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은 오는 8월 31일까지 전 국민을 대상으로 ‘난중일기 독후감 및 이충무공 유적답사기’를 공모하고 있다. 공모전은 난중일기 독후감과 이충무공 유적답사기 등 2개 부문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문화재청의 공고를 보면서 생각나는 것이 해남에서의 이순신 장군의 행적이다. 난중일기를 보면 이순신은 1597년 음력 8월 20일 장흥 회령포(장흥군 대덕읍 회진리)에서 북평 이진(梨津)으로 진을 옮긴다. 회령포 앞 포구가 협착하다는 이유였다. 이진으로 옮긴 이순신은 다음날 새벽, 날이 채 밝기도 전에 곽란이 일어 몹시 앓는다. ‘몸을 차게
‘볼거리’를 파는 농업. ‘경관농업(景觀農業)’이다. 대동강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식 발상으로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경관농업은 지역별로 특색 있는 작물을 재배해 관광수요는 물론 농가소득을 창출하는 신개념의 영농법이다. 최근 힐링을 위한 녹색농촌체험관광이 늘어나면서 지자체마다 경관농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농산물 생산 기능만을 담당했던 농촌이, 각종 체험과 볼거리를 더해 도시의 소비자들을 농촌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관농업은 신개념의 6차 산업이다. 체험과 관광을 위해 머무는 동안 숙식은 물론 농산물을
녹우당 문은 여전히 꿈쩍도 않고 있는 모양이다. 고산 윤선도의 고택인 녹우당이 벌써 오래전부터 문을 굳게 걸어 잠근 채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녹우당의 폐쇄는 해남군과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진다. 고산 유적지 정비사업 당시에도 해남윤씨 종손측이 문을 닫는 등 녹우당 폐쇄조치는 벌써 여러 차례 되풀이 돼왔다. 여기에 고산의 원림이었던 금쇄동의 진입마저 굳게 막고 있다. 해남군은 금쇄동을 발굴한다는 계획으로 최근 지표조사를 마친 상태다. 이는 관내의 여타 문화재에 비해
조오련은 해남이 낳은 불세출의 수영선수다. 불모지였던 한국 수영계에 혜성같이 나타나 아시아 무대를 평정한 조오련을 사람들은 ‘아시아의 물개’라고 불렀다. 그럼에도 정작 고향인 해남군에서는 그를 추모하지 않고 있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생가는 물론이고, 수영을 배우고 익혔던 금강골 어디에도 그의 흔적은 없다. 해남이 내세울만한 자랑스런 스포츠 스타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러하진 않았다. 지금처럼 조오련과 해남군이 불편해진 것은 ‘조오련배 땅끝바다수영대회’에서 유족들과 갈등을 겪으면서부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상상을 해보았을 것이다. 병아리를 길러서 닭이 되면 팔아서 돼지새끼를 사고, 또 그것을 키워 송아지를 사고, 또... 뭐 이런 상상 말이다. 시작은 미약하나 꿈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금세라도 대농장주가 되는 그런 꿈을 꾸며 괜히 뿌듯해 했던 기억. 그런데 이런 꿈을 현실로 만든 사람이 있다. 닭고기의 대표 브랜드인 하림그룹 김홍국 회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열한 살 때 외할머니에게서 받은 병아리 열 마리로 시작해 지금은 연간 2억9천만 마리의 닭을 생산하는 엄청난 성공을 일궈냈으니. 꿈은 이뤄
본지에 연재하고 있는 ‘다시 보는 해남 땅 구석구석’이 이번 소설가 황석영의 ‘장길산’ 집필실 조명으로 40회를 맞이했다. 20회에 연재했던 ‘해남에서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 마산 연구리’이후 개인적인 사정으로 6개월 가까이 재충전의 기간을 거쳐 다시 20회를 더하게 된 것이다. 내게는 오래 전부터 계획하고 있던 일이 있다. 천성이 여기저기로 다니길 좋아하는 관계로 기회가 되면 우리 땅을 인문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해보자는 것이었다. 90년대 이후 레저인구가 늘어나면서 ‘가볼만한 곳’이나 ‘맛있는 집’ 등 대중들의 기호를 충족시키고
해남군은 올해를 농수산업 1조 원 시대를 실현하는 원년으로 삼겠다고 한다. 농수산업을 기반으로 한 해남군으로서는 이와 같은 설정이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힐링 해남’을 추구하는 군으로서는 이에 걸맞는 관광과 서비스 분야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다만 농업을 미래산업으로 보고 친환경농업의 내실화를 꾀한다는 계획이지만 이것으로는 어딘가 진부한 면이 없지 않다. 아무리 유기농 친환경농법이 주목받는 시대라고는 하나 농업 생산성의 효율적인 면을 따져볼 때 이의 실현이 얼마마한 가치를 창출할 것인지는 불투명한 상
