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보다 가슴, 가슴보다 영혼이 먼저 앞으로 뛰어가는 사람. 삶에 지친 이들에게 따뜻한 위안과 날카로운 깨달음의 메시지를 함께 전하는 시인. 조선일보와 영남일보 신춘문예, 작가세계 신인상에 소설과 시, 중편소설이 당선되며 오랜 시간 글을 써온 천생 글쟁이. 젊은 시절 방송사 피디로 일하며 한국방송대상 작품상을 받는 등 세상의 중심에 서서 활발한 활동을 하던 중 돌연 직장을 떠나 바람처럼 떠돌며 인생의 신산辛酸을 겪은 구도자. 김재진 시인의 삶은 어찌 보면 평화롭고 어찌 보면 파란곡절 속에 놓여 있다.

‘세상에, 사람에, 관계에, 우리는 그 모두에 여전히 미숙하다. 그러나 탓하지 말자. 이 별에 우리는 배우러 왔으니까. 아직도 우리는 배우는 과정에 있으니까.’라고 말하는 시인은 인생이란 배움터에서 겸손히 학생의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김재진 시인이 이번에 새로 펴낸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는 그가 품은 시와 잠언에서 확장된 에세이집으로서, 운문과 산문을 함께 읽어가는 아름다운 경험을 선물하고 있다. 이 책은 인생의 파란곡절을 겪을 대로 겪은 저자가 세상에 대한 깊은 성찰과 명상 속에 길어 올린 샘물과 같은 글로 가득하다. 아프고 가파른 인생의 언덕길을 함께 올라가는 수레바퀴처럼 이 책에 담긴 명징하고 따뜻한 글은 읽는 이의 어깨 위에 다정한 손 하나를 얹어놓는다.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의 제목은 김재진 시인이 20여 년 전에 썼던 시 제목에서 빌렸다. 이 제목을 보고 혹자는 영혼 바쳐 사랑한 누군가를 떠올리고, 혹자는 죽어도 용서 못할 그 사람을 떠올리고, 혹자는 ‘살아갈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로 재해석에 얼마 남았을지 가늠할 수 없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기도 했다. 김재진 시인의 잠언 에세이집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는 이처럼 가족, 친구,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는 시간, 미움과 원망과 분노로 얼룩진 마음속에서 용서를 꺼내는 시간, 누구보다 소중한 나 자신을 사랑하고 보듬으며 자존감을 찾는 시간을 제공한다.

살기에 바빠 우리가 미처 챙기지 못한 시간들이다.

김재진 시인은 ‘마음속에 사랑이 샘솟지 않는 이의 삶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는 다만 서서히 죽어갈 뿐이다.’라는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이콥스키의 말을 인용하며 우리에게 누군가를 가슴 깊이 사랑할 날이, 소중한 이들과 행복하게 살아갈 날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낄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생각해보기를 권하고 있다. 한 편의 글마다 시와 잠언을 녹여내 완성시킨 160여 편의 글은 깊어가는 가을날 사색의 시간을 마련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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