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난영(李蘭影)은 1916년 6월 6일, 목포에서 태어났다.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 본명은 이옥례(李玉禮)로 호적에는 이옥순(李玉順)으로 기록돼 있다. 1923년 목포공립여자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졸업은 하지 못했다. 15세 시절인 1930년에 여배우가 되려고 태양극단에 입단한다. 이 때 박승희가 이난영이란 예명을 지어준다. 그러나 무대에 주연으로 서지는 못했다. 1933년에는 태평레코드에서‘시드는 청춘’을, 오케레코드에서는 ‘향수’를 발표하며 정식으로 데뷔했다. 1943년까지 이난영은 오케레코드 전속가수로 활동하며 간판
‘혼자 밥먹고(혼밥)’, ‘혼자 술 마시기(혼술)’에 이어 노래방이나 영화관에 혼자 가서 여가를 즐기는 ‘혼자 놀기(혼놀)’가 대학가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운영하는 CJ CGV에 따르면 지난해 영화표 ‘한 장’을 예매한 관객은 전체의 10.1%로 나타났다. 1인 관객이 10%를 넘긴 건 지난해가 처음이다. 1인 관객 3명 중 1명(37%)은 20대였다. 전문가들은 “1인 가구 증가에 대학생들의 취업난까지 겹치며 생긴 현상”이라고 분석했다.‘혼밥족’들을 위한 1인 식당도 진화를 거듭해 ‘혼밥’의 최고
세월호 선체를 목포 신항에 올려놓은 상황에서 항구축제를 치러야 할까? 목포시는 항구축제 일정과 인양될 세월호 선체 거치시기가 겹칠 가능성이 일면서 축제를 강행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시는 오는 8월 12~16일 목포 북항에서 올해로 2회째인 '2016 목포 항구축제'를 열 계획이다. 시는 항구축제 일정과 현재 작업이 한창인 세월호 선체 인양 및 목포 신항 거치시기와 겹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세월호 선체 인양은 정부가 지난해 4월 확정 발표함으로써 시작됐다. 세월호는 조류가 우리나라에서 울돌목 다음으로 빠른 맹골수도 수심
이세돌과 알파고와의 세기의 바둑대결 이후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이런 가운데 한 중앙 일간지에 실린 다음과 같은 기사가 눈길을 끈다. 인공지능 의사에 관한 이야기다. 의료계의 불신이 깊어지고 있는 가운데 나온 기사는 씁쓸하면서도 왠지 후련하다. 의사라면 환자의 입장에서 배려하고 치료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의사들은 고압적이고 환자들을 단지 상품 취급하려는 경향마저 있다. 잔뜩 겁을 준 뒤 불필요한 처치로 수가를 올리려는 작태마저 비일비재한 것이 우리네 의료계의 현실이다. 때문에 기사는 씁쓸하면서
지난 2012년에 출간된 ‘남자의 종말(The End of Men)’은 미국 시사 월간지 ‘애틀랜틱’의 수석 에디터 해나 로진이 쓴 책으로 ‘그리고 여성이 일어서고 있다(And the Rise of Women)’라는 부제가 붙었다. 로진은 이 책에서 여자에 대한 남자의 오랜 힘·역할의 우위가 끝났을 뿐 아니라 역전되고 있다고 얘기한다. 당연히 그 힘의 우위가 받쳐 준 전통적 남성성도 종말을 고하고 있고, 긴 세월 여성이 감내해야 했던 마초문화적 차별을 이젠 남성이 감수해야 하는 역차별 현상까지 일어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더불어 영원
소설가 황석영이 계간 ‘창작과비평’ 2016년 봄호에 단편소설 ‘만각스님’을 발표했다. 그가 단편을 발표하기는 역시 같은 책인 창작과비평 1988년 봄호에 단편 ‘열애’를 발표한 이후 28년만이다. 그동안 황석영은 ‘오래된 정원’ ‘손님’ 등 주로 장편 집필에 몰두해 왔다.창작과비평 창간 50년을 맞아 쓴 이 소설은 5·18민주화운동 뒤를 시간적 배경으로 삼았다. 소설은 소설가 화자인 ‘나’가 10년 가까이 끌어온 연재소설의 마지막 장을 끝내고자 집필 장소를 찾는 것으로 시작된다. 1980년대 역사소설 ‘장길산’을 연재했던 황 씨의
누구나 한 번 쯤은 설날에 세뱃돈을 받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시골에서는 마을의 집들을 돌며 어르신들께 세배를 드리는 풍속이 있었다. 그러면 세배를 온 아이들에게 세뱃돈을 주거나 과자나 사탕을 대접했다. 이러한 세뱃돈 풍속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이나 중국 등 다른 동북아 국가, 동남아시아, 나아가 유럽의 프랑스와 벨기에에도 남아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설날 세뱃돈을 주고받았을까. ‘서울 600년사’ 등에는 전근대 시기엔 일반적으로 세배를 한 사람들에게 ‘돈’보다는 덕담과 세찬(歲饌)으로 대접했다는 기록이
