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한께 내놓제, 안 그러면 이장시키것소” 라는 말하는 문내 서하리 주민들. 마을이장 최봉배(45) 이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젊은 사람이다보니 동에번쩍서에 번쩍, 얼마나 바쁘게 돌아다니는지 모르요, 그만큼 주민들에게 잘한단 말이요”.

서하리 젊은 이장 최이장, 마을에서 가장 막내이면서 문내면 이장들중에서도 막내이장이다. 그의 이장직은 지난 2003년부터 3년간에 이어 올해로 두 번째다. 10년전, 그때 당시만 해도 35살이 이장을 한다는 것은 쉽지않는 일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시골에서 농사짓고 살려면 마을 일도, 사람들도 많이 알아야 한다는 동네 형님의 권유로 이장을 맡았다.

주민들로부터 잘했단 소리 들으며 첫 번째 이장직을 마쳤다. 올해 다시 주민들의 적극적인 권유로 이장을 맡았다. 42세대 80명의 주민들이 다시 중책을 맡긴 것이다. 10년전이나 지금이나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적은 것은 마찬가지인 상황, 마을로 들어오는 사람은 없고 마을주민들만 고령화되고 있다.

이장을 하면서 가장 신경을 쓰는 것도, 홀로사는 어르신들이다. 서하리는 80%이상이 65세이다 보니 언제 무슨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마을회관에 들려 마을주민들의 안부를 살펴야 안심이 된다.
최이장은 서하리는 문내면 다른 마을에 주민들의 농사규모가 적어 더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 실정이다 며 어떻게 하면 주민들에게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될 수 있을까라는 방법을 찾기위해 매일같이 고민중이다고 말했다.

최이장의 이런 고민은 자신이 마을로 귀향하게 된 배경과도 무관하지 않다. 중학교까지 마을에서 다니다 외지 고등학교 진학과 졸업 후 외항선 뱃사람이 됐다. 모은 돈으로 중국에 들어가 사업을 하다 망해 말 그대로 몸 하나만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부모님과 함께 3600여평의 농사를 지으며 눈치보며(?) 어렵게 생활했다. 정말로 어려운 시절이었다고 말했다. 3600평의 논밭 농사를 5만여평의 농사로 키웠고 30여마리의 소를 사육하는 규모가 됐다. 최이장은 마을 주민들이 도와주고 아껴준 덕분이다며 마을 주민들이 조금이라도 더 편안하게 생활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다고 말했다.

올해 이장을 맡은 후 마을의 변화를 꾀했다. 마을 앞 바닷가 쓰레기장을 치우고 주민들이 휴식공간인 정자를 세웠다.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마을발전 계획도 세워나가고 있다. 우수영항 확장 계획에 어떻게 하면 주민들에게 소득이 될수 있을것인가를 두고 주민들의 이야기를 모아가고 있다. 서하리는 우수영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마을이다. 그 중 방죽샘이 하나다.

최이장은 방죽샘 복원을 이야기 했다. 전라우수영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유일한 샘이다. 지금도 관광객들이 찾고 있어 복원을 통한 관광자원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최이장은 방죽샘 복원을 이야기 했다. 전라우수영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유일한 샘이다.

지금도 관광객들이 찾고 있어 복원을 통한 관광자원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관광객들이 찾게되면 주민들도 관광객을 상대로 한 새로운 일도 만들 수 있어 주민들의 소득도 올릴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또 방죽샘은 불과 20~30년전만 해도 마을뿐만 아니라 주의 마을의 유일한 샘으로 주민들의 애착이 남다른 곳이다.

예전 마을공동체를 회복하자는 것도 방죽샘을 복원해야 한다는 이유다. 서하리의 자랑은 또하나 있다. 문내면에서 가장 공무원을 배출한 마을이다는 것이다. 면장을 비롯한 공무원들이 그 어느 마을보다 많다는 것이다. 최이장은 어렵게 살다보니 자식들만큼은 더 잘되기를 바란 부모들의 뒷바라지 때문이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최이장은 마을의 역사를 기록해 화합을 다지고 주민들의 자부심도 높일수 있는 방법도 고민중이단다. 서하마을의 지명유래는 우수영성 서문 아래 마을이 있어 서하리라 칭했으며 서편으로 불리기도 한다. 마을은 개발이 되지 않아 대형차량이 통행하지 못할 정도로 골목형태로 유지되고 있다.  서하리 막내, 최이장은 주민들이 젊은 이장을 선택한 이유를 잘 알고 있다며 주민들을 위한 일이라며 뭐든지 최선을 다할 것이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해남군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