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꿈이 군에 들어가 장군이 되는 것이었다는 서남기(77) 이장. 군인 대신 송석리 원덕마을의 장군으로 살고 있는 서이장을 만났다.

마을 입구까지 기자를 마중 나온 서이장은 얇은 금테안경에 가지런한 치아가 인상적인 ‘어르신’이다. 서이장의 나이는 77세. ‘어르신’이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은 연세다. 77세의 나이에도 서이장은 군내 최고령 이장으로 일하며 노익장을 과시중이다.

전화로도 연신 취재할 것이 없다던 서이장은 “이렇게 가난한 마을 이장이 뭐 볼게 있다고 왔어?”라고 말하면서도 기자를 반겼다.

송석리에는 15호 정도가 사는 원덕마을이 있다. 서이장은 이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총각시절부터 이장을 맡았던 서이장은 군대에서 3년, 서울에서 4년을 보내며 띄엄띄엄 이장을 맡아오다 지금은 완전히 마을에 정착했다. 서이장은 “2000년쯤부터 죽 이장을 맡아왔지요. 이장 맡은 햇수로만 따지면 30~40년은 될 거에요.“라며 쑥스러우신 듯 웃었다.

서이장이 타지에서 생활할 동안 원덕마을은 많이 변했다. 서이장이 젊던 시절 원덕마을 가구 수는 30호가 넘었고 학교도 운영됐다. 서이장이 77세가 된 지금은 학교도 폐쇄돼 버섯영농조합이 들어섰고, 남아있는 주민은 나이 지긋하신 노인들이 대다수기에 농사 규모도 작다. 대부분 300평 이내로 텃밭을 가꾸거나 임대를 준다.

서이장은 이장으로서 해야 할 일이 많다. 주로 하는 일은 마을 주민 돌보기, 마을 사무처리 등과 마을 화합도 책임진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바로 고지서 사무다. 고지서가 집으로 배달되는 날이면 마을 노인들이 고지서를 한 움큼 쥐고 서이장네 집으로 찾아온다.

그리고 “이거는 어따 쓰는것이여?”, “요거는 어디다가 내면 된당가?” 등의 질문세례가 이어진다. 서이장은 주민들에게 고지서에 대해 일일이 설명해준다. “노인들이 모르니까 날 찾아오는 거지요, 누가 알려줄 사람이 없으니… 우편 오는 날이면 늘 그래요.”

서이장은 사위가 선물한 배추밭 뒤로 길을 내기도 했다. 차가 지나다닐 길이 없어 주민들이 불편해 했는데 서이장덕에 편하게 오갈 수 있게 됐다. 2008년 신축한 마을회관도 서이장의 공이 컸다. 마을회관을 볼 때면 서이장은 감회가 새롭다.

서이장은 “70년대 새마을 운동 당시 지원받아서 진입로도 포장하고 길도 닦고 그랬어요. 그때 나도 직접 시멘트 만들었지라. 마을회관도 새마을운동 때 지었어. 너무 낡아서 마을회관 신축비를 지원받아 새로 지었는데 내부 공사며 필요한 물품 사고나니 지원받은 4000만원보다 500만원이 더 나와 버렸어요. 그 500만원 메우느라 내가 고생을 많이 했지요.”라며 신축 당시를 회상했다.

원덕마을은 주민 수가 적고 대부분 농사도 크게 짓지 않아 500만원이란 거금을 쉽게 만들어낼 수 없었다. 결국 서이장 아들내외에게 100만원, 여기저기서 20~30만원씩 도움의 손길을 받아 공사를 완료했다. 서이장은 “도와주신 분들에게 참 고맙고 이정도로 힘든 것이 마을의 속사정”이라고 털어놓는다.

고지서 오는 날이 제일 바쁜 날이여
이장은 청지기여 청지기

서이장은 마을 입구에 버스 승강장을 지은 일도 뿌듯해했다. “승강장이 필요하긴 했는데 지을 곳이 없어서 게이트볼장 땅을 좀 침범했지요.”라며 미안한 듯 웃었다. 게이트볼장에 지을 정도로 원덕마을엔 버스 승강장이 필요했다.

이웃 송석마을에 버스승강장이 있지만 90대 어르신을 비롯해 나이든 노인들이 매번 송석마을까지 걸어 다니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비교적 날씨가 좋은 봄․가을에는 산책삼아 걸어 다니지만 날씨가 변덕부릴 때, 특히 겨울철에 노인들이 다니기 힘들었다.

서이장은 ‘가까운 곳에 승강장이 있어 원덕마을에는 지을 수 없다’는 말에도 불구하고 승강장 건설을 포기하지 않았다. 덕분에 원덕마을 입구에도 버스 승강장이 들어섰고, 차가 없는 마을 주민들은 수월하게 버스를 타러 갈 수 있게 됐다.

장날처럼 짐이 많을 때나 급할 땐 서이장이 직접 차를 몰아 주민들을 모셔다드린다. 서이장은 “시골에서 차 없으면 죽지 죽어(웃음). 그런데 요즘은 버스보다 삼삼오오 모여 택시를 타더라고”라며 귀띔했다.

마을 주민들이 미안한지 마을에 서너 대 있는 승용차는 타지 않으려고 한단다. “내가 태워다드리기라도 하고나면 나중에 차 뒷좌석에서 꾸깃꾸깃 접힌 천 원짜리를 발견한다니까? 이걸 어떻게 할 수도 없고…하하”

서이장은 사소한 일이라도 주민에게 도움이 되고자 바삐 움직여왔다. 그래서인지 큰 싸움이나 우환 없이 이장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최고령 이장임에도 주민들이 놔주질 않을 정도다. 고령이신데 이장으로서 힘든 점은 없으시냐고 묻자 “77세나 되니 나이를 먹어서 힘들지요. 기억력도 없어지는 것 같아 이장 일에 지장이 있진 않을지…”라고 답했다.

요즘 서이장의 걱정거리는 ‘이장직책을 어떻게 하면 잘 마무리 지을 수 있을까‘다. “다른 면 이장들도 연장자라고 호응해주고 따라주니까 할 만 하죠. 성실한 사람에게 이장을 넘길 때까진 잘 해내야지”라며 기력이 있을 때까진 원덕마을의 ’일하는 장군‘ 노릇을 다짐했다.

“우리 마을은 참 가족 같아요.”라는 서이장. 마을이 작아 주민들이 모여도 많아야 열 한명쯤 돼 가족처럼 모여 점심식사도 자주 한다. 서이장이 힘에 부쳐도 이장역할을 쉽사리 놓지 못한 것은 가족같은 주민들의 호응과 신뢰 때문이다.

헤어지는 길, “이장은 청지기지… 쉽게 말하면 종이야 종”이라는 서이장의 말에서 이장은 주민들을 위해 헌신하는 직책이라는 생각이 엿보인다. 공동체의 대표 ‘장군’이면서도 주민들을 위해 일하는 ‘청지기’인 서이장. 어스름한 저녁 만대산 그늘로 들어가는 서이장의 뒷모습이 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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