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라는 글자가 박힌 빨간 모자를 꾹 눌러 쓴 정영식(해남읍, 70) 할아버지. 차량 통행량이 많은 터미널 근처에서 불법 주차 차량과 씨름하고 있는 정 할아버지는 노인 일자리 사업 중 하나인 주차관리 요원이다.

정 할아버지는 2남 3녀 오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수성리에서 살았는데, 정 할아버지에게는 정남조라는 이름이 하나 더 있었다. 지금도 ‘남조야’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어 두 개의 이름으로 살고 있단다.

그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광주은행 사거리에 있던 큰 정미소에서 쌀과 보리 등 각종 잡곡을 파는 조그만 싸전을 하셨다. 머리가 비상하고 셈이 빠르던 어머니는 목포 등지까지 쌀을 배달하러 직접 운전하셨을 정도다.

해남 동초에 다니던 어느 날, 바쁜 어머니 품이 그리웠는지 산이 상공리로 쌀 배달을 나선 어머니를 쫓아갔다. 어머니가 지나간 길을 울면서 걸었단다. 정 할아버지는 터덜터덜 걷고 간혹 뛰길 반복하다 결국 혼자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부터 발걸음이 빨라졌는데, 달리기를 잘 하게 돼 초등학교 체육대회에서 1~2등을 다퉜단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어머니 일이나 백야리 문중 땅에서 농사짓는 것을 도왔다. 부모님께서 정 할아버지를 앉혀놓고 “남조야 공부해라, 너만은 가르쳐야겠다”라고 여러 차례 말했지만 공부하는 것이 싫어 번번이 속을 썩였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까지 공부를 하지 않았나 싶어 후회하기도 한단다.

15살이 됐을 때는 양복점들을 다니며 직공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지금은 아웃도어 매장들이 가득 들어섰지만 정 할아버지가 어렸을 적만 하더라도 옷을 직접 만드는 양복점들이 많았다.

연탄을 넣어 다림질하는 것부터 재봉틀질까지 맞아가며 배웠다. 많은 돈을 받진 못했지만 나름대로 기술직이었다. 그렇게 10여년을 하다 23살이 되던 해 군에 입대하게 돼 아는 동생에게 직공일 자리를 잠시 맡아 달라 부탁했다. 하지만 정 할아버지는 직공일 자리를 다시 돌려받지 못했다.

군에 들어가기 전 아버지가 정 할아버지의 손에 400원을 쥐어주며 “돈은 이거밖에 없지만 고생하니 뭐라도 사먹어라”라고 말하셨던 게 지금도 또렷이 기억난단다. 입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건강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나셨다. 아버지께 받았던 400원 속 다정함과 사랑이 아직도 그립다.

1980년부터는 군청의 도로포장 일용직으로 일하게 됐다. 마흔살에는 뒤늦게나마 금쪽같은 딸을 얻게 됐고, 2년 후 둘째딸이 태어났다. 사랑스러운 딸들 덕분에 고된 일도 더 열심히 일했다.

정 할아버지가 일할 적에는 일용직과 고용직이 나뉘어 있던 때였다. 20여 년간 일을 해오던 중 정 할아버지에게도 고용직이 될 기회가 왔다. 더 열심히 일하겠노라고 다짐까지 했다.

그런데 안타까운 일이 생겼다. 작업을 하기 위해 농로를 걷던 중 1톤 덤프트럭에 치인 것이다. 그 날은 2001년 1월 21일이었다. 이제 죽는구나 생각하는 사이에 생명의 은인이 나타났다. 바로 사고현장을 목격한 할머니다.

할머니는 ‘사람 바퀴에 치어놓고 끌고 가냐’며 소리를 지르셨고, 덕분에 병원으로 이송될 수 있었다. 비장과 신장이 파열돼 병원 생활만 7개월을 해야 했다. 퇴원하고 나서도 한동안은 제대로 걷지 못했다. 휠체어와 목발에 의지해야만 했다. 결국 고용직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것 같아 결정한 일이었다.

정 할아버지는 집에 움츠려있지 않고 훨훨 날고 싶어 재활치료 겸 달리기를 시작했다. 천천히 걷는 것부터 시작해 90년대에는 마라톤 대회에도 출전했다. 해남뿐만 아니라 강진, 광주, 서울 등으로 여러 차례 마라톤을 참가했다. 완주 메달도 50여개가 넘는단다.

예상 못한 사고, 달리기로 치유
노인일자리 참여는 노년기의 활력

지난해 3월부터는 군에서 실시하는 노인 일자리에 참여하게 됐다. 주차관리요원으로 일하게 됐는데, 불법주차 차량을 단속해 교통체증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터미널, 매일시장, 광주은행 사거리는 불법주차 문제가 가장 심각하단다.

정 할아버지는 되도록 서로 기분 나쁘지 않게 좋은 말로 단속하고 있다. 급한 일이 있는 사람도 있지만 맡은 일이 불법주차 차량을 단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단다. 터미널 부근을 한 바퀴 돌고 오면 어느새 불법주차 차량이 주차돼 있고, 운전자가 없는 경우에는 전화요금이 나오더라도 연락해서 차를 이동시켜달라고 말한다.

죄송하다면서 가는 사람도 있고, 잠깐 주차하는 건데 왜 그러냐는 사람도 있다. 간혹 좋지 않은 소리를 들을 때도 있지만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추스른다.

게다가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내 일처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단다. “돈을 받는 가치만큼 일해야지 돈만 받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 나이 들어서도 뿌듯함을 느끼고 싶으면 이런 일에서부터 성실해야 한다”

주차관리요원으로서 일하는 시간은 하루 3시간으로 한 달에 12일가량이다. 이렇게 해서 받는 월급은 20여만원이다. 노인들마다 생각은 다르지만 일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길 원하는 사람도 있다. 금전적인 문제도 있지만, 일을 하고 있다는 심적인 부분도 크다. 추가적으로 일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 더 일하고 싶어하는 노인들에게는 시간을 늘리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단다.

정 할아버지도 노인기초연금을 받아도 생활비가 부족해 시간이 날 때면 걸어 다닐 겸 폐지를 줍는다. 그가 20일 동안 폐지를 모으면 리어카 하나를 채우는데, 이렇게 채워도 3만 5000원 정도를 받는다. 받는 돈은 적지만 다른 일이 없어 틈틈이 폐지를 줍는다.

“올해 딱 70살이야. 벌써 그렇게 나이를 먹었나, 어린 시절 무엇 했나 싶지. 60세만 되도 못 이뤘던 여러 일들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그래도 이렇게나마 일할 수 있는 게 뿌듯하지”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정 할아버지는 솔직하고 착실하게 일하면 인정받는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 믿음을 위해 오늘도 빨간 조끼와 빨간 ‘질서’모자를 챙겨 입고 거리로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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