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천주(孔子穿珠)
공자가 시골 아낙네에게 물어 구슬을 꿰었다.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묻는 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음.
공자가 진(陳)나라를 지나갈 때였다. 공자는 전에 어떤 사람에게 얻은 아홉 개의 구멍이 있는 구슬에 실을 꿰어 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되는 것이었다.
그때 문득 바느질을 하는 부인네들이라면 쉽게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뽕밭에서 뽕을 따고 있는 한 아낙네에게로 가서 그 방법을 물었다. 공자의 얘기를 들은 아낙이 말했다.
"찬찬히 꿀(蜜)을 생각해 보세요"
아낙의 말을 듣고 골똘히 생각하던 공자가 '그렇지'하며 무릎을 탁 쳤다.
그리고는 나무 밑에서 왔다갔다 하는 개미 한 마리를 잡아 허리에 실을 대달아 한쪽 구멍으로 밀어넣고 구슬의 반대편 구멍에는 꿀을 발라 놓았다.
그랬더니 개미는 꿀 냄새를 맡고 이쪽 구멍에서 저쪽 구멍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구슬에 실을 꿸 수 있었다.
배우는 일이란 나이나 상하 · 귀천이 없다. 공자가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 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三人行必有我師)'라고 한 말은 학문을 하는 자의 올바른 태도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귀 감(龜鑑)
옛날에는 길흉을 예측하는 방법으로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거북의 등을 말려 굽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여러 갈래 금이 나타나는데, 이것이 균열(龜裂)이다.
이때 생겨난 금을 조(兆)라 하여 어떤 일에 나타나는 기미를 징조(徵兆), 길조(吉兆), 흉조(凶兆)라고 하였다.
다른 한가지는 서죽(筮竹)이다.
대나무를 이용했기 때문에 우리 나라에서는 '산가지'라 하는데 이것은 점쟁이가 산통(算筒)에 넣어 길흉을 헤아릴 때 사용한다.
스스로가 아름다움과 추함을 판단하는 데엔 어떤 도구가 있을까? 그것은 거울이다. 옛날에는 거울이 귀했기 때문에 세숫대야와 같은 곳에 물을 담아 비추어 보았다.
그것이 감(鑑)이다. 다시 말해 감으로써 추하고 아름다움을 판단했다.
송나라의 유학자인 정호와 정이 형제가 어느 날 잔칫집에 갔다. 동생은 점잖게 술을 마시는데 형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장난이 심했다.
동생은 몹시 불쾌했다. 다음날 형을 찾아가 은근히 나무랐다.
"형님, 어젯밤 술자리에서 장난이 너무 심합디다. 장난이 그렇듯 거칠어서야 되겠습니까?"
형이 아무렇지 않게 대꾸했다.
"성인은 거울과 같은 것이야. 고운 것이 비치면 곱게 보이고 추한 것이 비치면 추하게 보일 뿐이지. 그러나 거울은 하등 상관이 없지."
묵자(墨子)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군자는 물을 거울로 하지 않고 사람을 거울로 한다. 물에 비치면 얼굴을 본다. 사람에 비치면 길흉을 안다(君子不鏡於水而鏡於人)." 물을 거울로 하는 경우는 외형만을 본다. 그러나 사람을 거울로 하면 선악(善惡)을 알 수 있다.
공자가 시골 아낙네에게 물어 구슬을 꿰었다.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묻는 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음.
공자가 진(陳)나라를 지나갈 때였다. 공자는 전에 어떤 사람에게 얻은 아홉 개의 구멍이 있는 구슬에 실을 꿰어 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되는 것이었다.
그때 문득 바느질을 하는 부인네들이라면 쉽게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뽕밭에서 뽕을 따고 있는 한 아낙네에게로 가서 그 방법을 물었다. 공자의 얘기를 들은 아낙이 말했다.
"찬찬히 꿀(蜜)을 생각해 보세요"
아낙의 말을 듣고 골똘히 생각하던 공자가 '그렇지'하며 무릎을 탁 쳤다.
그리고는 나무 밑에서 왔다갔다 하는 개미 한 마리를 잡아 허리에 실을 대달아 한쪽 구멍으로 밀어넣고 구슬의 반대편 구멍에는 꿀을 발라 놓았다.
그랬더니 개미는 꿀 냄새를 맡고 이쪽 구멍에서 저쪽 구멍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구슬에 실을 꿸 수 있었다.
배우는 일이란 나이나 상하 · 귀천이 없다. 공자가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 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三人行必有我師)'라고 한 말은 학문을 하는 자의 올바른 태도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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