20년이 다 된 걸로 기억이 난다. 탐사보도차 어느 군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자치시대 출범 이후 변화된 모습을 연재할 때여서 이것저것 자료를 수집할 겸 기자실을 들렀다가 깜짝 놀랐다. 군세가 그리 크지 않은 곳인데도 기자실에 주재하는 기자들이 대략 30명은 돼보였다. 언론사의 이름도 대부분 생소한 것이어서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저희들끼리 부르는 호칭도 대부분 ‘XX국장’으로 극심한 ‘직위 인플레’ 양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우연히 이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는데 마치 엄청난 비리를 적발한 것처럼 거친 속어를 써가며 공동기사로 대응해야
1987년 민주항쟁 결과 정권의 ‘6.29 선언’은 시민사회에 대한 절차적 민주화를 약속한 것으로 언론 민주화에 대한 내용도 담고 있었다. 그 결과 1980년 11월 신군부에 의한 언론통폐합으로 통제됐던 언론계는 ‘언론 자유화’의 바람을 타고 속속 복간(復刊)과 창간(創刊)을 하게 된다. 그중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지역신문의 창간이다. 그동안 언론통폐합으로 ‘1도 1사’로 묶여 있던 지방지가 시군을 대상으로 하는 지역신문으로 세분화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지방자치제 도입을 계기로 기초단체마다 지역신문이 우후죽순격으로
지난 주말에 친구가 나를 만나러 첫차를 타고 서울서 내려와 막차로 올라갔다.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친구인데 올해가 가기 전에 얼굴이라도 봐야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첫차를 탔다는 것이다. 친구는 강진 다산초당을 이야기했다. 18년이라는 유배생활을 하면서 ‘목민심서’, ‘경세유표’와 같은 걸출한 저술을 남긴 그곳에를 가보고 싶다는 거였다. 이공계를 나온 친구의 이러한 제의는 내심 의외였지만, 중년의 나이가 되니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조금씩 보이는 것 같다며 다산을 내게 들려주기도 했다. 중3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는 넉넉지 못한 가정형
지난주 개봉한 영화 ‘히말라야’를 봤다. 산악인 엄홍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는 히말라야라는 대자연에 도전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무모하기 짝이 없는 도전이지만 산에 매혹된 ‘산쟁이’들에게는 목숨을 걸 만큼 멈출 수 없는 그 무엇인 것이다. 영화는 대부분 히말라야 설산(雪山)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휴먼원정대’가 도착한 네팔 쿰부히말지역의 루클라에서부터 셰르파의 고향으로 불리는 남체바자르를 거쳐 에베레스트에 이르는 여정이 공중촬영으로 비쳐졌을 때 10여 년 전인 2004년 10월에 떠났던 길이기도 해서 감
우리네 속담에 ‘잘 되면 제 탓, 못 되면 조상 탓’이라는 말이 있다. 요즘 유행어가 된 ‘금수저’와 ‘흙수저’ 이야기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태생적인 한계를 핑계 대다 보니 모든 일을 운수소관으로 돌리려는 경향이 있다. 또 혹자는 개천에서 용 나던 시대는 이제 없다고도 한다. 배경이 안 좋으면 아무리 기를 써도 못 오를 나무라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는 알게 모르게 패배주의가 만연해 있다. 마치 오늘 하루를 사는 사람처럼 말이다. 고도성장기에는 이에 맞춰 자기계발서들이 불티나게 팔렸다. 그러나 요즘 사회는 독서인구도
지난 12일 2016 대입 수능시험이 전국적으로 치러졌다. 수시합격으로 진즉에 입시에서 해방된 수험생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수능결과에 따라 정시를 준비할 것이다. 예비고사 세대인 필자로서는 요즘의 입시제도는 솔직히 쉽게 이해가 가지는 않는다. 여느 학부모들처럼 입학설명회장에는 근처도 가본 일이 없거니와 고사장 주변에도 전혀 얼씬거리지도 않았다. 일반적인 기준에서 보면 매우 무성의한 수험생 학부모였음에는 분명하다. 이러한 무관심은 필자가 수험생이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를테면 집안내력과도 같은 것인데 요즘 수험생을 둔 학