혼자 있는 시간이 선진국을 만든다?지난해 서점가를 강타한 유행어는 ‘혼자 있는 시간’이었다. 사이토 다카시 교수의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은 출간 5개월 만에 무려 17만부가 팔렸고, 김정운 교수의 신간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역시 종합베스트셀러 20위권에 진입했다. 이 외에도 지난 하반기 동안에만 ‘개인주의자 선언’, ‘고독이 필요한 시간’, ‘나와 잘 지내는 연습’ 등의 신간이 쏟아졌다. 왜 한국인들은 ‘혼자’ ‘고독’ 관련 책을 골라 읽었을까. ‘혼자 있는 시간’ 관련 서적 열풍은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보내지 못하
전남 인구가 1998년 이후 처음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전남 인구는 2015년 말 현재 190만8996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1998년 말 217만1000여 명이었던 전남도 인구는 이후 매년 줄어들어 2014년 말 190만5780명까지 감소했다가 지난해 말 처음으로 증가세로 돌아섰다. 지난해 인구가 증가한 것은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 인구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또 지난해 순천, 광양, 무안, 구례 등에서 일자리 창출, 정주 여건 개선 및 귀농·귀어·출산 정책 등으로 인해 인구가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다른 시도에서 전남도로 순
올해 영화 관객수가 역대 최다를 돌파했다. 그야말로 한국영화의 ‘미친 존재감’을 유감없이 보여준 결과다. 관객점유율에서 한국영화는 5년 연속 외국영화를 누르며 최다관객 기록을 견인했다. 2010년대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12편 가운데 무려 9편이 한국영화였다.이는 1974년 개봉돼 장안의 화제를 불러일으킨 ‘별들의 고향’이 46만 5천이라는 당시 최고 흥행기록을 수립한 것이 비춰보면 엄청난 숫자다. 영화 흥행 기준은 영화의 총 수입을 기준으로 삼는 것과 총 관객 수를 기준으로 삼는 것이 있다. 보통 미국은 그 기준이 총 수입이며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2004년 모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이유는 7조 때문인데 ○○일보 주장처럼 광화문 네거리에서 ‘김일성 만세’라고 부르면 어떻게 하느냐는 우려는 헌법에 나와 있는 표현의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고 이를 억압하겠다는 뜻이다.”이러한 발언은 이후 크게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일부 단체들은 그가 북한을 찬양했으니 서울시장에서 물러나야 한다며 퇴진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처럼 당시 이 논리에 동조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시인 김수영(金洙暎,1921~1968)은 4.19가 일어나
‘한국의 앨비스 프레슬리’로 불리는 가수 남진(본명 김남진, 69)은 나훈아와 함께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70년대 최고의 인기가수로 이름을 날렸다. ‘오빠부대’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이들의 팬심도 뚜렷이 갈려 당시 극장을 중심으로 한 이른 바 ‘리사이틀’ 공연 때면 매회 전석이 매진될 정도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저 푸른 초원 위에’로 시작되는 ‘임과 함께’는 아직도 잔칫집이나 회식자리에서 애창되는 불멸의(?) 히트곡이다. 남진은 1946년 목포에서 목포일보의 사장이었던 김문옥의 3남 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남진은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맞은편에 ‘평화의 소녀상’이 있다. 소녀상 의자 옆 돌바닥에는 ‘1992년 1월8일부터 이곳 일본 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가 2011년 12월14일 1천 번째를 맞이함에 그 숭고한 정신과 역사를 잇고자 이 평화비를 세우다’라는 문구가 한국어와 영어, 일본어 등 3개 국어로 새겨져 있다. 치마저고리를 입고 두 손을 꼭 쥔 단발머리 소녀의 모습이다. 여기에도 숨은 의미가 있다. 단발머리에 거칠게 잘린 머리카락은 부모와 고향으로부터 강제로 단절되었다는 상징이고. 둥글납작한
