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식태산(不識泰山), 태산을 몰랐다. 그 사람의 진면목을 알아보지 못했다.
태산(泰山)은 중국의 오악(五岳) 중 가장 유명한 산으로 山東에 있으며 천자가 봉선(封禪)을 행했던 산이다.
동방의 명산이었던데다 당시만 해도 '하늘 아래 제일 뫼'라고 하여 하늘과 가장 가까이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실제 높이는 1,500여 미터에 불과하다.
불식태산(不識泰山)이란 '태산을 몰랐다'는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泰山은 산 이름이 아니라 춘추시대 노(魯)나라 사람으로 노반(魯班)의 제자다. 노반은 공수반(公輸般)이라고도 불렸는데 천하의 세공(細工) 명장(名匠)으로 맹자(孟子)나 묵자(墨子)에도 등장한다. 태산이 갓 木工을 익힐 때였다.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노반의 맘에 들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태산이 게으름을 피운는 것이 아닌가. 배우려는 의욕이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또 틈만 나면 배움터를 뛰쳐나가 산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부근에 대나무 숲이 있었는데 한 번 들어가면 몇 시간이고 나오지 않았다. 연말이 되어 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탁자를 만드는 것이었다. 다들 잘 만들었지만 泰山태산만은 엉망이었다. 화가 난 노반은 그를 쫓아내고 말았다.
10여년이 지난 어느 날 노반은 시장에서 정교하기 이를 데 없는 대나무 가구를 발견했다.
너무도 놀라워 수소문해 본 결과 자기가 쫓아냈던 泰山이 만든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10여년 전 그로부터 배울 때 泰山은 대나무의 유연성에 주목하여 대나무를 익히기 시작했던 것이다.
스승이 나무만 고집하니까 하는 수 없이 대나무 숲으로 도망쳐 혼자 익혔던 것이다.
노반은 부끄럽기 그지 없었다. '나는 눈을 가지고도 泰山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不識泰山)!' 후에 泰山은 죽공예(竹工藝)의 창시자가 되었다.

넓적다리에 살이 찐 것을 한탄하다
비육지탄(脾肉之嘆), 넓적다리에 살이 찐 것을 한탄함. 본의 아니게 안일한 생활을 하며 활약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을 탄식하다.
한(漢)나라 황실의 후예를 자칭하고 의병을 일으킨 유비(劉備)는 한때 조조(曹操)에게 몸을 의탁했다.
그러나 조조를 죽이려는 계획이 탄로나 간신히 탈출, 기주 여남 등지를 전전하다 형주의 유표(劉表)를 찾아갔다. 유표는 천하를 호령할 그릇은 못되고 자기 영토를 지키기에 급급한 인물이었다. 유비는 그 밑에서 新野라는 작은 성 하나를 맡고 있었다.
유표같은 인물 밑에 있어 가지고는 도원결의(桃園結義)를 한 관우나 장비같은 호걸을 거느리고 있다해도 천하에 웅비할 기회는 오지 않을 것이다.
이런 판단을 하고 있는 유비의 나이는 이미 50이 가까웠다. 그러던 어느날 유표와 함께 술을 마시다가 변소에 간 유비는 우연히 자기 넓적다리에 살이 많이 찐 것을 보았다. 그동안 얼마나 하릴없이 허송세월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눈물자국을 남긴 채 술자리로 돌아온 유비를 보고 유표가 놀라서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오?"
그러자 유비가 한숨을 쉬며 이렇게 대답했다.
"전에는 언제나 말을 타고 다녀서 넓적다리에 살이 찔 겨를이 없었습니다. 요즘은 오랫동안 말을 타지 않아서 살이 많이 올랐군요. 세월은 덧없이 흘러 노년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아무런 공을 이루지 못하고 있으니 어찌 슬프지 않겠습니까"
그때 유비의 나이는 40세 전후로, 세월의 흐름을 절실히 느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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