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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애의 아는만큼 보이는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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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01  18: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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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후이관(沐猴而冠)

원숭이가 갓을 씀. 사람 행세를 못함. 표면은 근사하게 꾸몄지만 속은 난폭하고 사려가 모자람이라는 뜻이다.

홍문연(鴻門宴)을 통해 유방(劉邦)으로부터 진()의 도읍 함양을 손에 넣은 항우(項羽)는 살인, 약탈, 방화를 자행해 민심으로 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이 점은 유방이 예견한 터였다. 항우는 스스로 황폐하게 한 함양이 마음에 들지 않아 팽성(彭城)으로 천도(遷都)를 결심했다.

함양이라면 천혜의 요새로 패업(覇業)의 땅이었다. 간의대부(諫議大夫) 한생(韓生)이 수 차례 간했지만 項羽는 화를 내면서 그를 멀리했다. 한생은 탄식하고 물러 나면서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원숭이를 목욕시켜 관을 씌운 꼴이군(沐猴而冠)." 그런데 이 말을 항우가 듣고 말았다. 무식했던 그는 무슨 뜻인줄 몰라 진평(陳平)에게 물었다.

"폐하를 흉보는 말인데 세가지 뜻이 있지요. 원숭이는 관을 써도 사람이 못 된다는 것, 원숭이는 꾸준하지 못해 관을 쓰고 조바심을 낸다는 것, 그리고 원숭이는 사람이 아니므로 만지작거리다 의관을 찢어버리고 만다는 뜻입니다." 격분한 항우는 그를 끓는 기름가마에 던져 죽이고 말았다.

죽을 때 한생이 말했다. "두고 보아라. 유방이 너를 멸하리라. 역시 초()나라 사람들은 원숭이와 같아 관을 씌워도 소용이 없지." 결국 항우는 함양뿐만 아니라 천하를 몽땅 유방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이목구비를 갖추었다고 다 사람 행세를 하는 것은 아니다. 목후이관(沐猴而冠)과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무산지몽(巫山之夢)

무산(巫山)의 꿈이란 뜻으로, 남녀간의 밀회(密會)나 정교(情交)를 이르는 말이다.

전국 시대, 초나라 양왕(襄王)의 선왕(先王)이 어느 날 고당관(高唐館)에서 노닐다가 피곤하여 낮잠을 잤다.

그러자 꿈속에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나 고운 목소리로 말했다.

"소첩(小妾)은 무산에 사는 여인이온데 전하께오서 고당에 납시었다는 말씀을 듣자옵고 침석(枕席:잠자리)을 받들고자 왔나이다."

왕은 기꺼이 그 여인과 운우지정(雲雨之情:남녀간의 육체적 사랑)을 나누었다. 이윽고 그 여인은 이별을 고했다.

"소첩은 앞으로도 무산 남쪽의 한 봉우리에 살며,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되어 양대(陽臺) 아래 머물러 있을 것이옵니다."

여인이 홀연히 사라지자 왕은 꿈에서 깨어났다.

이튿날 아침, 왕이 무산을 바라보니 과연 여인의 말대로 높은 봉우리에는 아침 햇살에 빛나는 아름다운 구름이 걸려 있었다. 왕은 그곳에 사당을 세우고 조운묘(朝雲廟)라고 이름 지었다.

 

墨 守(묵수)

곧 굳건히 성을 지킨다. 지금은 융통성 없이 의견이나 주장을 굳게 지킨다는 의미다.

묵적은 바로 墨子(묵자)인데 兼愛說(겸애설)로 유명한 천추 전국시대의 사상가 ()나라의 公輸盤(공수반)雲梯(운제)라고 하는 성을 치는 새로운 사다리를 만들어 ()나라로 쳐들어 올 것같다는 말을 전해 들은 묵자는 機先(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초나라로 갔다. 공수반을 만난 묵자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이 신무기를 써서 송나라를 친다는 소식을 들었소. 왜 땅이 남아도는 초나라가 비좁은 땅에 인구만 많은 송나라를 빼앗으려 합니까? 더구나 송나라는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대답할 말이 궁해진 공수반은 왕을 핑계댔다. 초나라 왕을 만난 묵자는 이렇게 말했다. "새 수레를 가진 사람이 이웃의 헌 수레를 훔치려 하고 비단옷을 입은 사람이 이웃의 남루한 옷을 훔치려 한다면 전하께서는 이를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그건 도벽 때문일 것이요"

"그럼 사방 5천리의 대국이 사방 5백리도 안되는 나라를 치려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말문이 막힌 초나라 왕은 겨우 입을 뗐다.

"나는 단지 공수반의 재주를 실험해 보려고 했을 뿐이오"

그러자 묵자는 공수반의 재주와 겨뤄 보겠다면서 허리띠를 풀어 성을 만들고 나무패로 성벽을 쌓았다. 공수반은 模型(모형) 운제로 아홉번 성을 공격했다. 묵자는 그때마다 굳게 지켜 다 막아냈다. 초나라 왕은 송나라를 공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여기서 성을 굳게 지킨다는 뜻인 묵수란 말이 나왔고 뒤에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는 뜻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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