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조용히, 혼자서 망상피우는 일이다. 배 깔고 누워 감은 눈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망상이 최고다. 햇발 좋은 곳에 앉아 온몸으로 스며오는 따사로움을 받안으며 피우는 게으른 망상은 그 다음이다. 어제 같은 평화로운 오늘, 오늘 같은 무탈한 내일이 물처럼 흘러가는 그런 일상이 좋다. 칩거에 가까운 하루하루가 나는 참 좋다. 타고난 체질이다.

그런데 가을이 되면서 자의와 타의로 일이 겹으로 생겼다. 대문을 열고 집밖으로 나가야할 일이 잦아졌다. 몸도 마음도 바빠 서있지 말아야할 줄에 서 있는 것 같다. 남의 옷을 걸친 느낌이다.

“의외로 오지랖이 넓어.”
어느 날 남편의 일갈에
“내가? 그건 진짜 아닙니다요.”

즉각적인 거부를 하고 돌아앉아 가만히 생각해보니 맞는 말씀.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살다 일을 저지르는 체질이라는 남편의 지적이 옳았다. 쓸데없는 일 만든다는 남편의 핀잔을 귓등으로 들으며 또 일을 만들고 말았으니.

이름 하여 자수. 손으로 실을 이용해 수를 놓는 그 자수를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 배우러 간다. 고백하자면 세상의 그 많은 재주 중에서 변변한 재주 하나 타고나지 못한 나다. 더구나 손끝으로 하는 일은 다 꽝이다. 그중에서도 자수는 가장 싫어하고 가장 못하는 일이다.

오죽하면 중고등학교 시절 조각이불이나 수놓는 숙제는 죄다 아버지가 해주셨을까. 어쭙잖은 막내딸의 하는 양이 안쓰러워
“아따매 요것이 머시다냐!”
빼앗아 수놓아 주셨던 나의 아버지.

그랬던 내가 자수를 배우다니 이런 조화가 또 있을까.

도서관에서 자주 빌려보는 책이 ‘이효재’의 살림 책이다. 글은 뒷전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몇 번이고 사진을 들여다보게 하는 책이다. 본업이 한복을 짓는 일인데 손끝이 야무져 뛰어난 음식솜씨, 자수 솜씨, 뜨개질, 거기에 정갈하게 손님을 맞이하는 품새까지 한국의 ‘마샤 튜더’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여성이다. 그의 책을 볼 때면 불공평의 극치를 느낀다. 똑같이 두 손 가지고 태어나 누구는 그리는 족족 멋진 그림 되고, 누구는 난해한 낙서만 한단 말인가.

그 날도 열심히 사진을 읽고 있는데 행주 끝에 앙증맞게 수놓아진 꽃에 꽂히고 말았다. 진짜 꽃보다 더 곱게 피어난 자수 꽃이었다.

“이걸 배워야겠어.”
밑도 끝도 없이 결심을 했다. 그렇게 자수 인생이 시작되었다.
“엄마, 정체불명의 이 꽃은 뭐예요?”
평소와 다른 엄마 품새가 낯선지 아들이 맴돌이를 한다.

“아무래도 다시 뜯어야겠지?”새틴스티치라는 메우기 자수는 정말 어렵다. 서너 번 뜯어내고 다시 놓는 건 다반사다.
“이 오이풀은 봐줄만 해요!”

속 깊은 우리 딸이 던진 한 마디에 위로를 받을 무렵 날아온 직격탄.
“내일은 선생님한테 수준 미달인 사람은 제자로 받지 말라고 말씀드려.”

에고 에고 숫제 남편이 아니고 웬수다. 그래도 나는 오늘도 꿋꿋하게 자수를 놓는다. 큰소리 펑펑 치는 건 덤이다.

“엄마가 곧 식탁보를 근사하게 수놓을 거니까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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