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이
담뱃갑 은박지에 긁어 그린
은지화銀紙畵 ‘부부’
얼굴이 서로 거꾸로 마주보고
팔은 서로의 목을 껴안고 있다
눈을 지그시 감은 남자의 얼굴에는
가느다란 미소가 어리었다
여자는 지금 어느 강을 건너고 있을까
엉클어진 선들이 밤의 굴곡을 만들고 있다

또 다른 ‘부부’ 그림엔
암탉과 수탉이 입을 맞추고 있다.
부부 재회를 꿈꾸며 이중섭이
남쪽에서 온 덕스런 여인에게 보낸 편지 속에 동봉한 그림
부리가 뾰족한데 어찌 입맞춤을…
보들레르와 릴케를 좋아하던 시적 상상력의 폭발이다

원산에서 부산으로, 다시 서귀포로
먹을 게 없어 게를 참 많이 잡아먹었던 신혼시절
부추로 허기 채우고 캔버스도 없이
게의 넋을 달래려고 그리던 게 그림

사랑이 있다면 부부에게 넘지 못할 강은 없다
혼자 넘으면 천길 같은 두려움도, 어려움도
가볍게 건너 뛸 수 있다
부부의 힘이 가족을 만들고 이웃을 만들고
나라를 만들고 세상을 만든다


<시작메모>이중섭 탄생 100주년 기념전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중섭과 7년간 살 맞대고 살며 가장 가까이 지켜온 일본인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95 한국명 이남덕)여사가 두 아들을 키우며 60년을 버틴 사랑이 소개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 두 마리 닭 그림을 펼쳐 보이며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천국에서 다시 이렇게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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