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를 심기위한 집을 짓는 부부는 허리를 수백차례 굽혔다 폈다 한다. 활죽 몇 개를 꼽고 나면 자연스레 바닥에 주저앉을 정도로 고된 작업이다.부부는 4월 10여일경 고추를 밭에 옮겨 심을 계획이다. 빨리 심으면 서리 때문에 죽어버릴수 있는 위험성도 있지만 고추를 빨리 달려면 빨리 심어야 한단다.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좋은 가격에 팔수 있을것이다는 생각에서다. 부부는 “가격이 좋으면 좋을 것인디, 어쩔지 모르것어, 근다고 땅 놀릴수는 없고, 심어야제 어쩌것어” 라고 말했다.
“농사는 아들이 지어, 그 전에는 쪼간식 했는디 지금이 힘들어서 못하제. 그래서 노느니 쉼쉬로 밭에 풀을 메제”“오전에 나와서 풀 메고 점심 먹고 나와서 풀 메고 힘들면 들어가제”아들 일 도와 줄려고 시간 나는데로 밭에 나온다고 말했다.
“풀을 메야 마늘을 묵제, 풀 메는 것도 때가 있어, 지금 아니면 풀을 멜수가 없어”7마지기 밭농사 했는디, 힘이 부쳐서 못하것어, 고추, 콩, 팥, 깨 쪼깐씩 심을라고 해,마늘은 200평인디, 먹을 것 하고, 종자 할 것 조금 남기고 다 팔아, 올핸 가격이 좋다고 한디, 어떨지 모르것어,
“나이가 먹으께 안 아픈데가 없고 다리도 아프고 농사 짓는 것도 힘들어서 못하 것어, 근디 어짜 것어 밭을 놀릴 수도 없고 할 수 없이 하제”“농촌 일이 겁나게 되제, 가격도 안 좋고”남편 윤씨는 학동에서 태어났고 부인 김씨는 영암 삼호에서 시집왔다.윤씨 부부는 논농사 30마지기와 밭농사 50마지기를 짓고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농사가 짓는 것이 힘들어 지고 농산물 가격도 하락해 논농사도 20마지기로 줄이고 감자 재배도 해년마다 줄여 간다고 한다.
“보리를 심을 때 비가 많이 와서 종자를 늦게 뿌렸는디, 뿌리고 나서도 비가 많이와 죽어 불고 안나부네요”, “그래도 거름하고 나면 좋아 지것죠”라며 웃거름 뿌리기에 한창이다.삼산면 이택(52·용두리)씨는 13년 전 가족들과 함께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으로 내려와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3년 전까지는 사료작물을 심었는데 돈이 안돼 쌀보리 재배로 바꿨다. 사료작물 농사보다 일손이 더 많이 들지만 소득이 더 났다고 말했다.
“떡볶이, 순대, 튀김, 어묵 장사 16년,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미니 붕어빵과 꼬치어묵만 팔았는데 세월이 지난만큼 가짓수도 늘어났어요”“어른 아이 없이 다 좋아 하는 음식이라 다른 장사 보다는 괜찮은 것 같아요. 꾸준히 찾아 주는 단골손님들도 있고요, 꼬마 손님들이 장사에 한몫을 해주죠.”해남읍 문길남(53)씨는 20년 전 해남으로 내려와 두부공장에서 일 하다가 미니붕어빵 장사를 시작했다. 리어카에서 시작한 튀김장사, 6년 전 작은 가게를 얻어 조금은 마음편하게 튀김을 튀길수 있게 됐다.
