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두 번 출근 한다. 오전에는 텃밭으로, 오후에는 직장으로. 몸은 힘에 부쳐하는데 그래도 마음은 날마다 봄날이다. 땅콩을 심고, 고추 모종을 옮기고, 풀을 뽑아주고, 눈을 맞추고 그들의 안부를 묻는 일상이 복에 겹도록 행복하다. 흙을 만지작거리며 그 속에 숨은 보물 같은 인생의 맛을 느낀다. 참 희한하게 내겐 텃밭이 그대로 법당이다. 날마다 그곳에서 귀한 법문을 수없이 듣는다.
물론 벅차고 힘들다. 풀을 뽑고 있으면 꽁무니를 좇아 금세 자라는 잡초들의 모습이 보일정도로 풀은 놀랍도록 왕성한 성장을 한다. 허점투성이 초보 농사꾼인 관계로 남들보다 일은 힘들고 성과는 더디다. 욕심이 과해 백 평 남짓한 농사를 지으려니 에고 죽을 맛이다. 나보다 농사짓기를 더 즐기는 일꾼 남편을 둔 덕에 그래도 다행이다.
“애들아, 텃밭 가자.”
주말이면 등산이 우리 가족 여가활동이었는데 밀린 일 때문에 텃밭으로 일하러 가야 한다.
“집에 있으면 안돼요?”
중학생 인이는 벌레가 들끓는 텃밭이 싫다.
“인아, 너 새끼 수박 안 봤지? 강아지보다 더 귀엽다!”
“새끼 수박요?”
인이는 심드렁한데 반색을 하며 환이가 묻는다.
“오이는 또 어떻고! 엄마는 고 녀석들 안부가 궁금해서 날마다 텃밭에 가잖아.”
이쯤하면 귀 얇은 인이도 신발을 신고 따라 나선다.
마디마다 자라는 오이도 구경시켜주고, 주렁주렁 매달린 고추도 들여다본 뒤 텃밭 순례의 결정체 새끼수박을 만날 차례.
“웃기지 않냐? 잘 봐! 새끼 손톱만한 수박에 있을 거 다 있어.”
“까만 줄무늬도 있어요!”
환이 호들갑에 인이도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고 수박을 쳐다본다.
“와, 진짜다! 진짜 귀엽다!”
기실 식물이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고 앙증맞은 열매를 달고 있는 품새라니! 그저 감탄할 따름이다.
“인이는 땅콩 밭, 환이는 고추 밭에 풀 뽑자.”
어느새 작업반장 남편이 일을 할당해준다. 아이들은 호미 한 자루씩 들고 고랑에 털썩 주저앉아 풀을 뽑는다. 오이의 지주를 세워주던 남편이 흐뭇하게 쳐다본다. 주말 오후 한낮, 게으른 하품을 하며 나도 한 자리 차지하고 앉는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녀석들의 작업이 오래가지 못하리라는 걸.
“누나, 댐 만들자!”
“그럴까?”
역시나. 풀 서너 개 뽑고 녀석들은 고랑에 앉아 땅을 파기 시작한다.
“돌멩이로 둑을 쌓아야겠는데?”
이번에 작업 지시는 환이 몫이다. 일머리가 좋은 환이 말에 누나 인이는 두 손 가득 돌멩이를 날라 온다.
“물을 부어봐야겠어.”
“물이 다 새버리는데.”
“그러면 누나, 함정으로 바꾸자.”
“그래 좋아.”
오누이가 오랜만에 죽이 잘 맞는다. 별 일이다.
나뭇잎과 가지를 주워오니 댐은 금세 함정으로 변신.
그날도 일은 고스란히 우리 부부 몫이었다.
“오이 먹자.”
녀석들 보여주려고 따지 않고 아껴둔 큼지막한 오이를 녀석들에게 건네주니
“와, 달다.”
“진짜 맛있다.”
찬사가 쏟아진다. 녀석들은 서로 한 입 더 먹겠다고 난리다.
오이는 하루에 반 뼘씩은 크는 것 같다. ‘장마에 물외(오이) 크듯이.’라는 속담이 괜히 있는 게 아님을 알겠다. 우리 집 녀석들도 이 오이처럼 쑥쑥 잘 크기를 바란다. 속이 꽉 찬 그런 멋진 사람이면 더 좋겠다. 요즘은 내 인생이 날마다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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