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사회에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이 역사교과서에 대한 국정화를 둘러싼 논쟁이다. 실로 교과서 전쟁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다.

종전의 검인정 교과서의 상당수가 좌편향적이어서 국정을 통해 이를 바로잡겠다는 것이 정부의 취지다. 그런데 야당을 비롯한 이른바 진보세력과 일부 여권 인사들이 국정화를 반대하고 나섰다.

진보세력의 반대 이유는 ‘친일 및 독재 미화’의 우려가 있다는 것으로 아예 ‘친일 독재 국정 역사교과서 반대’라는 주장을 한다.

또 일부 역사학 교수들은 집필을 거부하고 나섰다. 이런 가운데 교육부는 2일 역사 교과서에 대한 국정화 행정예고를 한 데 이어 다음날인 3일 확정고시 했다. 이로써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기정사실화가 된 셈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

 

친일 및 독재 미화를 내세우며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반대여론이 높아지자 박근혜 대통령이 나서서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지난 달 27일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비정상의 정상화’ 차원에서 이를 관철할 뜻을 분명히 했다. 역사교육을 정상화시키는 것은 당연한 과제이자 우리세대의 사명으로 역사 왜곡이나 미화는 자신부터 좌시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고시 확정 후에도 헌법소원과 집필거부운동, 대안교과서 개발은 물론 국정화 취소를 내년 총선 공약으로 내세울 것이라고 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교과서는 1년짜리 정권교과서라는 것이 문 대표의 주장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언제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역사교과서를 가져본 적이 있었는가, 라는 생각을 해본다.

‘반공’만이 절대 선으로 간주되던 시절에는 공산주의는 물론이고, 독재에 반대하는 진보 세력은 모두 ‘빨갱이’로 몰렸다. 친일의 부끄러움 보다 더 무서운 것이 ‘빨갱이’라는 굴레였던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검정 교과서가 좌편향적이라는 것은 ‘종북’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것이었고, 따라서 국정화를 반대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종북 좌파임을 인정하는 모습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소위 말하는 ‘종북 프레임’이다. 박 대통령의 국정화 방침의 공식적인 천명은 이것을 노렸을 것이고. 좌편향 된 검정을 바로잡을 노력은 않고, 국정화만 반대한다면 야당은 자칫 종북 프레임에 갇혀 이를 인정하는 결과를 초래할 지 모른다.

더욱이 야당이 국정화 반대를 총선 공약으로 내세웠을 때 통진당의 숙주라는 비판과 맞물려 색깔 논쟁의 공격을 받을 것은 명약관화해진다.

흔히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일제강점기 우리의 역사는 식민사관의 입장에서 볼 때 외세에 굴종하는 나약한 민족일 뿐이었다.

대륙을 향해 포효하는 형상이었던 한반도의 모습은 말 잘 듣는 순한 토끼의 모습으로 바뀌었고. 대륙을 경영했던 고구려나 백제의 웅혼한 기상은 부정됐다.

오로지 삼천리 금수강산만 남은 것이다. 분명한 우리의 영토인 간도는 일본이 1909년 9월에 청과의 간도협약으로 제멋대로 내준 이래로 빼앗긴 땅이 돼버렸다.

지금 우리 가운데 간도를 우리 땅으로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독도가 우리 땅인 것처럼. 간도도 분명 우리의 땅임에도 이를 빼앗긴 채 그 땅에 남겨진 조선인은 그대로 조선족이 됐다. 패자의 역사가 치러야 하는 대가는 이처럼 혹독하다.

지금의 검인정 교과서는 2003년 한국 군현대사 교과서의 발행 검정화에 의해서다. 당시는 노무현 정부로 친일인명사전 제작 등의 논의가 활발하던 때다. 그러니 좌편향적이라는 논란은 이와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진보세력의 입장에서 보면 승자의 기록일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의 역사를 후대가 읽는다면

 

우리의 근대사는 상당부분이 왜곡됐다. 근대사가 이러할진대 고대사가 제대로일 리가 없다. 현존하는 고대사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뿐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빈약하다.

비교적 정사라는 삼국사기는 중국의 춘추필법(春秋筆法)으로 왜곡된 중국의 역사책을 그대로 베낀 것이고. 삼국유사는 그야말로 ‘전설 따라 삼천리’와 같은 야사(野史) 형식을 하고 있다.

따라서 고대사를 그나마 제대로 알려면 중국의 사서에서 마치 숨은 그림 찾기 마냥 행간에서 추적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의 역사교과서를 수백 년 후대들이 읽는다고 생각을 해보자. 좌편향 교과서를 읽었다면 지금을 좌파가 득세한 시대로 이해할 것이고. 친일 독재를 미화한 교과서를 읽었다면.

비겁한 선조라고 부끄러워할 지도 모를 일이다. E.H.카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 사이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어느 한쪽으로 편향되지 않은 균형된 역사교과서를 갖는다는 것. 이는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나름의 떳떳한 통로가 될 것이다.

국정을 독재의 산물로 규정짓고, 검정만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가늠하는 잣대라는 주장은 어디서 비롯됐는가. 바로 진보와 보수, 혹은 중도라는 이념의 간극 때문이다.

민주화 이후 두드러진 이러한 이념 논쟁은 적어도 통일이 되기 전에는 풀 수 없는 난제다. 따라서 우리의 근현대사는 집권세력의 이념에 의해 춤을 출 수밖에 없는 구조라 해도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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