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내면 예락리 배동열(45)이장은 마을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하다.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탄 세발나물, 110년 역사의 예락공소 등 자랑거리가 넘쳐나기 때문이란다. 해남군에서 잘 사는 마을을 고르라면 예락리도 빠지지 않을 거라고 호언장담한다.

“우리 마을은 세발나물로 떴어. 대한민국에 예락리를 톡톡히 알렸지. 세발나물을 통해서 우리 예락리는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고 생각해요”

마을 주민 김경식씨로부터 시작된 세발나물 재배는 참여 농가가 조금씩 늘어나다가 지난해 농림수산식품부가 지원하는 마을공동소득창출사업에 선정되면서 본격적인 활기를 띄었다.

현재 16농가가 세발나물을 재배하고 있고 연간 10억 정도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어지간한 도시사람들보다 벌이가 좋단다. “저온저장고와 작업장도 짓고 있는 중이에요. 앞으로는 소포장도 하고 세발나물 가공도 해보려고요”

소득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풍요롭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농촌건강장수마을 덕분이다. 매주 목요일 2시면 어르신들이 하나 둘 마을 회관으로 모인다. 행복치료, 웃음치료, 전래동요, 건강체조 등 농촌건강장수마을 사업을 통해 다양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접하기 힘든 문화를 누릴 수 있어 농번기때도 20명 이상 모일 정도로 인기가 높다. “동네 사람들끼리만 놀면 변화가 없어요. 어르신들은 멀리 나가기가 쉽지 않은데 재밌는 교육을 마을 회관에서 받을 수 있으니 아주 좋죠. 교육시간을 기다리실 정도에요”

예락리는 84세대, 120여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독특한 점은 마을 주민의 80%가 천주교 신자인 교우촌이라는 것이다.

교우촌이 되기까지는 110년의 역사를 지닌 예락공소가 영향을 미쳤다. 지난 1904년 척박하던 예락리에 뿌리를 내린 예락공소는 일제강점기며 한국전쟁까지 함께 겪으며 주민들의 든든한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었다.

그러다보니 예락공소는 마을의 버팀목이자 자랑거리란다. 태풍 볼라벤에 공소 지붕이 날아가버리자 타지로 떠난 주민들까지 성금을 보탰을 정도다.

“주민들 간에 우애가 깊어요. 간혹 마을 사업을 하다보면 갈등이 생기기도 하지만 원만하게 해결되는 편이죠. 다들 마을이 잘 되길 바라다보니 생기는 일이니까요”

세발나물, 염전 활용 체험관광마을로 변신중

배이장은 예락리를 해남군 1등을 넘어서 전국 1등으로 만들고 싶단다. 세발나물로 농가소득을 창출하고 있지만 관광객이 일부러 찾아오는 마을로 가꿔 관광소득도 올리겠다는 생각이다.

이장을 맡은 지 4년차, 배이장은 4년 동안 예락리를 관광마을로 만들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해왔다. 10만평에 달하는 염전과 바닷가의 황홀한 낙조 등의 자원이 있어 충분한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마을 스토리텔링을 위해 컨설팅도 받았어요. 예락공소, 세발나물, 염전, 바닷가 네 개의 키워드로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게 좋을 것 같다더라고요”

스토리텔링을 통해 만들어낼 예락리의 또 다른 이름은 ‘끈끈한 정으로 하나되는 해남 복터진 마을‘이란다. 해남을 대표하는 마을로 가꾸기 위해 상표 등록도 할 생각이라고.

배이장의 최종 목표는 염전, 바다, 세발나물 등의 자원을 활용해 관광객이 줄을 잇는 체험관광마을을 만드는 것이다. 화원 골프장에 오고가는 사람이 많은 해안도로에 정자도 세 채나 지었고, 근방에 작은 해수욕장도 만들고 싶단다.

“이장은 야물고 똑똑해야 돼요. 그래야 마을을 살릴 수 있죠”라는 배이장. 처음 이장을 맡을때만 해도 2년만 하려고 했었다고 털어놓는다. 세발나물 농사 등 개인적인 일로도 바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을 일을 해보고 나니 책임감도 커지고, 발전할 가능성이 큰 예락리를 그대로 두기 아까웠단다.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따라줘 할 맛 난다고. 군대생활을 제외하고 쭉 예락리에서 살아온 터라 애정도 남다르다.

“우리 예락리를 정말 좋아해요. 좋아하니까 이장도 즐겁게 할 수 있더라고요. 내 시간을 뺏기는 게 적응이 됐어요. 내 농사에 신경을 못 쓰더라도 움직이면 마을이 바뀌니까요”

올해 예락리는 주민들이 편하게 마을을 오고갈 수 있도록 14구간 5km정도의 도로를 정비할 계획이다. 주민들이 혜택을 누릴 때가 가장 뿌듯하다는 배이장의 노력 덕분이다.

“앞으로도 예락리에 뼈를 파묻고 살 거예요. 주민화합도 마을소득도 전국 1등 마을이 될 때까지 열심히 해야죠. 이 정도면 괜찮은 인생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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