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식태산(不識泰山), 태산을 몰랐다. 그 사람의 진면목을 알아보지 못했다.태산(泰山)은 중국의 오악(五岳) 중 가장 유명한 산으로 山東에 있으며 천자가 봉선(封禪)을 행했던 산이다. 동방의 명산이었던데다 당시만 해도 '하늘 아래 제일 뫼'라고 하여 하늘과 가장 가까이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실제 높이는 1,500여 미터에 불과하다.불식태산(不識泰山)이란 '태산을 몰랐다'는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泰山은 산 이름이 아니라 춘추시대 노(魯)나라 사람으로 노반(魯班)의 제자다. 노반은 공수반(公輸般)이라고도 불렸는데 천하의 세공(
흰 머리털의 길이가 삼천 길이란 뜻으로, 중국 문학의 과장적 표현으로 널리 인용되는 문구다.'백발 삼천장'이란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의 시 〈추포가(秋浦歌)〉 17수 중 한 수인 오언절구(五言絶句)에서 나온 말이다.흰 머리털이 (자라 어느새) 삼천 길 [白髮三千丈(백발삼천장)]근심으로 인하여 이처럼 길어졌네 [緣愁似箇長(연수사개장)]알지 못해라 밝은 거울 속 [不知明鏡裏(부지명경리)]어디서 가을 서리를 얻었는고 [何處得秋霜(하처득추상)]이 시는 만년에 귀양에서 풀려난 이백이 추포(秋浦)에 와서 거울을 보고 이미 늙어버린 자기
곁에 사람이 없는 것 같이 여긴다는 뜻으로, 주위의 다른 사람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제멋대로 마구 행동함을 이르는 말이다.전국 시대도 거의 막을 내릴 무렵, 즉 진왕(秦王) 정(政:훗날의 시황제)이 천하를 통일하기 직전의 일이다. 당시 포학 무도한 진왕을 암살하려다 실패한 자객 중에 형가(荊軻)라는 사람이 있었다.그는 위(衛)나라 출신으로 독서와 검도를 좋아했다. 위나라 원군(元君)이 써주지 않자 여러 나라를 전전하다가 연(燕)나라에서 축(筑:거문고와 비슷한 악기)의 명수인 고점리(高漸離)를 만났다. 이 고점리는 비파의 명수였다
우물 아래에 돌을 떨어뜨린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이 재앙을 당하면 도와주기는 커녕 오히려 더 큰 재앙이 닥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이 성어는 당송 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인 한유(韓愈)가 친구 유종원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묘지명 가운데 나온다."아! 선비는 자신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비로소 그 지조를 알게 된다. 지금 어떤 사람들은 컴컴한 골목에 살면서 서로 사랑하고 술과 음식을 나누어 먹고 놀면서 즐겁게 웃으며, 자기의 심장이라도 꺼내 줄 것처럼 친구라고 칭하며, 하늘과 땅을 가리키며 죽음과 삶을 함께할 것이라고 아주 간절
목후이관(沐猴而冠)원숭이가 갓을 씀. 사람 행세를 못함. 표면은 근사하게 꾸몄지만 속은 난폭하고 사려가 모자람이라는 뜻이다.홍문연(鴻門宴)을 통해 유방(劉邦)으로부터 진(秦)의 도읍 함양을 손에 넣은 항우(項羽)는 살인, 약탈, 방화를 자행해 민심으로 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이 점은 유방이 예견한 터였다. 항우는 스스로 황폐하게 한 함양이 마음에 들지 않아 팽성(彭城)으로 천도(遷都)를 결심했다.함양이라면 천혜의 요새로 패업(覇業)의 땅이었다. 간의대부(諫議大夫) 한생(韓生)이 수 차례 간했지만 項羽는 화를 내면서 그를
서시빈목(西施嚬目)쓸데없이 남의 흉내를 내어 세상의 웃음거리가 됨, 영문도 모르고 남의 흉내를 냄, 남의 단점을 장점인 줄 알고 본뜸을 비유한 말이다. 춘추 시대 말엽, 오(吳)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한 월왕(越王) 구천(勾踐)은 오왕(吳王) 부차(夫差)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 절세의 미인 서시(西施)를 바쳤다. 서시(西施)는 원래 월나라의 가난한 나무꾼의 딸이었는데 기가 막히게 빼어난 용모를 갖추고 있었다.서시의 미모는 널리 소문에 퍼져 오나라 왕 부차에게 미녀를 바쳐 미인계를 쓰고자 했던 범려가 그녀를 한 번 보고 즉시 궁전으로 불
대롱 구멍으로 하늘을 엿보다. 좁은 소견으로 사물을 살펴 보았자 그 전체의 모습을 파악할 수 없다는 뜻이다.춘추시대 말기의 일이다. 뒷날 동양 의학의 元祖(원조)이자 醫聖(의성)으로도 일컬어지는 扁鵲(편작)이 괵이라는 나라에 갔을 때였다.마침 병을 앓던 이 나라의 태자가 숨졌다는 소식을 듣고 편작은 궁정의 의사를 찾아 갔다. 태자의 병이 무슨 병인가를 물어보고 현재의 상태를 알아낸 편작은 말했다."그럼 내가 태자를 소생시켜 보겠습니다."편작이 팔을 걷고 나서자 궁정의사는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그런 무책임한 말씀은 삼가시오.
