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산남부지역아동센터(대표 김 석, 이하 현산남부)를 방문하는 날은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흐린 날씨에 아랑 곳 없이 아동센터안은 생기가 넘쳐나고 있었다. 막 아동센터에 오는 아이들로 실내는 분주했다. 아이들이 오자마자 하는 일은 손을 소독하고 영양제를 먹는 일이었다. 현산남부만의 규칙으로 아이들은 오자마자 손을 소독하고 영양제를 먹는다.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자연스럽게 몸에 배게 한 습관이다. 한사람의 습관은 품성이 되고 그것은 곧 운명이 된다는 명언이 있다. 아이들에게 좋은 습관을 가지게 함으로써 아이들의 건강을 스스로 챙기게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현산남부는 지난 2009년에 공부방으로 시작했다. 아이들을 돌 볼 곳이 없어 시등 마을회관에서 아이들을 모아 함께 공부를 했다. 마을에 세를 얻고 지역주민들과 교인들의 도움을 받아 6000만원이라는 돈을 모아 지금의 40평 남짓의 센터를 지을 수 있었다. 김 석(42)센터장은 전임자에 이어 2012년부터 현산남부를 맡아오고 있다. 전임자와 친분이 있던 김 센터장은 센터를 맡기 전부터 아이들과 만남을 가졌었다. 아이들을 두고 발령을 가게 돼 남은 아이들을 걱정하는 전임자를 보며 자원을 해 현산남부로 오게 됐다.

처음에는 시행착오도 있었다. 아이들을 자신의 생각대로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과 욕심이 컸다. 아이들의 단점을 없애고 장점을 키우고 싶어 지적하고 아이들을 바꾸려 했다. 곧 자신의 방법이 잘못됐다고 깨닫고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봤다. 단점보다는 장점을 강조하고 항상 아이들에게 매력 있다는 말을 해줬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조금씩 변하는 것을 느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자신도 변함을 느꼈다고 한다.

현산남부에는 중학생이 14명이고 나머지는 초등부 아이들이다. 현산남부는 아이들의 교육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지역의 특성상 학원의 다니기 힘든 환경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도시 아이들과 같은 기회를 주고 싶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부담을 주어 공부를 밀어붙이기 보다는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 공부할 수 여건조차 없었다는 후회를 남기게 하고 싶지 않아서다. 차별 없는 삶이란 모두가 똑같이 사는 것이 아니라 똑같이 살 수 있는 기회를 줌으로써 실현하는 것이라는 어릴 적 교과서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현산남부는 아이들 모두에게 기회의 평등을 제공함으로써 아이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김 센터장은 “학원을 다닐 수 없는 아이들이 커서 환경 탓을 하지 않게 이곳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며 “아이들이 꿈을 이룰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재능을 꽃 피우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영어는 주로 온라인 교육을 통해서 하고 수학은 단계별 학습지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또한 아이들의 특기 개발을 위해 미술공부, 난타, 밴드 등의 특기활동을 하고 있었다. 모든 교육은 학습부진아를 중점적으로 관리하는데 힘쓰고 있다고 한다. 학교에서는 진도에 맞추어 진행하지만 현산남부는 학교진도와 상관없이 아이의 수준에 맞춰 기초수업을 해주고 있었다.

이곳에서 오랫동안 근무해온 정경란(32) 생활복지사는 “지금 고등학교 3학년을 다니는 친구 중에 이곳에서 중학교 때까지 생활하며 한자 자격증을 딴 친구가 있다”며 “이 친구가 그 때 접한 한자가 자신의 진로를 결정해 줬다며 대학을 중어중문학과를 가기로 정했다며 고마워했다”고 말했다. 또 “이런 친구들이 있기에 큰 보람을 느끼며 아이들이 자신의 길을 찾는데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회의 평등을 제공
센터는 아이들의 울타리

김 센터장은 요즘 고민이 있다. 자활 프로그램이 12월에 만료가 돼 음식을 해줄 사람을 새로 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새로운 사람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 관계부서는 자활 사업후의 지역아동센터의 운영에 대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운영비론 새로운 사람을 고용하기가 쉽지 않다는 김 센터장의 설명이다.

다른 지역아동센터들이 그렇듯 현산남부도 운영비가 넉넉지 못하다. 대도시들과 달리 후원을 해주는 곳도 많지 않다. 몇 번 공모전에 응시하여 아이들의 밴드교육과 미술교육 등을 도움 받았지만 처음부터 운영계획에는 넣을 수 없는 노릇이다. 공모전의 성격상 당락의 향방을 알 수 없는데 계획의 없는 사업을 한다는 것은 감사에 마이너스 요인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자활근로자마저 계약이 끝나면 운영을 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김 센터장의 부인이 자원봉사자로 근무해주지 않았다면 정말 큰 어려움을 겪었을 거라고 한다. 김 센터장의 부인인 조희정(41)씨는 남편과 함께 현산남부로 출근한다고 한다. 조씨는 “처음에는 일손이 부족한 센터사정을 알기에 나라도 도와주자는 마음에 시작을 하게 됐다”며 “가끔 힘들 때도 있지만 아이들이 바르게 커가는 모습을 보면 절로 힘이 난다”고 말했다.

현산남부는 한번 등록을 한 아이들이 중학교를 졸업할 때 까지 쭉 함께한다. 그 후로도 관계의 끈을 이어간다. 어쩌면 가족들보다 시간을 많이 보내는 아이들도 있어 현산남부 선생님들은 친자식처럼 아이들을 돌본다고 한다. 정 생활복지사는 “현산이 고향이라 아이들의 부모가 모두 동네 선후배들이다”며 “그래서 마치 모두 내 자식이란 생각이 들어 그렇게 대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김 센터장은 지역아동센터를 울타리라고 했다. “아동센터는 안에서는 아이들이 탈선하지 않도록 보호해주고 밖으로부터 유해한 환경에서 아이들을 보호하는 울타리다”며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키우고 성장하는데 집중하고 노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보호하겠다”고 말했다. 김 센터장을 비롯한 현산남부의 모든 어른들이 오늘도 아이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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