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맞은편에 ‘평화의 소녀상’이 있다. 소녀상 의자 옆 돌바닥에는 ‘1992년 1월8일부터 이곳 일본 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가 2011년 12월14일 1천 번째를 맞이함에 그 숭고한 정신과 역사를 잇고자 이 평화비를 세우다’라는 문구가 한국어와 영어, 일본어 등 3개 국어로 새겨져 있다.

치마저고리를 입고 두 손을 꼭 쥔 단발머리 소녀의 모습이다. 여기에도 숨은 의미가 있다. 단발머리에 거칠게 잘린 머리카락은 부모와 고향으로부터 강제로 단절되었다는 상징이고. 둥글납작한 얼굴은 1920~1940년대 조선 소녀의 얼굴로 단호하면서도 굳은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또 새는 세상을 뜬 할머니들과 현재의 우리를 이어주는 매개체이며 꼭 쥔 손은 무례한 일본 정부의 작태에 대한 분노라고 한다. 발꿈치가 들린 맨발은 고향에 돌아와도 편히 정착하지 못한 할머니들의 방황을, 그리고 관람객이 앉는 의자는 세상을 뜬 할머니들의 빈자리이자 지금 우리가 소녀와 함께 앉아 공감할 수 있는 공간이다.

2013년 7월 30일에는 주한 일본 대사관 맞은편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과 똑같은 소녀상이 해외에서는 처음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인근 글렌데일 시립 중앙도서관 앞 공원에 세워졌다. 소녀상은 주한 일본대사관 맞은 편 소녀상을 만든 김운성·김서경 부부 작가가 똑같이 새로 만들었다. 다만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를 설명하는 석판이 딸린 점이 주한 일본대사관 소녀상과 다르다.

매년 7월30일을 ‘일본군 위안부의 날’로 지정하는 등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온 글렌데일 시정부는 시민 왕래가 많은 시내 노른 자위 땅인 시립 중앙도서관 앞 공원을 소녀상 건립부지로 제공했다.

70주년 광복절을 맞아 지난 8월 15일에는 ‘평화의 소녀상’이 광주와 대구, 창원, 전주, 군산, 원주 등 전국 각지에 세워졌다. 또 10월 28일에는 한·중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이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 가로공원에서 있었다. 한국인 소녀상은 김 씨 부부가, 중국인 소녀상은 중국의 판이췬 칭화대 미술학과 교수와 영화제작자 레오스융 씨가 제작했다.

해남군에도 ‘평화의 소녀상’이 12일 해남공원에서 제막된다. 해남에는 전남지역의 유일한 생존자인 공점엽(95) 할머니가 살고 있다. 황산면 출신으로 지금은 요양원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소녀상은 고정희기념사업회, 국제라이온스 우슬클럽, 국제와이즈맨 해남클럽, 자연사랑메아리, 해남YMCA, 해남군 농민회, 해남나비 등 45개 사회단체가 참여한 해남평화의비 건립 추진위원회가 지난 7월 창립돼 각자 홍보 및 모금활동을 펼친 결과물이다. 전남지역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일본대사관을 직시하는 소녀상의 눈빛에는 우리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 시각도 담겨있다. 아픔을 극복하려하지 않고 회피하려고만 하는 정부에 대한 쓴 소리다. 남부끄럽고 창피한 일이라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1991년이 돼서야 위안부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땅끝’ 해남에 세워지는 소녀상이 위안부 문제 해결에 큰 울림이 되었으면 한다.

 

저작권자 © 해남군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