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이란 말 참 편하다

화상을 당한 사람으로부터 눈꺼풀이 감겨지지 않아

빗방울이 무섭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를테면 눈꺼풀은 그늘 같은 것

빛만 쬐며 살아간다면 인생은 얼마나

숨 막히는 것이랴

잠시 그늘에 앉아 쉬면서

도란도란 나누는 얘기가

삶의 고비를 어렵지 않게 넘게 한다

혼자서 밉살스러운 사람에 대해 흉을 보기도 하고

가끔 훼방꾼에 대해 푸념도하지만

뱉어내면 그것은 신기하게도

허공에 흩어져 날아가버린다

그늘은 그런 허물을 담아두지 말라한다

기운을 내어 일어서게 하고

걸어가게 한다

유금호 소설가는 그늘이 처마나

내면의 뿌리 같은 느낌이 있어

이 단어를 좋아한다고 했다

나도 그늘이 참 좋다

짧고 납작한 머리와 큰 눈, 짧은 주둥이와 긴 다리

나무늘보가 생각나기도 하지만

좀 게을러 숙제를 못한들 어떠랴

복도에 나가 손들고 벌을 서면서도

창밖 남천나무 붉은 열매들 반짝임과 지지분거리다가

뭘 하고 있을까 초등학교 때

학교 앞에서 교통사고 당해

목발을 짚었던 마순복이는

그때는 그게 슬퍼 그늘에서 울기도 했지

그늘은 훑다가 파낸 눈곱 같은 것

그래 슬로우 시티 오솔길 같은 것

올해는 완도의 청산도나 신안의 증도,

담양 창평의 메타스퀘아 길이나 장흥의 유치 고개를

넘어보고 싶은 것이다.

<시작 메모>그늘에는 느림의 미학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슬로우시티(Slow City)운동 같은 기운이죠. 슬로우시티는 전 세계 10개국 93개 도시가 가입되어 있는데, 아시아 지역은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전남 4곳이 선정되기도 했지요. 그늘을 모르는 삶은 건조하겠지요. 아픈 만큼 더 아름다운 게 인생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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