굳건한 뜻이 있으면 반드시 이루어낸다는 뜻이다.한나라를 찬탈한 왕망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劉秀(유수)의 수하에 경엄이란 장수가 있었다. 원래 글 읽는 선비였던 그는 병법과 무예에 뛰어나 적잖은 전공을 세움으로써 유수의 신임은 각별했다.마침내 유수는 後漢의 光武帝(광무제)가 되었는데 어느날 광무제는 경엄에게 張步(장보)를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한나라의 맥을 이은 후한이 세워졌지만 아직도 각지에는 상당한 병력을 가진 세력들이 준동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 장보의 병력이 가장 세었다.겅엄이 공격해 온다는 보고를 받고도 장보는 풋내기의
후한은 전기에만 해도 세습 호족들이 지배할 수 있었으나 후기에 들어서면서 외척과 환관들이 황제의 권력을 능가하는 일이 나타났다. 앞서 나타난 인물이 두씨였으며 나중의 순제 때에 나타난 인물이 양기(梁冀) 형제였다.양기란 자는 건달이었다. 그의 누이가 황후가 되면서 그의 세도는 탄력이 붙었다. 순식간에 그녀의 부친 양상(梁商)은 집금오, 양기는 양읍후에 봉해졌다. 그러나 상서령 좌웅의 간언에 의해 양기는 양읍후의 자리에서 사퇴하게 되었다. 나라에 변란이 일어났다. 85장(丈)이나 땅이 벌어질 정도의 지진이 일어났다. 당시 순제의 총애
사석위호돌을 범인 줄 알고 쏘았더니 돌에 화살이 꽂혔다는 말로, 성심을 다하면 아니 될 일도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이광은 양가의 자제로서 집안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궁술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그는 신체가 장대하고 원숭이처럼 팔이 길었다. 그가 활쏘기에 능한 것도 선천적인 것으로서, 그의 자손이나 남들이 아무리 궁술을 배워도 이광에게 미치지는 못하였다.그의 활 쏘는 법은 적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수십보 이내라도 활시위 소리와 동시에 적이 쓰러졌다. 이처럼 그는 오로지 활쏘기를 낙으로 삼아 일생을 마쳤다. 그리고 이광은
풀밭을 두드려 뱀을 놀라게 하다는 뜻으로, 긁어 부스럼을 만들다. 생각 없이 한 행동이 뜻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다는 의미다.수호전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양산박(梁山泊)에 웅거한 송강(宋江)의 무리가 동평부를 공격할 무렵, 구문룡(九紋龍) 사진(史進)이 계책을 내놓았다. 성안에 있는 이서란(李瑞蘭)이라는 기생의 집을 거점으로 만들어 움직이자는 것이었다. 송강의 승낙을 받아 낸 일행들이 찾아가 계획대로 일을 진행시키는데 어느 날 이서란은 뚜쟁이 할멈과 잡담을 나누다가 그런 말을 해 버렸다. 할멈은 몹시 화를 냈다."이거 봐, 속담
닮지 않았다. 아버지를 닮지 않아 현명하지 못하고 어리석음맹자의 萬章篇(만장편)에 이런 대화가 나온다.만장(萬章)이 물었다."요 임금이 천하를 순 임금에게 주었다는 것이 사실입니까?""아니다. 천자는 천하를 남에게 주지 못한다.""순이 천하를 차지한 것은 누가 준 것입니까?""하늘이 준 것이다.""하늘이 주었다는 것은 하늘이 천하를 주라고 이리저리 명령을 한 것입니까?""아니다. 하늘은 말을 하지 않는다. 행동과 일로써 그 뜻을 보여줄 뿐이다."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순(舜)이 섭정으로 요(堯) 임금을 28
초(楚)나라 장왕(莊王)이 전투에 이겨 궁중에서 성대한 연회를 베풀고 문무백관을 초대했다. 신하들이 모두 큰 소리로 환성을 지르며 왁자지껄 소란했다. 바로 그때 등불이 꺼지더니 왕의 애첩이 비명을 질렀다. 어느 누가 그녀의 가슴을 더듬고 희롱했던 것이다. 그녀는 놀라면서도 그 사나이의 갓끈을 잡아 뜯고는 왕에게 호소했다."폐하, 등불을 켜게 하시고 갓끈이 없는 자를 잡아 주세요."불만 켜면 갓끈이 끊긴 자가 바로 감히 왕의 애희(愛姬)를 희롱한 자라는데 드러날 판이었다. 그러나 왕은 도리어 불을 켜지 못하게 하고 큰소리로 모두에
