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 당산리로 들어가는 길은 눈이 즐겁다. 주민들이 힘을 합쳐 넓힌 진입로는 세심하게 꾸민 동백나무 가로수가 인상적이고, 마을회관에 도착하면 시골에서 보기 드문 넓은 주차장이 사람들을 맞이한다.

곳곳에 돌담집이 눈에 띄는 당산리는 주민들 유대감이 끈끈하기로 소문난 비슬권역에 속한 마을이다. 비슬권역은 당산리와 강절, 신기, 태인 등 4개 마을이 아름다운 농촌을 만들기 위해 똘똘 뭉친 곳이다. 마을마다 각기 다른 개성들을 갖고 있는데, 당산리는 마을회관까지 들어오는 진입로가 가장 큰 자랑거리란다.

임대식(68)이장은 당산리에서 7년째 이장을 맡고 있다. 당산리 토박이로 태어나 부모님과 함께 농사를 지었던 임 이장은 마을 일에 관심이 많은 열혈 청년이었다. 20대에는 10여 년간 마을 반장을 도맡아 했을 정도다.

결혼 후 마산동초부터 해남동초 등의 초등학교 행정실에서 25년간 근무하면서도 당산리를 떠나 산 적이 없었다. 아침저녁으로 짬을 내 농사를 짓고, 주말에도 어김없이 논으로 출근해 농사일과 주민들에게 멀어질 틈이 없었단다.

그는 지난 2006년 퇴직하게 되면서 더욱 적극적으로 마을 일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장을 하지 않았던 2007년에도 마을 회관과 정자 신축을 위해 발 벗고 나섰을 정도다. 공사비용 8500만원이 필요했지만 3000만원밖에 지원받지 못했고, 주민들에게 조금씩 돈을 걷어도 모자라 향우들에게 일일이 안내장을 보내 후원을 받았다.

바쁜 주민들을 대신해 설계며 자재까지 신경 썼고, 날마다 현장에 나와 경과를 살폈다. 완공 후에는 결산서까지 꼼꼼하게 마무리 했다. 그의 세심한 일처리가 소문나면서 주민들이 이장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했단다.

그가 이장이 되고난 후 계곡에서 1마을 1특색사업을 장려해 본격적인 마을경관 가꾸기가 시작됐다. 주민들은 적극적으로 울력에 참여했고, 마을 뒷산인 매마봉이 마을을 둘러싸는 아름다운 경관을 갖고 있어 금세 독특한 매력의 마을이 됐다.

가장 큰 변화는 마을 진입로였다. 당시 마을 진입로는 폭이 4~5m밖에 되지 않았지만, 주민들이 돌을 고르고 풀을 베며 길을 넓혀 지금은 폭이 8m나 되는 2차선으로 변모했다. 진입로 양 옆에 동백나무를 심을 땐 벽돌을 이용해 화분처럼 꾸몄단다.

하지만 요즘 임 이장은 주민들과 울력으로 마을일을 하는 게 부쩍 미안해진다. 65세 이하 주민은 한 손으로 꼽을 정도로 노령화됐기 때문이다. 70여명의 주민들 대부분이 70~80대 노인들인 상황이다.

그나마도 세대수 50호 중 20여호가 독거노인들이다. 대부분 쌀농사를 짓는 당산이였지만 지금은 농사짓는 주민도 20여호 밖에 되지 않는단다. 그렇다보니 울력뿐만 아니라 오래 걷는 일도 힘에 부쳐 20여년 넘게 해오던 마을 여행계도 사라졌다.

노인들 건강 걱정에 임 이장은 마을 노인들의 건강검진 기간이 되면 병원에 가야 하는 노인들을 회관으로 모신 뒤 다함께 건강검진을 받으러 간다. 이동식 건강검진보다 병원에서 정확하게 진단받았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병원에 직접 연락해 차량이 마을까지 오는데, 4년째 하다 보니 이젠 병원에서 먼저 연락이 온단다.

꼼꼼한 일처리로 주민들 신뢰 높여
비슬권역간 주민들 뭉쳐 농촌위기 타파

당산리가 속한 비슬권역은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대상으로 지난 2011년부터 5년간 42억을 지원받아 여러 사업들을 추진 중이다. 당산리에는 농기계 전시·보관실이 설치됐고, 다양한 관광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농촌체험관이 들어섰다.

“당산리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비슬 주민들 열의가 대단해. 울력으로 돌담도 쌓고 청소도 하며 마을 경관을 꾸밀 수 있던 것도 주민들끼리의 유대감이 끈끈해지. 소식지도 만들고 말이야. 이런 노력들 덕에 12일 광주에서 시상식이 열린 제11회 좋은이웃 밝은동네 콘테스트에서 전라남도부분 대상을 받았어”

임 이장은 주민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깨끗한 양심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장이 하는 일에 주민들이 지지해주고 함께 할 수 있어야 진짜 이장이란다. 그러기 위해선 마을에 득이 되는 일들을 내 일처럼 꼼꼼하고 세밀하게 해야 한다고.

마을의 역사와 어원까지도 줄줄 꿰고 있는 임 이장. 주민들의 적극적인 행동을 끌어낸 건 당산리를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그의 모습 덕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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