“작년 가을에 비가 많이 와서 볏짚을 기계로 못 묶었어, 요즘에 비도 안 오고 볏짚이 마르고 논바닥도 마르고 지금이 제일 한가한께 묵으제”“마늘 캐고 호박 심기 전에 밭에다가 볏짚 깔고 심으면 호박이 크면서 흙도 안 묻고 상처도 안 생기고 호박이 이삐게 잘 자라고 나중에 퇴비가 되제”송지면 김대한(송암리, 75)씨는 송암리에서 50여년 동안 농사를 지으며 한평생을 살고 있다.몇 년 전만 해도 논에 마늘을 심었는데 인건비가 비싸 이윤이 남지 않아 밀·보리로 작물을 바꿔서 심었다.지금은 6마지기 밭에 마늘을 심었고 올 봄엔 호박, 고추
“30살 때부터 꼬막, 석화, 반지락 장사를 했제, 그때는 젊어서 5일 장으로 돌아다니면서 장사를 했어. 몸도 안 아퍼 돈을 많이 벌었제”옛날에 비하면 장사가 안돼. 아침 6시 넘어서 나와 오후 5시면 들어가, 오래 않아 있으면 다리가 부어서 오래 않아 있을 수가 없어. 비바람 칠 때가 제일 힘들어 생것 들이라 안 팔믄 상한께 비 맞고 장사 해야항께 해남읍 김문심(해남읍, 68)씨는 5일장 등에서 어패류 장사를 하다 암 수술을 받고 장사를 그만 뒀다. 자식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병원비가 많이들어 자식들한테 돈 받는 것이 미안해 3년
“아이고, 힘들다. 재미가 있어야 덜 힘들텐데, 연 3년 손해보는 배추농사 짓다보니 이제 농사짓기도 싫어져”,“80마지기 배추를 심어 싸디산 가격에 팔기는 팔았어, 근디, 아직 수확을 안해가, 보고 있으면 속이터져, 고작 돈 몇푼 받았봤자, 임대료 주고, 들어간 밑천 제하고, 인건비는 엥간히 비싸, 손해여 손해”“그래도 어쩌것어, 보리라도 심을라면 하는 수 없이 비닐을 걷어야제. 보리심고 배추심고, 돈 되는 특수작물을 심고 싶지만 심을 것이 없어 매년 똑같어”.“올해는 배추 1포기에 1000원만 받을 수 있는 해가 됐으면 좋것어”.
지난해 6.4지방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비례대표 해남군의원으로 당선된 김종숙(여·45)의원. 사회복지사로 평생교육원 운영을 통해 요양보호사를 양성했다. 군의원에 도전한 계기는 지역의 변화를 위해 힘쓰고 싶었고 개인적으로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픈 마음에서다. 뜻이 있는 지역 여성들이 자신을 모범 삼아 자신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가졌으면 하는 마음도 컸다고 한다.“거창하게 선구자라는 표현까지는 쓰고 싶지 않지만 목소리를 내고 싶은 지역의 여성들이 용기를 갖길 바랐고, 또 나갈 수 있는 길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출마를 결심하게 됐다”
“학 같이 못살지언정 까마귀처럼은 살지 않겠다는 자존심을 철학으로 지켜오면서, 원형이정(元亨利貞)의 순리를 따라 면학에 정진하며 선비정신으로 격변기를 살아온 여정의 반추 물을 여러 형태로 작품화 하여 여기에 모았다”움직이는 해남의 역사박물관으로 불리는 춘헌 임상영(80) 선생의 장활헌(長活軒) 서문이다. 장활헌은 200년 이상의 역사를 담고 있는 춘헌의 자택의 당호이자 춘헌이 심혈을 기울여 집필하고 있는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이곳에는 그동안의 역사라 할 수 있는 선산, 문헌, 서책, 유품 등 약 3500점이 보관되고 있어 작은 역사
해남군의회 김병덕(46, 지역구: 해남마산산이)의원, 첫 마디는 요즈음 정신이 없을 정도다였다. 행정사무조사, 행정사무감사, 해남군 업무보고에 내년 예산안 심의까지 연이은 의정활동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김 의원은 정신이 없다면서도 모든 의정활동의 중심엔 현장에서 답을 찾자와 군민과 지역발전을 위해 일하자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의정활동 5개월, 초선의원으로써 많은 것을 배워가면서 의정활동의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 가장 관심있게 들여다보고 있는 점은 해남군의 예산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다. 예산낭비 요소는 없는지, 예산편
해남에서 열리는 내 행사를 찾은 사람이라면 한번 쯤 따뜻한 차와 커피를 나눠주며 봉사를 하는 여성들을 봤을 것이다. 해남 지역 크고 작은 행사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어머니의 마음으로 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해남군 여성단체협의회(회장 김화성)가 있다.지난 1995년에 발족한 해남군 여성단체협의회는 여성단체간의 협력과 친선을 도모하고 여성단체의 발전과 복지사회를 이룩하는 일에 여성이 적극 참여하도록 권장하며, 여성단체의 의견을 사회에 반영함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여성단체협의회에는 현재 국제로타리 목련클럽을 비롯한 11개 여성 관련단체
