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에 관심을 갖다 우연한 기회에 영남대 양도영교수와 조우하게 되었다. 양교수는 경남 청송에서 대규모 토종 매화숲을 조성 중이며 토종매화에 대해 연구 등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다.

SNS를 통해 정보를 주고 받으면서 매화 이야기로 인연은 더욱 깊어졌다.

양교수는 전국의 고매(古梅)를 찾아 찾아다니며 매화와 관련된 인물을 연구 중이다.

중국과도 오랫동안 교류하면서 매화를 좋아하는 지인들과 매우(梅友)라 부르며 인연을 키워 나가고 있다고 했다.

해남지역의 고매(古梅)에 대해서 물었더니 몇군데 지목해 주었으나 아쉽게도 고명한 선비가 많았던 해남에서 이름난 매화나무가 보존되지 못한 것이 못내 안타깝다고 말했다.

 

▲ 대흥사 적묵당 앞마당에 오래된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렸다. 초의매 또는 적묵당매로 부르며 탐매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탐매객을 유혹하는 봄의 전령, 호남오매(五梅)

매화를 필두로 일제히 봄꽃들이 기지개를 펴고 있다. 꽃망울을 시샘하는 찬바람에도 아랑곳 않고 역시 봄을 알리는 첫 신호탄은 매화 소식이었다.

매화 하면 강변을 따라 펼쳐진 섬진강 매화나 전국에서 가장 넓은 면적의 산이면 보해매실농원을 떠올린다.

옛 선비들은 탐매(探梅)라는 풍류를 즐겼다. 춘설(春雪)에 피어 바람결에 실려 오는 매향을 쫓아 떠나는 여행, 오늘에도 유서 깊은 고택의 담장이나 고찰의 뜨락을 몇 백년 동안 지켜온 격조 있는 매화를 찾는 탐매객들이 풍류를 이어가고 있는 듯 하다.

매화는 호남지역에 많이 분포돼 있다. 그 중 호남을 대표하는 매화가 있다.

백양사의 고불매, 전남대 교정의 대명매, 담양 지실의 계당매, 선암사 선암매, 지금은 고사된 소록도의 수양매를 호남오매(湖南五梅)라 부른다.

그중 으뜸은 600년 수령의 천연기념물 제488호 선암매이다.

호남오매 외에 유명한 매화로는 산청 3매, 경북 2매, 오죽헌 율곡 매, 화엄사 흑매 등이 꼽히고 있다.

특히 담양은 정자문화가 발달되어 고매(古梅)가 많다. 또 담양의 매화는 해남과도 연관이 깊다. 미암일기로 잘 알려진 유희춘은 조선사회에 처음으로 시집을 낸 여류시인 송덕봉과 인연이 되어 해남에서 담양으로 장가들었다. 그래서인지 미암과 관련된 매화는 모두 담양에 있다. 400년 된 하심매와 350년 된 와송당매, 300년 된 미암매 등이다.

석천 임억령이 살았던 마산면에도 임억령과 관련된 매화나무가 당연히 있을 법 하지만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다만 석천의 사위 서하 김성원이 지어준 담양의 식영정에 오래된 매화나무가 두 그루가 있다.

고명한 선비들의 흔적이 깃든 곳에 매화가 오랜 세월을 견디며 서 있을 것 같은데, 해남에는 이름난 고매(古梅)가 보이지 않는 것이 아쉽다.

 

▲ 우리 토종매화는 꽃이 작고 개화 시기가 늦으며 암향이 진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해남 토종 매화나무는 어디에 있을까

옛날 선비들이 매화를 심는 이유는 꽃을 보기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현대 사람들이 과실이 빈약한 토종매화 관리를 제대로 하기는 만무했을 것이다.

해남에도 어느 곳 못지않게 매화를 사랑했던 선비들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남아있는 고매는 고산유적지에 세 그루, 대흥사 경내에 두 그루만이 알려지고 있다.

해남윤씨 종가 뒤편 추원당의 백매, 고산유적지 입구 가게집에 백년이 훨씬 넘은 야생의 매화나무다. 고산유적매라 불린다.

초의선사가 축조했다는 대흥사 무염지에서 고개를 돌려 담장너머를 바라보면 은은하게 피어나는 봄빛 미소를 만날 수 있다. 일반인의 출입통제로 가까이 다가서지 않더라도 화사한 꽃잎 날리며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바로 적묵당 매화다. 어떤 이들은 초의선사가 심어놓은 200년 된 초의매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100여년 수령의 적묵당매로 부른다.

적묵당 고매(古梅)는 누가 심었는지 정확히 밝혀진바 없으나 초의가 입적 한 후 제자들이 초의를 기념해 심었으리라 짐작될 뿐이다.

적묵당 매화는 3월 중순쯤 볼그레한 새색시 볼 같은 꽃망울을 터뜨리며 봄소식을 알린다.

초의선사를 상징하는 매화는 응당 일지매라고 부른다. 진도 운림산방에 일지매라 불리는 고매(古梅)가 있다.

소치가 스승이었던 초의선사에게 얻어다 심었던 매화였다.

일본 강점기 때 목포에 사는 일본인 엔토가 5원에 산 것을 임순재가 2배 가격을 주고 다시 가져와 가꾸던 중 지난 1995년에 고사했고, 지금 운림산방에서 꽃피고 있는 일지매는 50년 정도 된 그 후계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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