지난 일요일 오후. 조성진의 피아노 연주를 보았다. 그의 연주를 보면서 피아노의 선율이 흐른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가야금에 ‘농현(弄絃)’이 있다면 가히 ‘농반(弄盤)’의 경지랄까. 자유자재한 손놀림도 놀라웠거니와 피아노의 지배자다운 모습 또한 인상적이었다. 스물한 살 청년 조성진은 그렇게 지난달 20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폐막한 제17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결선에서 인상적인 연주를 해냈다. 콩쿠르 역사상 한국인 최초의 우승으로 세계 최고의 피아노 콩쿠르를 석권함으로써 피겨 스케이팅에서 김연아가 올림픽 금메달을 딴 것과 맞
요즘 우리 사회에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이 역사교과서에 대한 국정화를 둘러싼 논쟁이다. 실로 교과서 전쟁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다.종전의 검인정 교과서의 상당수가 좌편향적이어서 국정을 통해 이를 바로잡겠다는 것이 정부의 취지다. 그런데 야당을 비롯한 이른바 진보세력과 일부 여권 인사들이 국정화를 반대하고 나섰다. 진보세력의 반대 이유는 ‘친일 및 독재 미화’의 우려가 있다는 것으로 아예 ‘친일 독재 국정 역사교과서 반대’라는 주장을 한다. 또 일부 역사학 교수들은 집필을 거부하고 나섰다. 이런 가운데 교육부는 2일 역사
내가 ‘묵은지’라는 말을 알게 된 것은 해남으로 내려와서다. 그 전에는 ‘묵은 김치’라고만 알고 있었다. 2003년 여름으로 기억한다. 여름휴가철을 맞아 땅끝을 찾아 온 관광객들에게 송지면 부녀회원들이 묵은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2~3년을 김장독에서 숙성시킨 김치를 묵은지라고 부르다는 것을 이 때 알았다. 이렇게 오래 묵은 김치는 보약이나 다름없다는 말과 함께. 그리고 다음해부터인가 ‘묵은지’를 이름으로 내건 식당들이 전국적으로 속속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한마디로 ‘묵은지 열풍’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이전에도 김치찌개가 없던
화원에 가면 신덕리 신평마을에 일본식 고가가 있다. 마을 진입로변 작은 다리 건너에 있는 고가는 일본식 이층집 구조로 외견상으로 금세 눈에 띄는데 아쉽게도 오랫동안 방치된 상태로 폐가나 다름없다. 규모로 볼 때 일제강점기 일본인 지주가 지었을 것으로 보이는 고가는 해방 후에 적산가옥으로 불하가 됐을 것이다. 한 주민의 말로는 지역에서 운수업을 하던 사람이 거주했고, 진료소로서의 기능을 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빈집으로 방치돼 쓰러지기 직전의 안쓰러운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1월에 이 집을 찾아갔을 때는 집
일본 세토(瀨戶)내해(內海)에 나오시마(直島)라는 섬이 있다. 시코쿠(四國)섬 북동부에 있는 가가와(香川)현의 중심인 다카마쓰(高松)항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는 작은 섬이다. 그러나 나오시마는 ‘예술의 섬’이라 불릴 정도로 세계적인 유명세를 타고 있다.이는 일본 출판그룹 베네세 홀딩스의 회장인 후쿠다케 소이치로(福武總一郞)가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와 손잡고 일궈낸 결과다. 3200여 명 남짓한 주민이 살고 있는 작은 섬 나오시마는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폐기물 처리장이 들어서는 등 버려진 섬에 불과했다.하지만 지금
올해도 명량대첩축제가 9일부터 11일까지 우수영 일원에서 개최된다.축제는 잘 알려진 것처럼 13척의 배로 왜군 133척을 물리친 명량해전을 기리는 행사다. 23전 23승이라는 세계 해전사에 유례가 없는 불패의 신화를 쓰며 나라를 구한 충무공의 정신은 그 유명한 ‘약무호남(若無湖南) 시무국가(是無國家)’, 이 여덟 글자에 녹아 있다고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충무공이 백의종군할 즈음 원균의 무능으로 칠천량 해전에서 조선 수군은 거의 궤멸되다시피 했다. 그동안 충무공의 전술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던 왜군은 이 전투로 기세
지난 1991년 30년 만에 지방선거가 부활하며 다시 시작된 지방자치제도가 벌써 햇수로 25년이 됐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내세우며 출범한 지자제는 민선 6기 자치단체장들을 중심으로 어느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모양새다.지자체 출범과 곧 이은 21세기로의 진입은 가히 속도를 무색케 하는 정보화시대에 맞춰 급변의 시간 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정부차원에서도 안으로는 지방화를 꾀하면서 밖으로 세계화라는 투 트랙을 강조해 왔다.세계화를 내세워 21세기 노마드(nomad, 유목민)를 얘기한다. 세계를 거침없이 유목민처럼 누비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