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인 최병남’의 농업은 ‘농업의 농업’이다. 농업인을 위한 농업, 농업 중의 농업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말이야 어떻든 그가 짓는 농사는 매우 특별하고, 그만큼 중요하다.

그는 벼 보리 밀의 종자를 증식(增殖)하는 농사를 한다. 그가 심은 수십 kg의 (원)종자가 수십 톤의 (보급)종자가 되어 농민들에게 보급되는 것이다. ‘종자증식농사’라고 할 수 있다. 씨 곧 종자는 농사의 바탕이다. 최병남 씨 (해남군 해남읍)는 ‘바탕 농사’를 짓는 농업인인 것이다.
그의 이력은 참 단순하다. 새마을지도자 3년 역임, 마을 이장 18년 역임, 해남미맥연구회장 7년 역임, 조선대 정 책대학원 수료, 농진청 식량과학원 현장명예연구관(현 재) 등 5개 항목이 전부다.
‘농사만 지어온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맞다, 그 런데 농진청 식량과학원 현장명예연구관, 이 항목이 특별하다.
‘명예’란 말이 붙긴 했지만 현장연구관이라는 직 명(職名)이 심상치 않다. 곁에서 어떤 지인은 “농진청과 동급이여!”하며 말 거드는데, 최 씨 “에이, 그런 말이 어 디있어!”하며 입막음을 한다. 말하자면 어께를 나란히 하 고 연구와 증식사업을 벌인다는 것이겠다.
/ 화려하진 않지만 중요한 ‘농사의 뒷손’ 종자증식 /
그는 농촌진흥청과 함께 식량 종자의 증식이나 개량을 위한 과학적 작업을 현장, 즉 자기 논밭에 서 벌이는 일을 한다. 그 일은 ‘연구’에 해당하는 중요성을 가진다.
대략 이름을 풀어보면 그가 하는 역할이 짐작된다. 그가 짓는 농사가 농도(農道) 전남에서도 농업의 중심인 해남의 정교하고 격 식 높은 농사 중에서도 으뜸이라는 무언(無言)의 인증인 셈이다.
농학박사도 아닌 그가 어떻게 이 런 역할을 맡게 됐을까? 자기 말마따나 ‘농사만 지어온 사람’이어서 가능했던 것이다.
그의 전답은 우리 농촌의 주요한 채종포(採種圃) 중 하나다. 종자은행인 셈이다. 파종부터 생육관 리, 수확과 선별 등에 보통농사와는 비길 수 없는 수고가 필요하다. 그가 제대로 씨앗을 만들어야
여러 농가의 수확이 보장되고 살림이 낙낙하다. 저 들판에서 재배되는 벼 보리 밀의 수많 은 종자 상당부분이 그의 채종포에서 (지역)적응시험을 거치고 숫자를 불려 보급된 것이다. 드러나게 깃발 휘두르는 폼 나는 일은 아니되 얼마나 고맙고 든든한가.
여러 번 묻자 그는 한참 미소 짓다 이윽고 ‘사명감’이라는 말 단 한마디를 내놓았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게으름을 부리거나, 판단을 그르 쳤을 때 생길 동료 농업인들의 낭패를 너무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대화 때의 표정은 단호(斷乎)했다. ‘자신감’으로 읽혔다. 즉, 사명감과 자신감이 이 ‘종자은행장’ 최병남씨의 재산이구나. 해남과 남도 농업의 자긍심 을 비로소 알겠다.
이런 그의 역할은 ‘기능성이 있다’는 흑수정 검정보리 를 재배하기 시작한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재배농가가 별로 없는 이 품종을 다 루는 최 씨에게 농진청이 관심을 가졌다. 식량 과학원으로부터 재배기술을 본격적으로 배우 고 서로의 경험 등을 나누다보니 어느덧 고수 (高手)가 됐다.
새로 개발된 품종의 시험과 증식에 적극적으 로 나서면서 이 분야 전문가가 된 것이다. 그 의 증식포에 늘 식량과학원 박사급 연구원들 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농업 전반에 기여하는 그의 경험도 중요하지만, 해남의 기능성보리(유색보리) 농사가 그와 동료들 (해남미맥연구회)의 노력으로 전국적인 명품으로 결실을 맺고 있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식량이 부족했던 시절, 쌀 대신 우리 배를 채워줬던 보리의 ‘가난한 이미지’를 씻고 건강한 밥상을 위한 중 요한 자원으로 탈바꿈하도록 한 공로에도 엄지를 척 세워 칭찬해야 할 터다. 같은 뜻에서 해남미 맥연구회는 밀과 귀리 등 9개 품목에 대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의 큰 역할에 해남군수 재정경제부장관 농림부장관 전라남도도지사가 상을 주었다. 농협중앙회 도 선도농가상을 수여했다.
농업의 뒷손, 화려하지도 않은 업무에 진력해 온 그에게 이런 상이 주 어진 것은 그의 농사가, 그 사명감과 자신감이, 특별하고 중요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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