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패총貝塚

                                               이지엽


하얗게 뼈만 남아 육탈된 詩를 보러
백포만 주머니꼴 낮은 구릉 찾아 갔어
가볍게 목례를 하고 조의를 표했지

이미 화석 되어 켜켜이 쌓인 퇴적층 속
긁개와 돌창 든 사내 뒷모습이 외로웠어
손들어 웃는 모습이 낯선 변방 같았어

고인돌과 독무덤 사이 흘러간 수세기를
정을 비운 몸만으로 층층 쌓아 막아선들
어찌 다 적을 수 있을까 원시의 숲 눈먼 책들

껍데기가 집이 되고 나라가 되는 동안
깡마른 음계의 바람 같은 말씀이여
논물이 그리운 봄날, 재두루미 입술 묻는

 

 

<시작메모>
백담에 들었다. 만해마을에서 1박을 하였다. 만해 축전 기간 중이라 밖에 나서면 사람들과 수인사 나누느라 정신없었지만 오히려 문인의 집 방에 드니 밤이 길었다. 시와 맞서는 기분으로 오래 시름하였다. 그전부터 생각해오던 작품이었다. 고향 해남의 패총 발견지 백포만, 땅끝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이튿날 우연히 아침 산책을 오세영 선생님과 같이 했는데 보였더니 좋다고 했다. 나도 오랜만에 좋은 작품 하나 건진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이지엽시인 약력>
-해남군 마산면 출신
-1982년 한국문학 백만원고료 신인상과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어느 종착역에 대한 생각>과 시조집<사각형에 대하여>외 다수.
-중앙시조 대상, 유심 작품상 등 수상, <현대시 창작강의>외 저서 다수.
-계간 <열린시학>과 <시조시학>주간. 현재 경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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