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 하면서 농촌에 대해서도 더 알게 되고, 농사와 농민들의 삶을 이해하는 시간이 됐어요. 인간관계도 많이 배웠고요. 자기개발 할 수 있는 시간이라 생각하니 많이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송지 방처리 황인선(58)이장은 30대부터 이장을 맡아 일한 기간만 10여년이 훌쩍 넘는다. 젊은 시절부터 이장을 해 어릴 때부터 농사일에 빠삭한 농사꾼인 줄로만 알았지만, 사실 그는 농사지을 땅조차 없었다.

지금은 무화과 1600평과 2만8000평의 논농사를 짓고 있는 황이장. 학업을 위해 광주고로 진학하고 군대를 다녀온 후 다시 방처리로 돌아왔을 땐 집안 사정이 어려워진 때였다. 그래도 마을을 떠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일을 해주며 조금씩 자신의 기반을 넓혔단다.

“어릴 적 우리 방처리는 200여명 가까이 살던 마을이었어요. 농사를 크게 짓는 사람들이 많아 꽤 부자마을에 속했죠. 하지만 지금은 실 세대 44호에 70여명정도 살아요. 80%이상이 65세 인구이고 농사짓는 사람들도 팍 줄었죠”

방처리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방조제가 생기기 전 마을 앞이 온통 바다였지만 주민 모두 농사를 지었다. 근처 다른 마을에서는 염분 때문에 모를 심어도 잘 자라지 않는 경우가 있었는데, 방처리는 땅이 좋아 농사짓기에는 그만이었단다. 산골농사를 최고로 쳤을 시절이었다.

하지만 지금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절반도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건강문제로 농사일이 힘에 부쳐 땅을 팔거나 임대를 줬다. 노인들이 많아지는 마을을 지켜보는 황이장의 마음은 더 안타깝단다.

“기력 있으셨을 땐 다들 마을 울력에도 적극적이셨어요. 지금도 서로 도와주거나 수리해줄 수 있는 건 상부상조하고요. 특히 새마을지도자께서 소리사 하셨던 경력으로 주민들 기계가 고장 나면 뚝딱 수리도 해주세요. 마을일에 관심갖는 분들이 많으니 이장하기가 수월하죠”

주민들의 평균 연령대가 높아지면서 농촌건강장수마을 사업을 신청해 진행하고 있다. 지난 2012년부터 시작해 올해까지 총 3년을 운영하는 전남도 사업이란다. 1년에 5000만원의 지원금이 나오는데, 3000만원은 주민복지건강에 사용하고 2000만원은 교육에 투자하고 있다.

교육시간에는 노래교실과 요가부터 한지공예까지 농번기를 제외하고 매주 한 번씩 진행된다. 마을 내에서나 근처에서 별다른 놀 거리가 없어 노인들이 열정적으로 참여한단다.

지원금을 받아 마을 창고를 교육장으로 리모델링해 편히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했고, 건망증이 잦은 노인들을 위해 가스안전밸브 사업을 진행해 집집마다 자동 시스템으로 바꿨다.

또 건강하게 오래 살자는 뜻으로 두부 만드는 기계도 구입했다. 설날이나 정월대보름이면 마을 땅에 심은 콩을 수확해 부녀회원들이 두부를 만든다. 직접 만든 따끈따끈한 두부 맛도 일품이고, 도란도란 정을 나누는 모습에 한층 더 두부맛이 살아난단다.

방처리에 애정을 갖고 사는 주민들이 대부분이기에 단합도 잘 된단다. 30여년 전 한 주민이 450평의 땅을 마을에 희사해 아직까지 내려오고 있을 정도다.

경조사를 챙기기 위해 친목회도 운영했다. 경사가 나면 회관에서 다함께 잔치를 벌이고, 초상이 나면 주민들이 직접 상여를 졌다. 요즘은 뷔페 등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늘어나 마을에서 치르는 경조사 모습이 줄어들었단다.

마을의 또 다른 변화는 무화과다. 10여년 전 주민 8명이 모여 송지면 최초로 무화과를 특수작물로 재배하기 시작한 것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단다. 황이장도 9년 전부터 무화과 농사를 시작했고, 쌀농사보다 짭짤한 소득을 올리고 있다.

“쌀농사보다 수익은 훨씬 좋죠. 같은 200평이라면 쌀농사는 60만원의 수익이 나고 무화과는 600만원의 수익이 나요. 초기투자비용이나 운영비 차이가 크지만, 쌀시장도 개방되는 마당에 판로만 있다면 특수작물 재배가 쌀농사보다 경쟁력 있죠. 슬픈 현실이에요”

노지에서 재배하는 게 아니라 하우스에서 재배하기 때문에 7월 중순부터 11월 말까지는 수확할 수 있단다. 몇 농가는 함께 모여 주식회사를 만들어 수매와 출하를 하고, 무화과 즙 등으로 가공해 판매하는 중이다.

비가 잦은 요즘 황이장은 걱정거리가 생겼다. 마을 초입부의 땅 지대가 높은데도 수로에서 물이 빠지지 않아서다. 하천 수압보다 수로 수압이 높아야 물이 빠져나가는데, 수로 수압이 약해지면서 논에 물이 차오른단다. 얼른 해결해서 주민들의 불편을 해소하는 게 최근의 목표다.

황이장은 이장 스스로 이장으로서의 시간을 즐겁게 활용해야한다는 신념이 있다. 자기 발전의 시간이라 여기며 배움을 찾아야 주민들을 위해서도 더욱 열심히 일할 수 있단다.

“이장은 행정과 주민의 가교역할이죠. 중간 다리가 끊기면 소통하기 어려우니 다리가 튼튼하게 지지해야 해요. 그러려면 자신을 가꿔나가야죠. 많은걸 배우려고 하다 보니 지난해와 올해는 송지면 이장단장도 맡게 됐는데, 또 다른 배움의 세계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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