마을입구 한켠에 나있는 꼬불한 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니 고즈넉한 풍경 안에 덩그러니 집이 한 채 있었다. 그곳에서 고추장 명인 정선자(여 56)씨를 만났다. 올해로 귀농 10년차를 맞는 정씨는 고향은 완도라고 한다. 완도 노화에서 태어나 20살 때 해남 송지로 나왔는데 그해 지금의 신랑 강준호(62)씨와 결혼을 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물으니, 신랑은 오빠 친구로 무려 4년간이나 서로 펜팔을 해오며 사랑을 키우던 사이였다. 지금도 그 편지들을 가끔 꺼내보며 추억을 곱씹기도 한다.결혼 후 시부모님과 함께 오이하우스 농사를 지었지만
“가슴으로 울고 있다.”올 해 여름 양파부터 시작해서 요즘 대파, 배추 가격이 형성되지 않아 속이 상한 심정을 한마디로 표현했다. 비단 그의 심정뿐이랴. 어찌 보면 요즘 농민들의 심정을 대변한 말이기도 했다.올해로 귀농 3년차를 맞는 문내면 남외리 박 광(32)씨는 요즘 농사는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있다. 평소의 지론이 농사를 짓는데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하늘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는 박씨는 “농사를 짓다 보면 태풍이 올지, 장마가 올지, 가뭄이 들지 사람이 예측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
“큰 거 바라는 거 아니다. 병원비라도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어.”북평면 서홍리에 사시는 최창섭(82) 할아버지는 작은 소리로 그렇게 소망을 말했다. 떠들썩한 축제 가운데서도 힘없이 앉아 계시는 최 할아버지는 귀가 잘 안 들린다. 오랜만에 사람들 많은 곳에 와 기분은 좋지만 이내 집에 계시는 할머니 김순애(74)씨를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다고 말했다. 병원을 가던, 장날에 장터에 가던 항상 할머니와 함께 다녔는데 허리가 불편한 할머니는 요즘 집에 누워만 계신다.최 할아버지는 서홍리에서 태어나 평생 서홍리에만 살아왔다. 젊었을 적엔
“제복에 대한 동경심에 시작한 봉사활동이 내 삶이 되었다. 이제는 봉사를 한다는 마음보다는 그저 내가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기분으로 봉사를 한다.”나 자신만을 돌보며 살기도 힘든 세상에 나보다는 내 이웃, 내 고향의 안녕을 더 챙기는 우직한 남자가 여기 있다. 사단법인 해남모범운전자회 임덕수(삼산면, 70) 회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해남읍 내사리에서 6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난 임 회장은 1983년에 (주)대흥택시에 입사했다. 일을 하면서 모범운전자회를 처음 접하고 그의 인생이 크게 달라졌다고 한다. 김 회장은 “ 그 당시 모범운전
“농아인은 겉보기엔 장애가 나타나지 않다보니 덜 불편할거란 오해가 있어요. 하지만 사회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의사소통이 되지 않다보니 사소한 일조차 제약이 많습니다”볼 수 있고 움직일 수 있지만, 내 생각을 온전히 전할 수 없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들을 수 없는 삶은 어떤 삶일까. 전남농아인협회 해남군지부 정철하(47)지회장은 선천적인 농아인으로 태어나 지금껏 세상의 소리를 듣을 수도 말할 수도 없었다.마산 호교리 출신인 정 회장은 6남매의 막내다. 유독 정 회장만 선천적 청각언어 장애를 가진 채 세상에 태어났다. 선천적인 장애였기
“몸이 천냥이면 눈이 구백냥이라는 말이 있어요. 한 순간에 눈앞의 세상이 모두 캄캄하게 변해버리니 좌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눈으로 볼 수 있었던 세상을 청각, 촉각, 후각에 의지해야 느낄 수 있어요. 흰 지팡이가 꼭 필요한 사람이 된겁니다”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해남지회 김덕모(69)지회장은 어릴 적엔 아무런 이상도 없었던 평범한 남자아이였다. 송지 금강리에서 5남매의 막내 외동아들로 태어나 많은 사랑을 받았고, 여느 아이들처럼 뛰어놀기 좋아한 장난꾸러기였다.공부하기 위해 목포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던 중 17살부터 눈에 이상이 생기기
“세상에 대해 눈을 뜨던 30대에 이런 일이 생기니 원통했죠. 내 포부가 여기서 사그라지는 건가 싶었어요. 사고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은 달라도 너무 다르더군요”듬직한 체구가 인상적인 임종선(58)씨. 넉살 좋게 웃는 모습은 여느 중년 남성과 다르지 않다. 그의 두 다리가 바퀴달린 휠체어란 것을 빼면 말이다. 임 씨는 현재 지체장애협회황산면분회 분회장을 맡고 있는 지체 장애인이다.그는 해남읍 남외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천방지축 돌아다니길 좋아했고 운동을 좋아했던 임 씨. 정미소를 하셨던 부모님 덕에 별다른 어려움 없이 유복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