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교과서에 주로 등장했던 이야기의 주인공은 ‘철수와 영희’다. 그런 유년의 기억들로 인해 중년세대들에게 철수와 영희는 마치 첫사랑처럼 그리운 이름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철수 하면 영희가 떠오르듯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단짝 친구의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정한 세월은 순수하고 풋풋했던 철수와 영희를 더 이상 그 시절의 그 모습 그대로 놔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느덧 중년인 그들이 귀여운 바둑이와 놀지도, 소꿉놀이와 같은 삶도 살지는 않을 것 같다. 영국 최대 출판사 펭귄북스가 자사의 아동용 출판시리즈 주인공 ‘피터와 제인’이 중년이 된 후 겪는 일상을 담은 ‘키덜트(Kidult)’ 시리즈를 새롭게 출간한다고 최근 텔레그래프와 BBC 등이 보도했다. 이러한 소식이 전해지자 전 세계 독자들은 “아이리시세터(개의 품종)와 뛰어놀던 피터와 제인에게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라며 궁금해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리시세터와 뛰어놀던 피터와 제인’은 ‘바둑이를 좋아하던 철수와 영희’의 영국 버전인 셈이다.

이번 키덜트 기획은 펭귄북스사의 대표 브랜드 ‘레이디버드’를 통해 오는 11월 18일 발표되는데, 레이디버드가 지난 1964년부터 1967년까지 어린이 교습용 책으로 내놓은 총 36권의 ‘핵심단어 읽기방법(Key Words Reading Scheme)’ 시리즈물 주인공이 ‘피터와 제인’이다. 펭귄북스 측은 레이디버드의 대표 로고인 빨간색 무당벌레를 처음 등록·사용한 지 100주년 되는 해를 기념하기 위해 이 책을 마련했다고 한다.

새 시리즈 제목은 ‘중년위기(Mid-Life Crisis)’ ‘힙스터(hipster)’ ‘헛간(Shed)’ ‘아내 사용설명서(How it works-The wife)’ 등이다. 주로 현대를 살아가는 중년들의 문제를 블랙 코미디 형식으로 그려낼 예정이다. 책의 공동저자인 조엘 모리스는 인디펜던트와의 인터뷰에서 “‘중년위기’의 서문에는 ‘우리가 어렸을 때는 외과의사나 우주인 등 원하는 사람은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더 이상 그럴 수 없게 됐다’라는 문장이 있다”면서 “너무도 노골적인 이 말이 나를 울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저자 제이슨 헤이즐리는 “레이디버드 시리즈를 통해 아이들이 세상을 배웠듯이 어른들이 세상을 이해하도록 돕는 책”이라고 설명했다.

풋풋했던 우리의 철수와 영희도 중년이 된 피터와 제인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괴로우면 술로 달랠 것이고, 또는 갱년기 우울증으로 중년의 일탈을 꿈꿀지도 모를 일이다. 외로운 중년이다. 외로움을 치유하는 데는 시 만 한 것도 없다. 당신의 가을을 위해 여기에 한 편의 시를 적는다.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나태주, ‘멀리서 빈다’-

저작권자 © 해남군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