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까지 심고 나니 8개월의 긴 텃밭 농사가 마침표를 찍는다. 서른 가지 넘는 농사로 바쁘게 산 한 해였다. 본업보다 더 마음 쓰고 공들여 일군 게 농사다.

농사짓기를 한 마디로 말하면 ‘풀과 전쟁’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100평 남짓한 땅을 기본 3번씩은 풀을 제거해준 것 같다. 그랬는데도 장마가 끝난 뒤 우리 밭은 풀밭이 되어버렸다. 내 능력으론 이길 수 없는 싸움임을 알고 백기를 들어야 했다. 다른 농약 다해도 제초제만은 뿌리지 말자는 약속을 어기고 싶었던 순간이 많았다. 다행히 풀숲에서도 고구마는 짱짱하게 컸고, 땅콩은 여물어갔다.

농사, 겁 없이 덤벼들 대상이 아니다. 근육처럼 일의 근력이 몸에 익어야 하는 게 농사인데 평생 입만 놀리며 살아온 나 같은 서생에게 일은 버거운 상대다. 뙤약볕 아래 풀을 뽑으면서도
“버킷 리스트 1순위는 텃밭 농사야.”
입방정 떨었던 내 주둥이가 원망스러웠다. 농사, 참 힘들었다. 그래서 내년에는 올해의 절반만 짓기로 했다.

 “주말에 놀러 못가고 힘들게 뭐 하러 농사지어요.”
농사에 관심 없는 아이들은 그렇게 원망을 늘어놓았다. 그래도 우리 부부가 농사짓기를 포기하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좀 거창하게 말하면 ‘생명을 거두고 키우는 위대함’ 뭐 그런 걸 깨달았다고나 할까. 씨를 뿌리고, 풀을 뽑아주고, 퇴비를 놓아주며 그것들과 눈을 맞추다보면 고 작은 생명이 보여주는 위대함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헌법에 모든 국민은 텃밭 농사지을 권리와 의무를 갖는다. 그런 걸 명시하면 좋겠어.”
“범죄율도 떨어지고, 정신장애 치유에도 많은 도움이 될 거야.”
우리 부부는 농사일을 하며 곧잘 그런 대화를 나누곤 했다. 기회가 된다면 작물을 키우는 행복을 많은 사람이 누렸으면 좋겠다.

농사를 지으며 잃은 것도 많았다. 망상 피우고, 책 읽고, 글 쓰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즐거운 시간이 많이 줄었다. 하지만 값진 걸 더 많이 얻었기에 괜찮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성과라고 하면 헛꿈을 더 이상 꾸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더 나이 들면 전업 농사꾼이 되어보겠다는 꿈이 있었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으며 내 몸으로 성실하게 일할 수 있는 직업이 농부라 생각했기에 그 길을 가고 싶었다. 하지만 소꿉놀이 같은 텃밭 농사를 지으며 그것이 헛꿈이라는 걸 금세 알았다. 농부라는 멋진 직업은 언감생심 내가 탐낼 일이 아니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해보지 않았다면 아직도 헛꿈인줄 모르고 꿈꾸고 있을 것이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포기를 가르쳐주었으니. 포기할 줄 아는 것도 지혜라는 걸 알 나이가 되었다.

“더워 죽겠는데 이게 무슨 생고생이야.”
투덜거리면서도 아낌없는 정성으로 농사짓는 모범을 보여준 나의 남편.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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