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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영지회(絶纓之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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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14  08: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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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楚)나라 장왕(莊王)이 전투에 이겨 궁중에서 성대한 연회를 베풀고 문무백관을 초대했다. 신하들이 모두 큰 소리로 환성을 지르며 왁자지껄 소란했다.
바로 그때 등불이 꺼지더니 왕의 애첩이 비명을 질렀다. 어느 누가 그녀의 가슴을 더듬고 희롱했던 것이다.
그녀는 놀라면서도 그 사나이의 갓끈을 잡아 뜯고는 왕에게 호소했다.
"폐하, 등불을 켜게 하시고 갓끈이 없는 자를 잡아 주세요."
불만 켜면 갓끈이 끊긴 자가 바로 감히 왕의 애희(愛姬)를 희롱한 자라는데 드러날 판이었다.
그러나 왕은 도리어 불을 켜지 못하게 하고 큰소리로 모두에게 갓끈을 떼어 던지도록 했다. 따라서 다시 불을 켜도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장수가 갓끈을 뗀 뒤라 누가 그런 무엄한 짓을 했는지 드러나지 않았다.
3년 후 진(秦)나라와 전쟁이 벌어져 진군에 패한 왕이 위급에 빠져 있자 목숨을 내던져 분전하여 왕을 구하고 그의 용기 덕분에 드디어 대승을 거두게 한 장수가 있었다.
장웅(蔣雄)이란 장수였다. 장왕이 이상하게 생각하여 그를 불러 물었다.
"나는 평소에 그대를 특별히 우대한 것도 아닌데 어째서 그토록 죽기를 무릅쓰고 싸웠는가?"
그러자 그 장수가 엎드려 말했다.
"저는 이미 죽은 목숨이었습니다.
3년 전에 갓끈을 뜯겼던 것은 바로 저였습니다. 그때 폐하의 온정으로 살아날 수 있었으니 그 뒤로는 목숨을 바쳐 폐하의 은혜에 보답하려 했을 뿐입니다."
이 싸움에서 진에게 이기고 난 다음부터 초는 차츰 강대해져서 장왕은 급기야 춘추오패(春秋五覇)의 한 사람이 되었다.

천려일실(千慮一失)
한나라 고조의 명에 따라 대군을 이끌고 조(趙)나라로 쳐들어간 한신(韓信)은 결전을 앞두고 '적장 이좌거(李左車)를 사로잡는 장병에게는 천금을 주겠다'고 공언했다.
지덕(知德)을 겸비한 그를 살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전 결과 조나라는 괴멸했고, 이좌거는 포로가 되어 한신 앞에 끌려 나왔다.
한신은 손수 포박을 풀어 준 뒤 상석에 앉히고 주연을 베풀어 위로했다.
그리고 한나라의 천하 통일에 마지막 걸림돌로 남아 있는 연(燕) 제(齊)에 대한 공략책을 물었다.
그러나 이좌거는 '패한 장수는 병법을 논하지 않는 법[敗軍將 兵不語]'이라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한신이 재삼 정중히 청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패장이 듣기로는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많은 생각을 하다 보면 반드시 하나쯤은 실책이 있다[智者千慮 必有一得]고 했습니다.
그러니, 패장의 생각 가운데 하나라도 득책이 있으면 이만 다행이 없을까 합니다."
그 후 이좌거는 한신의 참모가 되어 크게 공헌했다고 한다.
싸우면 반드시 이기고, 공격하면 반드시 쟁취했던 한신도 후에 고조의 황후인 여후의 꾐에 빠져, 결국 모반을 이유로 허무하게 죽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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