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원성 조류독감(AI)

이지엽

인류의 대재앙이다
가창오리 흰뺨검둥오리 청둥오리 이동경로를 따라
금강호에서 동림저수지에서 삽교에서 영암에서
나라 전역이 지금 고병원성 조류독감(AI)으로 시름에 잠겨 있다.
애써 키운 닭과 오리가 살처분 되고 있다
걸리지도 않는 병으로
벌써 380만 마리가 예방적 살처분을 당했다
최근 10년 동안 2500만 마리가 사라졌다
예방이라는 허울 좋은 미명하에
이 중 실제 감염된 수는 고작 121마리
0.0004% 불과한데
이 얼마나 끔찍한 살육인가
알을 낳자마자 수거돼 인공부화기에서 부화된 뒤,
소독약이 뿌려진 양계장에서 배합 사료를 먹고 자라나는
한번 유행할 때마다 수십만 마리씩 떼죽음 당하는
위대한 공장식 축산 시스템
평생 좁디좁은 닭장 속에서나 살다가
뭐라 뭐라 구구 하소연할 틈도 없이 생매장되는
오 저 불쌍한…이름들
찜으로, 탕으로, 구워지거나 튀긴 채 몽땅 몸을 바치는
저 뜨거운 헌신!
오늘은 사람이란 게 몹시 부끄럽다

 


<시작메모>
고병원성 조류독감(AI)이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어느 종교 단체에서는 ‘조류독감, 살처분 대응과 생명평화’라는 주제로 생명평화토론회를 개최하고 무분별하게 진행 중인 살처분에 대한 대안을 모색했다한다. 인류는 1918년 5000만 명이 죽었던 스페인 조류인플루엔자를 다 잊은 것일까. 생명은 다 귀중하다. ‘공장식 밀집 축산방식’만을 생각한다면 동물의 대참사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인류의 재앙으로 연결될 것이다.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바로 우리 인간이지 않은가.


 
 
<이지엽시인 약력>
-해남군 마산면 출신
-1982년 한국문학 백만원고료 신인상과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어느 종착역에 대한 생각>과 시조집<사각형에 대하여>외 다수.
-중앙시조 대상, 유심 작품상 등 수상, <현대시 창작강의>외 저서 다수.
-계간 <열린시학>과 <시조시학>주간. 현재 경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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