아오고, 이야기하자고 ‘까똑 까똑’ 해댄다. 손바닥만한 화면에 각가지 광고가 뜬다. 단추 하나 잘못 누르면 원하지 않는 전화가 걸리고, 생뚱맞은 화면이 뜬다. 기계의 속도를 따라 갈 수 없어 아예 인터넷 접속을 꺼둔다. 그러니 좀 살 것 같다. 아! 나는 옛날 휴대전화를 그리워하고 있다.

어디 기계뿐인가. 사람도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처럼 고역스러운 일이 없다. 세상을 살만큼 살았는데 아직도 사람을 마주하는 일은 버겁다. 이름 석자 말하고 나면 할 말이 없다. 낫낫하고 해사한 얼굴로 대할 수도 있으련만 여전히 나이 값을 못하고 산다.

생각해보면 세상에도 사람에게도 설렘이 사라져버린 나이가 돼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누구를 봐도 무엇을 해도 눈빛을 반짝이며 호기심이 생겨야 하는데 그게 별로 없다. 무리지어 앉은 사람들 사이에 수많은 이야기가 오가지만 그 밥에 그 나물인 말의 성찬일 뿐이다. 나까지 숟가락 하나 얹어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싶지는 않다.

요사이 멀리서 옛 친구가 찾아오는 일이 잦아졌다. 40년 전 ‘빠꿈살이’ 같이 했던 친구부터 시대의 아픔을 함께 나눴던 대학시절 친구도 있다. 40대 후반은 시선을 미래에 두기보다 과거로 고개 돌리게 하는 나이라고 할 수 있다. 바쁘게 살아오다 삶의 쉼표를 한 번 찍을 나이이기도 하다. 그럴 때 옛날 제 인생의 한 자리 차지했던 친구가 생각나기 마련이다.

옛 친구는 그냥 좋다. 반갑다 친구야! 한 마디면 함께 하지 못한 몇 십 년의 간극도 금세 메워진다. 그 옛날의 말투와 몸짓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나를 보고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앞 뒤 따지고, 눈치 살필 일이 없어서 좋다. 늘 걸치던 옷처럼 편안한 벗이 옛 친구다.

참 묘한 것이 그렇게 만나는 친구는 서로 닮아있다. 그의 말은 평소 내가 즐겨했던 말이고, 그의 시선이 머무는 곳 또한 내가 동경했던 그곳일 때가 많다. 친구의 모습에서 나를 본다. 멀리 떨어져 있었어도 서로의 전극끼리 잡아끌며 통하는 게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말하지 않아도 그의 지나온 삶과 현재의 인생이 읽힌다. 눈빛, 손짓, 무언의 웃음이 많은 것들을 이야기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도와 안쓰러움이 교차하기도 한다.

이제 어쩔 수 없는 기성세대인 모양이다. 과거로 난 길을 따라 걷는 게 좋은 걸 보면 말이다. 아무래도 좋다. 나이 들어감이 패배는 아니니 기껍게 받아들이련다. 호젓하게 걷는 오솔길에 옛 벗이 찾아오면 함께 걸어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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