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리 주민들은 이순신 장군에 대해서 잘 알아요. 해설가 수준일 정도죠. 충무사에서 이충무공 탄신일 다례행사 등을 지내고 있어서인지 관심이 많으시더라고요”

문내 충무리 이장을 맡은 지 2년차인 최성재(65) 이장. 그의 고향은 동외리다. 동외리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6년 동안 동외리 이장을 맡기도 했었다.

오랜 생활터전이었던 동외리를 떠나 충무리로 오게 된 것은 이순신장군과 관련이 있다.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역사유물인 보물 제503호 명량대첩비를 원래의 위치로 되돌리려는 노력이 시작되면서였다. 명량대첩비가 있던 곳이 최이장의 집 인근이었기 때문에 자리를 내주고 4년 전 충무리로 이사를 왔다.

이사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그가 이장을 하게 된 건 주민들의 성품 때문이다. 온화하고 정이 많은 주민들 덕분에 금세 주민들과 어울리게 됐고, 대부분 연세가 많은 주민들을 위해 마을일을 하게 됐다.

충무리의 실 세대수는 33세대로 주민수는 80여명이다. 최이장이 이사왔을 때보다 오히려 주민이 늘었다. 서울이나 목포 등 도시에서 5가구 정도가 귀농·귀촌했기 때문이다. 타지 사람들이지만 주민들이 워낙 잘해주다 보니 스스럼없이 마을에 융화돼 마을행사도 열심히 참여한다.

“두 마을의 이장을 해본 사람은 드물거에요. 도시형태인 동외리에 비해 충무리는 마을이 아담하고 옹기종기 모여 살다보니 이장일 하기가 훨씬 수월하더라고요. 다만 연세있는 분들이 많은 게 걱정이죠. 65살인 제가 젊은 축에 속할 정도니까요”

마을 노인들을 위해 어버이날이면 매년 경로잔치를 연다. 단합이 잘 돼 1년에 1~2차례 관광 겸 견학을 간단다. 비용은 주민들이 조금씩 걷는데, 모자라면 주민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희사금을 낸다. 서로 내놓으려고 할 정도로 정이 넘치는 마을이란다.

최이장은 84세 장모님과 90세 친어머니를 함께 모시고 있다. 집 바로 옆에 두 분의 거처를 따로 마련해 드리고 수시로 드나들며 반찬이며 건강을 챙기다보니 노인들에 대한 걱정이 남다르다.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기꺼이 나서서 도와드리려 한단다.

그래서인지 주민들은 보일러가 고장 났거나 수도가 터지면 최이장을 찾는다. 목수일부터 철물점까지 다양한 경험으로 다져진 그의 손길이 야무진 덕분이다. 열설비 자격증도 있는데다가 아직까지도 연장을 갖고 있어 간단한 집 보수도 뚝딱이다.

또 주민들을 위해 2년에 걸쳐 마을 안길공사도 진행하고 있다. 주민들이 자주 이용하던 안길이 폭이 2m가 채 되지 않아 경운기나 승용차가 빠지는 사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3m 50cm로 늘리고 올해 포장을 마무리 한단다.

최이장은 이장일을 하며 수석원 운영과 밭농사 2000평을 짓는다. 남는 시간에 편백나무를 이용한 목공예를 하고, 명량대첩 이충무공 유족보존회 사무국장으로서도 일하는 중이다. 충무사에서 이충무공 탄신일 다례행사를 지내거나 명량대첩축제 전 제사 지내는 것을 최이장이 준비한단다.

“아직까지는 충무사에서 다례행사를 진행하는데 사당을 옮겨 제사를 지낼 계획이에요. 도로가 생기면서 이순신 장군을 참배하러 가는데 다리 밑을 지나 가는게 격식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죠”

최이장은 충무리의 지리적인 위치가 매우 좋은 곳이란다. 명량대첩공원도 걸어서 5분 거리고, 우수영도 2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관광지 인근 마을이기 때문이다. 우수영 관광지나 명량대첩 관광지가 관광객에게 호응을 얻게 된다면 마을에 체험형 민박촌을 형성하는 것이 그의 꿈이다.

텃밭에 각종 농작물을 길러 농사체험도 진행하고, 마을 앞 바다에서 낚시 체험도 즐길 수 있단다. 충무사와 다양한 공적비들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배울 수 있고, 인근 관광지 투어까지 연계할 수 있어 다양한 체험을 만들 수 있을 거란다.

“체험형 민박촌을 만들어 관광수입을 올리는 게 주민들을 잘 살게 만드는 길이라고 봐요. 주민들을 돌보고 뒷바라지하기 위해서 시작한 일이니 꿈을 크게 가져야죠. 일 있으면 당장 뛰어가 주민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고, 함께 잘 살기 위해서 일하는 게 이장의 역할이 아닐까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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