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가 고개를 숙이는 가을, 옥천 마고리는 새를 쫓기 위한 공기총 소리가 요란하다. 마을 곳곳이 영글어가는 벼로 가득해서다. 땅이 비옥해 실 세대수 37호 중 한 집을 제외하고 모든 주민이 쌀농사를 짓고 있다 보니 새가 많단다.

8년째 이장을 맡고 있는 송우석(69)이장도 1만평의 쌀농사를 짓고 있는 농사꾼이다. 황산 외입리가 고향인 그는 10살 때 마고리로 이사와 농사짓는 부모님의 모습을 따라 농사꾼의 길에 발을 내딛게 됐다.

20대에 마을 이장을 맡을 정도로 농사에 열중했던 송이장. 30살이 되던 해 새로운 인생이 펼쳐졌다. 영춘제 저수지가 축조될 당시 기술주임이 송이장네에 3년간 머물렀는데, 그 분을 통해 경지정리 일을 배우게 돼서다.

그때만 해도 대부분의 논은 다랭이 논이었다. 송이장은 듬성듬성 만들어진 논을 합쳐 반듯하게 정리하고 구역정리를 한 뒤, 논의 평수를 재 깔끔하게 만드는 경지정리를 35년간 성실히 해왔다. 진도에서도 일할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냈지만 고향 마고리로 돌아와야겠다는 생각에 10년 전 은퇴하고 돌아와 농사를 짓고 있다.

“다시 돌아오니 역시 마고리가 최고여. 이장도 오랜만에 하니 많이 바뀌었드만. 비료포대만 해도 예전에는 면소재지 농협창구에 가서 지게에 지고 일일이 무게 재서 나눠줬는디, 요즘 그런 일은 수월혀. 다만 주민이 적고 고령화된 게 걱정이제”

송이장도 내년이면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그보다 더 고령인 노인들이 많아 늘 신경이 쓰인다. 최고령자인 박약산 할머니는 1914년생으로 벌써 100살을 맞이했고, 90대 노인도 3명이나 된단다.

마고리는 노인당이 2개다. 84명의 주민들에게 노인당이 두 곳이나 필요할까 싶지만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5.16 군사혁명 이후 연화동과 마고리 두 개의 마을을 하나로 합치게 돼서다.

마을 이름은 마고리로 짓고 노인당이자 마을회관은 연화동에 두었는데, 두 마을의 거리가 멀어 나이든 주민들이 노인당에 오지 못할 정도였다. 결국 고심 끝에 3년 전 노인당을 하나 더 짓게 됐단다.

주민들은 편해졌지만 송이장의 일은 두 배가 됐다. 마을 방송도 두 번, 주민들을 찾아뵙는 것도 공평하게 다녀와야 한다. 수고스럽지만 이장이라면 주민들을 위해서 이정도 고생은 당연한 일이라고.

“우리 마을 젊은 사람은 열 손가락 안에 들어. 젊은 사람이라 해봐야 도시 나가면 아저씨 소리 듣는 사람들이제만. 완전 노령화시대 되야부렀어. 주민들 건강 걱정은 된디, 다들 농사 힘들다 힘들다 해도 평생을 해온 게 농사밖에 없은께 어쩔 수 없어”

송이장은 농촌에 점점 고령인구들만 남는 것이 큰 걱정이다. 보건소에서 요가수업을 오기도도 하지만, 평소에 혼자서도 가볍게 할 수 있는 운동기구들이 없어 아쉽다. 노인들이 하기 힘든 맨손운동기구보다 간단한 스트레칭 기구들을 보급해줬으면 한단다.

노인당 2채, 고령화의 쓸쓸한 모습
멀리서도 주민 챙기는 마을 청년들

지난 1960년대만 해도 마고리는 모시를 많이 키웠다. 마을 뒷산 밭이 온통 모시로 가득했을 정도다. 그 시절 부녀자들이 그러하듯 어려운 집안 형편에 보탬이 되고자 밤낮으로 모시를 삼고 베를 짰단다.

하지만 70년대 이후, 서양식 의류가 퍼지고 모시로 돈을 벌기 어려워지자 점차 자취를 감췄고 지금은 모시 삼는 집을 찾아볼 수 없다. 시장에 모시를 내다 팔던 모습들까지도 추억 속에서만 찾을 수 있는게 아쉽단다.

그래도 마을에는 꾸준히 내려오는게 있다. 경로사상과 노인공경이다. 타지에 나간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계를 만들고 여름철이면 마을에 50만원씩 희사한다. 이 돈으로 음식을 장만해 주민 모두 모여 한 끼 풍성하게 식사도 하고, 완도 등으로 놀러 다닌다.

“요즘은 시골도 점점 개인화돼서 한 마을에 살아도 이웃한테 관심 안 주는 경우가 허다해. 그란디 우리 마을 청년들은 멀리서도 주민들 잘 챙기고, 명절 때 내려오면 청년들끼리 회관에 뭉칠 정도로 결속력이 끈끈허지”

주민들끼리 잘 어울리고 화합이 잘 되는 건 송이장의 가장 큰 자랑거리다. 인심좋고 사람들이 온화해 가능하단다. 마고리를 살기 좋은 마을로서 꾸준히 지키고 싶다는 그의 바람은 주민들 모두의 바람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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