진보냐, 보수냐 하는 이념의 갈등은 날이 갈수록 골만 더 깊어져가는 경향이 있다. 최근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싼 노정된 첨예한 갈등도 이러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진보진영에서 ‘친일인명사전’의 배포와 ‘반헌법행위자열전’ 발간 방침을 밝히자 보수단체들은 올해 말까지 ‘종북인명사전’을 발간하겠다며 사전 준비행사까지 열었다.친일인명사전은 민족문제연구소가 일제 강점기에 민족 반역, 부일 협력 등 친일반민족행위를 저지른 친일파의 목록을 정리해 지난 2009년 11월 8일에 발간한 인명사전이다. 총 3권으로 4389명이 수록
제14대 대통령을 지낸 김영삼 전 대통령이 22일 오전 0시21분께 서거했다. 향년 88세.김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김대중(DJ)ㆍ김영삼(YS) ‘양김(兩金)’시대가 막을 내리게 됐다. YS와 DJ가 이끌던 상도동과 동교동은 지금까지 민주화 세력의 양대산맥이자 한국 정치의 산실로 꼽힌다. 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30~40년 가까이 한국정치를 풍미했던 ‘3김(金)’가운데 이제는 김종필(JP) 전 자민련 총재만 남게 됐다.김 전 대통령은 1927년 12월20일 경남 거제에서 아버지 김홍조, 어머니 박부연의 8남매중 장남으로 태어
“어느 날씨 좋은 일요일 오후였어요. 동생과 친구랑 같이 맥주를 마시면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하고 있었죠. 몇 잔을 더 하면서 화제는 70년대 패션과 어떻게 모든 유행이 결국에는 다시 돌아오는 지로 흘러갔죠. 그러다가 나는 ‘분명히 아직 돌아오지 않은 유행도 있을거야’ 라고 말했어요. 한 잔 더 마시자, 콧수염엔 당최 무슨 일이 생겼는 지로 옮겨갔어요. ‘왜 아직도 콧수염은 다시 유행하지 않는거지?’ 그러고 나서 콧수염을 되찾자는 데 의견을 모았죠.”모벰버 창립멤버인 애덤 게론의 얘기다. 2003년 호주 멜버른에서 30명의 남자들
우리 손으로 만든 최초의 자동차는 6.25전쟁 후 미군용 지프차를 재생하던 하동환공업사와 신진공업사에 이어 1955년 8월에 국제차량공업사의 최무성 삼형제가 수공업형태로 지프형 승용차 ‘시발(始發)택시’를 만들면서다. 이 택시는 미군으로부터 불하받은 윌리스 지프 엔진과 변속기에 드럼통을 두들겨 펴서 만든 차체를 조립한 투박한 것이다. 그래도 당시 사람들은 “시발택시 한 번 타보는 게 소원”이라 했고. 차만 보면 ‘시발차’라 불렀다. 그만큼 서민에게는 언감생심이었고. 결혼식을 마친 신랑신부가 이용했을 정도로 택시가 귀한 대접을 받던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 1915~2000)의 시 ‘국화 옆에서’의 첫머리이다. 미당은 ‘시의 정부(政府)’라고 불릴 만큼 탁월한 시어로 많은 명시를 남긴 시인이다. 그러나 미당이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2001년 한 문학지의 인터넷게시판에는 이 ‘국화 옆에서’가 친일시라는 글이 올라와 노난에 휩싸인 적이 있다. 시에 등장하는 노오란 국화(황국, 黃菊)와 거울, 누님과 같은 시어가 일왕의 숭배와 관련이 있다는 거였다. ‘황국’은 일본에
초등학교 교과서에 주로 등장했던 이야기의 주인공은 ‘철수와 영희’다. 그런 유년의 기억들로 인해 중년세대들에게 철수와 영희는 마치 첫사랑처럼 그리운 이름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철수 하면 영희가 떠오르듯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단짝 친구의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정한 세월은 순수하고 풋풋했던 철수와 영희를 더 이상 그 시절의 그 모습 그대로 놔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느덧 중년인 그들이 귀여운 바둑이와 놀지도, 소꿉놀이와 같은 삶도 살지는 않을 것 같다. 영국 최대 출판사 펭귄북스가 자사의 아동용 출판시
‘궂은 비 하염없이 쏟아지던 영등포의 밤...’으로 시작되는 ‘영등포의 밤’은 오기택(吳基澤)이 1962년 부른 데뷔곡으로, 그는 이 노래로 단숨에 스타덤에 오른다. 당시 영등포에는 시골에서 상경해 공장에 다니던 젊은이들이 많았다. 고된 타향살이와 공장 일에 지친 청춘들은 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위안을 삼고는 했다. 거리에는 온통 이 노래로 넘쳐났다. ‘영등포의 밤’이 오기택의 출세작이라면 ‘아빠의 청춘’은 대중가요사에 고전(古典)이라 할 만한 곡이다. 물론 ‘고향무정’이니, ‘충청도 아줌마’ 등 많은 히트곡들이 있지 만 ‘아빠의 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