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촌마을에는 경로잔치가 따로 없다. 차은숙 이장(왼쪽 두 번째)과 마을 주민들이 올해 백세인 김복동 할머니(앞줄 가운데)와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다.

문을 들어서기 전부터 마을회관 안이 시끌하다. 보통은 이장과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던 일이 마을 주민 여럿과 함께 하는 시간이 됐다.

“아주 일을 잘하고 부지런해브러. 웬만한 남정네 몇이 와도 못 해 본당께” 묻지도 않았건만 대뜸 이장에 대한 자랑부터 늘어놓는 마을 주민들이다. 마을 아낙들도 정겨운 수다와 함께 옥천면 화촌마을 차은숙(여 61) 이장을 만났다.

차 이장은 장성에서 태어나 결혼 후 도시생활을 하다 남편을 따라 해남으로 귀향한지도 어느덧 20년을 훌쩍 넘었다. 12년 전 남편과 사별 후 홀로 농사를 지어오고 있다. 1만6000평이나 되는 넓은 농지를 홀로 경작하기가 힘들 법 하건만 돌아오는 대답은 씩씩하다. “요즘은 다 기계화 돼서 힘들 일도 별로 없고 서로서로 도와가며 하기 때문에 충분히 할 만하다”고 말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한 마을 주민은 “차 이장이 부지런하니까 그렇지. 얼마나 부지런 한지 몰라. 자는 시간 빼고는 항상 일하는 모습 뿐 이라니까” 라며 차 이장을 칭찬했다.

마을 일도 열심히 하고 항상 주위를 보살피는 모습에 마을 어른들이 이장을 권유했다. 잘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도 있었지만 하던 대로만 하라는 주위의 당부에 수락을 했다. 차 이장은 “처음에는 걱정도 많았지만 하다 보니 지금 까지 보고 있다.”며 “전보다 신경 써야 할 일은 조금 많아졌지만 마을을 위해 해야 하는 일이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을 이장으로 일해 왔다.

화촌 마을은 34가구 50여명의 주민들로 이루어져 있다. 대부분이 65세 이상의 노인이고 나머지 주민들도 60세를 바라보고 있다. 경로효친마을로 뽑힐 만큼 주민들은 웃어른을 공경했고 그 중심엔 올 해 노인복지 기여자 상을 받은 차 이장이 있었다. 어른들을 위한 잔치를 하느냐는 질문엔 그렇지 않다고 했다. “우리 마을은 따로 경로잔치를 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자주 모여서 음식을 해 먹는데, 이런 날이 매우 자주 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주민이 적다보니 모이는 게 수월 해 그러는지 몰라도 핑계거리만 있으면 회관에서 음식을 장만해서 주민들이 다 함께 한다.”며 옆에서 한 마디 거든다. 농한기 뿐 만 아니라 일이 바쁠 때도 자주 모이다 보니 따로 잔치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주민들이 회관에 자주 모일 수 있는 이유도 노인을 공경하는 마음에서 시작했다. 바로 올 해 100세가 되는 마을의 최고령자인 김복동 할머니가 항상 마을 회관에 계시기 때문이다. 할머니를 보살피러 한명 두 명 오다보면 금세 사람이 대여섯으로 늘어나 있다. 주민들은 할머니 말벗도 되어드리고 이웃들 간에 서로 안부를 묻기도 하고 화투를 치며 친목의 시간을 보낸다.

“가족과 같은 마을
욕심 없이 도와가며 살고파“

차 이장은 이런 마을의 단합을 큰 자랑으로 여겼다. “우리 마을은 자원이 특출 난 것도 아니고 사업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어른을 공경하고 마을 사람들끼리 단합하는 것은 해남 일등”이라며 “봄에 못자리를 내거나 고추를 심을 때도 따로 사람을 사지 않고 마을 사람들 모두가 품앗이를 해 서로 도와준다”고 했다. 이를 이웃 마을에서도 많이 부러워한다.

겨울에 배추 농사를 짓지 않는 마을에서는 다른 일로 떠들썩하다. 바로 김장을 하는 일이다. 우리 마을은 김장을 하는 게 하나의 축제라며 “15농가 정도가 돌아가며 날마다 김장을 하는데, 김장을 마치고 주민들이 다 같이 모여 저녁을 먹는다. 이렇게 10여 일 간 마을이 항상 잔치를 하는 듯하다”는 것. 차 이장에 따르면 김장을 하는 양에 상관없이 주민들이 서로 도와준다고 한다. 10포기를 하던 1000포기를 하던 상관없이 다 함께 김장을 한다. 양을 많이 하는 집에서 수고비를 내놓으면 그 돈으로 다시 함께 모여 식사를 하고 없으면 없는 대로 또 식사를 한다.

차 이장과 마을 주민들은 당장의 농촌 현실도 농산물의 가격도 아닌 주민 한사람의 안위를 걱정했다. 지난 달 주민 한 명이 벼를 수확하다 큰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했기 때문이다. 콤바인에 두 손이 모두 끼어 한 손은 잘라내고 한손은 손가락 몇 개를 잘라내는 큰 사고를 당했다. 제일 잘 웃고 활기차던 동생이 사고를 당해 마음 한 귀퉁이가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라며 “우리보다 더 씩씩한 모습을 보고 있으니 짠하고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말했다. 화촌 주민들에게서 ‘정’이라는 따뜻한 꽃내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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