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산 송정마을은 ‘수세 없는 마을’이라는 별칭이 있었다. 물이 풍부해 물세를 따로 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란다. 지금도 마을 앞으로는 하천이 흐르고, 마을 내부로는 두륜산자락에서 내려오는 물이 흐른다. 오래 전 주변 마을과 함께 보를 만들어 마을로 물을 끌어들이고 있어서다.

송정리가 고향인 이관재(60) 이장은 흙과 돌로 만들었던 보를 지키기 위해 고생하던 어른들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단다.

“마을 곳곳에 수로가 있는데 수로 끝의 공간에 주민들이 작물을 심어 더 폭이 좁았어요. 3년째 이장하면서 개거사업과 농로포장을 개선하려 꾸준히 노력했죠. 일부 수로 구간은 지난해 시멘트를 발라 길 폭이 조금 넓어진 편이에요”

그는 도로 끝부분에 가드레일 등의 안전시설이 없어 수로에 빠질 수 있는 점이 조금 아쉽다. 마을에 어린아이가 많았던 시절에는 수로에 아이들이 빠졌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금은 마을에 아이들이 없어 수로에 빠질 걱정은 하지 않는단다.

100여명의 주민들 대다수가 65세 이상 노인들인데, 특히 70~80대 독거노인 할머니들이 많은 편이다. 세대수 43호 중 독거노인이 20여 세대를 훌쩍 넘을 정도라고.

대부분 남편을 60대 전후로 잃고 혼자서 살아온 노인들이다. 고령마을인데다가 독거노인이 많아보니 노인들 건강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란다.

“예전에는 마늘농사 지으면 며칠씩 꼬부리고 앉아 농사를 지었는데, 지금은 골병이 든 주민들이 많아 병원 다니는 게 일인 노인들이 많아요. 요즘은 근처에서 부모를 모시는 사람들도 보기 힘드니 이장이 아들노릇도 같이 해야죠”

독거노인 문제가 워낙 퍼지다보니 군에서도 많이 신경써주지만 연세 많은 노인들이 복지 정책이나 서류작업을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크다. 기초수급자 선정을 이장이 하는 줄 아는 주민도 있어 매번 면사무소에 모시고 가 함께 상담을 받고 설명도 해드린다.

그는 고령마을인 송정리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송정리가 고향인 청년들을 모아 청년회를 조직했다. 현재 회원은 15명. 서로 선후배사이로 지내며 주민들에게 식사도 대접하고 함께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마을 내에도 젊은 사람들이 있지만 해남읍으로 출퇴근하는 주민들이다. 출퇴근을 하다 보니 자연히 주민들 간 교류 시간이 적어 마을 일에 합류하기가 힘들단다.

또 농사짓는 젊은 사람이 있어야 마을 품앗이 할 사람도 늘어날 텐데 농사지으러 오는 사람들은 없어 걱정이 크다. 도로가 잘 뚫려 있어 읍내까지 차를 타고 10분 거리, 물도 풍부하고 땅이 좋아 농사짓기에 그만이지만 사람이 없단다.

“지금이야 나이 먹어도 농사짓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이 상태로 10년, 20년이 지난다고 생각하면 막막해요”

농사짓는 사람은 줄어도 이장에게 송정리는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는 훌륭한 마을이다. 특히 마을의 기운이 좋고 주민들이 온화해 제대로 된 체계가 갖춰지기도 전인 지난 1981년 범죄 없는 마을에도 선정됐을 정도란다.

풍부한 물, 비옥한 땅을 가진 마을
고정희 문화제에 주민들도 함께 했으면

또 한국이 사랑하는 페미니스트 시인인 故 고정희 시인도 송정리 출신이다. 13년 전부터는 고정희기념사업회에서 고정희 문화제를 개최해 각계각층에서 견학을 많이 온단다. 한창 바쁠 농번기철에 문화제가 열리는데다가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다보니 도로나 농로에 주차된 차들로 인해 주민들이 불편을 겪을 정도다.

“고정희 시인은 나보다 6살 위의 누나였어요. 인품이 온화하고 성격도 좋았었죠. 우리 마을에서 좋은 기를 많이 받고 광주에서 뛰어난 시를 많이 지었더라고요”

마을 주민 모두 고정희 시인을 아끼고 자랑거리로 여기지만, 주민들이 문화제에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이 없어 아쉽다. 행사를 개최해도 마을 주민과 행사 참여자가 교류할 기회가 없어서다. 농번기철에 문화제가 개최되다보니 주민들의 의견도 묻고 서로 생각을 나눌 수 있었으면 싶단다.

이 이장은 마을 앞 하천에서 물놀이를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꿈이다. 하천이 깊지 않고 깨끗해 아이들 놀기에 좋지만 잡초 관리나 그늘나무가 별로 없어서 찾아오지 않는다고. 여름철이면 사람들이 많이 찾는 어성교, 용전교 밑의 하천처럼 꾸미고 싶단다.

“이장은 주민들을 대신해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인만큼 주민생활 개선과 마을 발전에 신경을 많이 써야죠. 심부름꾼이니까요. 민원 해결해서 주민들이 불편해하지 않도록 하는 게 1순위이고, 그 다음이 화합이에요. 자신의 생활이 불편하면 남에게 신경 쓸 여유도 줄어들거든요”

이장이라는 직책 자체가 힘을 갖는 게 아니라 주민들이 이장을 믿고 고마워할 때 힘이 생긴다는 이 이장. 주민들이 돌아가시는 날까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다 가실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드리기 위해 열심히 뛰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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