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산면 평활리 양촌저수지에서 바라본 왜군포로수용소 유적지.


명량의 역사 더 이상 미루면 안 돼... 사적지 지정 서둘러야

삼산면 평활리 양촌저수지 인근에 있는 임진왜란 당시 왜군포로수용소가 발견된 지 30년이 넘도록 안내표지판 하나 없이 방치되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 왜군포로수용소는 명량해전으로 인한 왜군 포로를 수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명량대첩의 중요한 관련 사적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러나 지난 1953년 양촌저수지 조성 공사로 인해 상당부분이 유실된 데다 그동안 수차례에 걸친 현장답사 결과 석축과 수로 등 수용소가 있었음을 뒷받침하는 유적이 발굴됐음에도 그대로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처음 왜군포로수용소에 대한 이야기가 구체화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35년 전인 1980년 일본에 있는 ‘해남회’의 회장인 다니구치 노보루(谷口登)씨가 친분이 있던 현 해남노인회장인 김광호 씨에게 사와무라 하치만타로(澤村八幡太郞)의 유고집을 전달하면서다.

이 유고집을 전달받은 김광호 씨는 해남문화원장을 지낸 고 황도훈 씨에게 이를 건넸고, 1983년 언론에 처음 공개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왜군포로수용소가 구체화 된 것은 2000년대 초 현 해남회 회장인 세키 준이치(瀨木俊一)씨가 송지면에 거주하는 박승룡 씨에게 사와무라 하치만타로의 유고집을 보내와 비로소 왜군포로수용소의 전모가 밝혀지게 된다.

그후 삼산면 매정리 일대에서 지금도 사용되고 있는 집수암거(集水暗渠)가 발견됐고, 집수암거에서 일본 글자인 ‘가나가와’처럼 보이는 문자가 새겨진 덮개가 발견되기도 했다. 왜군포로수용소에 관한 이야기가 구체화 되면서 이에 대한 증언도 이어졌다.

전 해남부군수를 지낸 박서순 씨는 양촌저수지 위 약서암 밑에 돌담 흔적이 150두락 정도 있다고 했고, 북일면 전 노인회장인 손갑태 씨는 북일면 흥촌리 집에서 해남으로 통학하던 당시 포로수용소 돌담을 보면서 다녀 정확한 위치를 알고 있다고 했다. 또 평활리에는 모리(森)가 팠다고 전해지는 ‘모리샘’이 남아있어 정황상 왜군포로수용소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왜군포로수용소가 이처럼 세상에 알려지면서 2007년 8월엔 명량해전의 일본군 장수인 구루시마 미치후사(來島道總)의 후손과 히로시마 수도대학생 30여 명이 이곳을 답사한 것을 비롯해 이에 관심이 있는 각계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정유재란 당시 명량해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왜군들의 묘지로 전해지는 진도 왜덕산에는 이를 알리는 입간판이 세워지기도 했으나 왜군포로수용소의 경우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유적임에도 아직까지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한편 왜군포로수용소에 대한 학계의 관심이 높아지고 사적지 지정을 서둘러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최근 해남군은 이곳을 향토문화유산으로의 지정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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