사마귀가 매미를 잡으려고 엿보고 있지만 그 사마귀는 뒤에서 까치가 노리고 있음을 모른다. 눈앞의 이익을 탐하다가 눈이 어두워져 바로 뒤에 닥칠 화를 알지 못한다는 뜻.어느날 장자가 사냥을 즐기고 있는데 남쪽에서 큰 까치 한 마리가 날아오더니 장자의 이마에 스쳐 근처 밤나무 숲에 앉았다. 이상하게 생긴 그 까치는 날개의 길이가 일곱 자, 눈 둘레는 한 치나 되었다.까치를 한참 바라보던 장자는 혼자 생각했다.'저 놈은 분명히 까치 같아 보이는데 저렇게 넓은 날개를 가지고도 왜 높이 날지 못하고 겨우 밤나무 숲에나 앉고 저렇게 큰 눈을
베개를 높이 하여 편히 잘 잔다는 뜻이다.전국 시대, 소진(蘇秦)과 장의(張儀)는 종횡가(縱橫家)로서 유명한데 소진은합종(合縱), 장의는 연형(連衡)을 주장했다. 합종이란 진(秦)나라 이외의 여섯 나라, 곧 한(韓) 위(魏) 제(齊) 초(楚)가 동맹하여 진나라에 대항하는 것이며, 연횡이란 여섯 나라가 각각 진나라와 손잡는 것이지만 실은 진나라에 복종하는 것이었다.소진보다 악랄했던 장의는 진나라의 무력을 배경으로 이웃 나라를 압박했다. 진나라 혜문왕(惠文王) 10년(B.C. 328)에는 장의 자신이 진나라 군사를 이끌고 위나라를 침략
원군이 오지 않는 고립된 성과 해가 기울어지는 낙조. 세력이 쇠퇴하여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 고립무원의 상태를 의미하고 있다.왕유(王維:699~759)의 자(字)는 마힐(摩詰)이다. 지금의 산서성 출신으로 개원(開元) 초기 진사에 급제하여 벼슬이 상서우승(尙書右丞)에 이르렀다. 그는 음악에 정통하고 시를 잘 지었고 그림 또한 상당한 수준이었다.'孤城落日'은 왕유의 시가운데 칠언절구(七言絶句)인 송위평사(送韋評事:위평사를 보냄)에서 나왔다.欲逐將軍取右賢(욕수장군취우현) 장군을 따라서 우현(右賢)을 취하고자 하니,沙場走馬向居延(사장주
마음이 맞지 않으면 간과 쓸개처럼 몸 안에 있고 서로 관계가 있더라고 초나라와 월나라처럼 서로 등지고 만다는 의미다.노(魯)나라에 왕태라는 者가 있었다. 형벌을 받아 발이 잘렸지만 덕망이 높아 문하생이 많았다. 이상하게 생각한 상계(常季)가 공자에게 물었다."왕태는 죄를 지은 자인데도 불구하고 찾는 사람이 많고, 그 명성은 마치 선생님과 노나라를 둘로 나눈 형세입니다. 그는 별로 가르치는 일도 없으며, 그렇다고 의논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를 찾아갔던 사람은 반드시 흡족해서 돌아갑니다. 무언의 가르침이 있는 모양입니다.
豈有此理(기유차리)‘우째 이런 일이’라는 말이 있다.본디 사람이란 상식과 규범,그리고 법도(法度)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그래서 인간사는 모두 그것에 의해 평가·재단(裁斷)되게 마련이다.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면 그런 말이 나올 만도 하다.재미있는 것은 漢字語에도 똑같은 표현이 있다는 점이다.‘豈有此理’, 직역(直譯)하면 어째서 이런 도리가 있을까다.강한 불만과 회의(懷疑)가 곁들여 있음을 알 수 있다.朱子(주자)는 누구보다도 인격수양을 강조했으며, 그 방법으로 성의(誠意)를 제시했다. 곧 자기 자신을 기만(欺瞞)하
공자천주(孔子穿珠)공자가 시골 아낙네에게 물어 구슬을 꿰었다.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묻는 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음.공자가 진(陳)나라를 지나갈 때였다. 공자는 전에 어떤 사람에게 얻은 아홉 개의 구멍이 있는 구슬에 실을 꿰어 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되는 것이었다.그때 문득 바느질을 하는 부인네들이라면 쉽게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뽕밭에서 뽕을 따고 있는 한 아낙네에게로 가서 그 방법을 물었다. 공자의 얘기를 들은 아낙이 말했다."찬찬히 꿀(蜜)을 생각해 보세요"아낙의 말을 듣고 골똘히 생
강한 활에서 쏘아진 화살도 마지막에는 힘이 없어져 맥을 추지 못한다. 강대한 힘도 최후에는 쇠퇴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는 말한(漢)나라는 개국 당시부터 줄곧 북쪽의 흉노로부터 시달림을 받았다. 거듭되는 침범에 高祖(고조)가 몸소 대군을 이끌고 출진하다가 흉노에 포위당하여 간신히 풀려다는 곤욕도 치렀다. 막강한 한나라도 흉노에는 친화술로 대처했다. 고조는 흉노의 우두머리 선우에게 미인과 막대한 예물을 보내면서 형제국으로 지내자는 조약을 맺고 해마다 선물을 보내주기로 했다. 그러나 흉노는 그 후에도 조약을 깨고 이따금 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