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들판 옆으로 조그맣게 나있는 길을 따라 가자 한 건물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린다. 신평리 마을 회관에 들어서자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화투를 치거나 담소를 나누고 있다.

“동네 분들이 항상 이렇게 모여서 놀고 있제. 겨울이라 일이 없응께 날마다 이라고들 있어. 난 여기서 애기라서 심부름이나 하제”

김철규 이장은 올해 68세지만 마을 회관에서는 젊은이 축에 속한다. 올해로 18년째 쭉 이장을 맡아오고 있다는 김 이장. 비결을 묻는 질문에 “별다른 건 없고 항상 마을 주민들이 좀 더 편히 살 수 있는 방향을 생각했다”며 “마을일을 최우선적으로 두고 하다 보니 자연스레 이장을 계속하게 됐다”고 한다. 마을 회관을 짓고 회관 앞 복개 공사를 통해 공터를 만들고 농로를 넓히고 도로를 정비하는 등의 일은 전부 마을을 생각하며 한 일들이었다.

김 이장은 고향은 면 소재지인 청용리지만 25년 전 귀향을 한 후론 줄곧 신평리에서 살고 있다. 한때는 농기계 수리 센터를 운영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농사에 매진하고 있다. 신평리는 50가구 80여명 정도가 사는데 대부분이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이다. 김 이장은 마을의 특성상 노인을 공경하고 잘 모시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는다. “어른들을 공경하고 바르게 모시다 보면 마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서로 친해지고 화목하게 된다”고 했다.

마을 주민들은 유일하게 만나서 놀 수 있는 공간인 마을회관에 출근도장을 찍다시피 한다. 행여 누군가 며칠씩 안보이기라도 하면 김 이장은 집으로 찾아가 무슨 일이 없는지 살핀다. “마을에 혼자 사는 어른들이 많다보니 며칠 씩 안보이면 걱정이 된다”며 “항상 건강 문제를 신경 쓰고 있지만 혹여 어디가 아파도 이야기 할 곳이 없어 자주 찾아뵙고 건강 상태를 확인 한다”고 한다.

신평리는 대부분이 고령이라 크게 농사를 짓기도 어려워 몇 가구를 제외하면 조그만 전답을 가지고 농사를 짓고 주로 배추를 심는다. 예전 영산강 간척지 사업 전에는 마을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김 양식을 하기도 했다. 김 이장은 주민들이 일할거리가 없어 걱정이 크다. 주민들은 배추를 심고 12월부터 3월까지 농한기가 찾아오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예전에는 배추밭에서 작업을 하는 일을 도맡아 했지만 나이가 들어 이제는 배추를 심으면 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다른 마을에서도 노인들이 할 수 있는 일거리 찾기가 더욱 힘들다. 김 이장은“예전엔 다른 마을로 작업을 나가 일당을 벌기도 했지만 요즘은 대부분이 외국인이나 젊은 사람을 쓴다”며 “큰돈을 벌기 보다는 몸을 움직이고 시간을 보낼 수 있을만한 일거리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없다”고 아쉬워했다.

할 일이 없어 마을회관에 나와 화투를 치거나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 김 이장은 마음이 아프다. 일을 한다는 기쁨을 점점 잃어가고 하루하루 무료하게 보내는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없기 때문이다. 김 이장은 “마을에 소일거리로 할 만한 일들을 찾아보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며 “정책적으로 노인들이 소일거리라도 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했으면 좋겠다”고 털어놓는다.

노인들 소일거리 찾아주고파
“단합은 우리 신평리가 최고”

김 이장은 예부터 신평리는 단합하나는 면내 최고라고 자부한다. 부녀회는 모든 행사의 음식을 도맡아 해왔고 청년회는 항상 제일 앞장서서 일을 했다. 회관에 있던 한 주민은 “지금은 다들 나이가 들었지만 한 때는 모든 행사는 신평리가 없으면 안돼 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모든 일을 주도적으로 했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주민 화합은 어느 부락 부럽지 않다. 이장이 있지만 주민 모두가 이장처럼 마을 일에 발 벗고 나서고 회의를 할 때면 소외되는 사람 없이 모두의 의견을 들으려 노력한다. 김 이장은 “신평리는 이장이 알아서 하라고 나 몰라라 하는 주민이 한 명도 없다”며 “전부 자기 일처럼 마을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주고 서로 챙기려 한다”고 자랑했다.

예부터 신평리는 여러 어려움을 무사히 넘겨와 평탄한 마을이라 하여 신평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고 김이장은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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