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요 여기” 논 한가운데서 반갑게 뛰어오는 나도용(69)이장. 나이장을 만나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오른손 손등의 하얀 반창고였다. 반창고가 붙은 손은 퉁퉁 부은 채였다. 마을에 혼자 사는 할머니를 돕다가 양철에 조금 긁힌 것이 이렇게 부어올랐다고 한다. 괜찮으시냐고 묻자 나이장의 대답이 초연하다. “내 할 일 하다가 다친 건데 뭐…”

나이장은 신안마을에서 태어난 후 직업군인 생활과 월남전 참전기간을 포함해 45년간 타지생활을 하다 다시 돌아와 올해 귀향 10년차다. 마을에 돌아왔을 당시에 노인 수가 굉장히 많아 놀랐다고 한다. 현재 가구 120여 호 중에서 60․70대 이상 주민이 대부분이라 나이장의 할 일이 많다.

나이장은 2011년 이장 대타를 시작으로 이장직을 맡았다. 마을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생각만 갖고 시작해 야생화 300평을 키우다 남는 시간은 마을 주민들을 챙기는 일에 쓴다.

마을을 도울 수 있는 일을 스스로 찾던 나이장은 특색 있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태극기 마을을 생각해냈다. 읍과 가까운데도 마을버스조차 지나지 않는 외진 마을을 어떻게든 살리고 싶었던 것.

이후 나이장은 사비를 털어 태극기와 깃봉을 150여개 구입해 마을주민들에게 나누어줬다. 아까워서 달지 못하겠다는 주민들에게는 “내가 이장을 하지 않아도 태극기만은 계속 사서 나눠줄테니 제발 달아 달라”며 이야기하고 다닌다.

또 말리려고 널어놓은 농작물이 도난당하는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 CCTV 2대를 설치했다. CCTV와 설치비에 120만원. 이 금액도 나이장이 전부 사비로 지불했다. 아무리 이장을 맡고 있다지만 120만원이라는 거금을 마을 CCTV 구입하는 데에 선뜻 내놓을 수 있을까.

나이장은 “난 특별한 게 없고 모든 마을돈은 주민에게 쓴다는 마음으로 관리하고 있는데 마을엔 쓸 돈이 별로 없어요. 우리 신안마을은 정말 멋지고 아름다운 풍경을 가진 마을이라 쓸 돈이 없다는 게 안타까워. 그래서 내 돈으로 사는 거지. 이장을 하며 받는 돈도 내 돈이 아니라고 생각해요.”라며 스스로를 낮췄다.

주민들의 화합을 위해서도 나이장은 지갑을 열었다. 2011년과 2012년 주민들 70여 명을 모아 사비로 식사를 대접해 주민들 간에 정을 돈독히 쌓았다. 나이장이 ‘회식’이라고 불리는 식사 대접은 올해도 계획 중이라고.

이뿐만 아니라 겨울철 마을 주민들의 추위를 조금이나마 덜어드리고자 털신을 한 켤레씩 선물한지도 올해로 3년째다.

이런 나이장에게 마을 어르신들은 별명 아닌 별명 하나를 붙여주었다. “마을어르신들은 나보고 미친놈이라고 해요 미친놈. 돈 모아서 사비로 식사 대접해 털신도 사줘. CCTV나 태극기같은 마을 물품도 내 돈으로 사고. 이제 그만하라고 매번 그래. 너무 미안하시니까 그렇게 말하시지. 자꾸 개인 돈으로 사지 말라고. 근데 이 마을에 살려면 미쳐야 살겠더라고. 하하”

자비들여 마을 CCTV 설치
마을에 봉사하는 것이 이장의 역할

마을 봉사정신이 투철한 나이장에게는 남에게 선뜻 말 못할 남다른 사연이 있다. 4년 전 사고로 소중한 자녀 한 명을 잃게 된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던 것. “그 일의 충격이 커서 ‘살면 얼마나 살겠나‘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남은 시간을 마을에 봉사하겠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지요.”라고 말하는 나이장의 얼굴에서 아버지로서의 모습이 보인다.

나이장은 마을에 헌신하는 시간 동안 신안마을을 더 살기 좋은 마을로 바꿔나가기 위해 필요한 사업을 하나씩 정비하고 있다.

먼저 열 명 남짓한 초등학생들 통원차량도 없던 것이 마음에 걸려 ‘학생 수가 너무 적다’는 거절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통원차량을 요청했다. 덕분에 마을 내의 동초등학교 학생들은 올해부터 통원차량을 타고 다닐 수 있게 됐다.

마을 첫 비닐하우스도 올해 지었고 저온창고도 신청해놓은 상태다. 읍과 가까운 이점을 이용해 ‘로컬푸드’에도 도전해보면 마을 주민들에게 이득이 되지 않을까 싶어 고민 중이다.

나이장은 다른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신안마을에 터를 잡았다. 그렇다보니 가끔 외로울 때가 있는 것이 힘든 점이라고 털어놓았다. 나이장은 “타지에 살고 있는 아들내외는 내가 혼자 살며 이장 하는걸 지지해줘요. 힘이 되지. 서로 서너 번씩 오갔었는데 이장일을 하게 되니 마을을 떠날 수가 없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나이장은 마을 대표로서의 고충에 대해서는 “여러 사람이 함께 사는 것이니 가끔 의견이 갈릴 때도 있지요.”라며 말을 줄였다. 이어 “속상하기도 하지만 마을주민은 함께 살아가야하는 것이고 대소사에 그런 일도 있는 거지요. 나는 봉사하기로 마음먹었으니 더 열심히 할 뿐이고요”라며 마을 주민이 함께 잘 사는 마을이 좋은 마을이 된다고 웃었다.

올해 이장직이 끝나면 어떻게 할 계획이냐고 묻자 “가족들은 자주 못 보게 되겠지만 앞으로도 마을에 봉사하고 싶어요. 주민들이 시켜주시면 내가 힘이 되는 한 연이어 이장을 맡고 싶지요“라고 포부를 밝혔다.

도중에 노인회관에 들어오신 마을주민은 이장님이 어떤 분이시냐는 물음에 “좋아요, 진짜 좋다. 이런 사람 따로 없어요. 우리 이장 좋제.” 라고 연신 자랑을 하신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주민의 모습에서 이장님의 평소 덕망이 엿보인다.

“우리 마을이 잘 되면 군에게도 도움이 돼 다른 군민들도 함께 잘 될 수 있는 것 아니겠나”며 마을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나이장. 자신의 아픔을 주민들에게 베풂으로써 치유하는 모습이 빛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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