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군이 오지 않는 고립된 성과 해가 기울어지는 낙조. 세력이 쇠퇴하여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 고립무원의 상태를 의미하고 있다.
왕유(王維:699~759)의 자(字)는 마힐(摩詰)이다. 지금의 산서성 출신으로 개원(開元) 초기 진사에 급제하여 벼슬이 상서우승(尙書右丞)에 이르렀다. 그는 음악에 정통하고 시를 잘 지었고 그림 또한 상당한 수준이었다.
'孤城落日'은 왕유의 시가운데 칠언절구(七言絶句)인 송위평사(送韋評事:위평사를 보냄)에서 나왔다.
欲逐將軍取右賢(욕수장군취우현) 장군을 따라서 우현(右賢)을 취하고자
하니,
沙場走馬向居延(사장주마향거연) 모래밭으로 말을 달려 거연(居延)으로
향하네.
遙知漢使蕭關外(요지한사소관외) 멀리 한나라 사자가 소관(蕭關) 밖에
오는 것을 아니,
愁見孤城落日邊(수현고성낙일변) 근심스러워 보이는구나,
고성낙일(孤城落日)이여.
이 시에서 직접 세력이 쇠퇴하여 도움도 기대도 할 수 없는 마음이 안 놓이는 상태에 비유하여 고성낙일(孤城落日)이 불려진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요새 밖의 쓸쓸한 풍경을 노래한 것이며, 그 곳에 간 친구의 그 곳에서의 안타까움을 상상하여 위로하는 기분으로, 도움을 줄 수 없는 자신의 마음을 거기에 대입한 것이다.
광일미구(曠日彌久)
오랫동안 쓸데없이 세월만 보낸다는 뜻.
전국 시대 말엽,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 때의 일이다. 연(燕)나라의 공격을 받은 혜문왕은 제(齊)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3개 성읍(城邑)을 할양한다는 조건으로 명장 전단(田單)의 파견을 요청했다.
전단은 일찍이 연나라의 침략군을 화우지계(火牛之計)로 격파한 명장인데 조나라의 요청에 따라 총사령관이 되었다. 그러자 조나라의 명장 조사(趙奢)는 재상 평원군(平原君)에게 항의하고 나섰다.
"아니, 조나라엔 사람이 없단 말입니까? 제게 맡겨 주신다면 당장 적을 격파해 보이겠습니다."
평원군은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조사는 물러서지 않았다.
"제나라와 연나라는 원수간이긴 합니다만 전단은 타국인 조나라를 위해 싸우지 않을 것입니다.
강대한 조나라는 제나라의 패업(覇業)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죠. 그래서 전단은 조나라 군사를 장악한 채 '오랫동안 쓸데없이 세월만 보낼 것입니다[曠日彌久].' 두 나라가 병력을 소모하여 피폐해지는 것을 기다리면서……."
평원군은 조사의 의견을 묵살한 채 미리 정한 방침대로 전단에게 조나라 군사를 맡겨 연나라 침공군과 대적케 했다. 결과는 조사가 예언한 대로 두 나라는 장기전에서 병력만 소모하고 말았다.
 

저작권자 © 해남군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