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홉, 한 되, 한 말. 이제는 낯설어진 단위들을 아직도 사용하는 곳이 있다. 바로 쌀집이다. 1kg, 10kg 등으로 나누어 판매하는 요즘 세상에서 찾기 힘든 모습이다. 손때 묻은 됫박들이 세월을 거스른 듯한 착각까지 준다.

매일시장 중앙쌀집의 김순자(75)할머니는 쌀 장사만 40여년을 넘게 해왔다. 강진이 고향인 할머니는 해남이 강진보다 쌀 한되에 5원이 비싸다는 말에 매일 쌀 1~2가마를 지고 해남에 나와 장사를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고운 각시’라는 소리를 듣던 때였다.

돈이 없었던 할머니는 외상으로 쌀 가마니를 가져와 노점상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백미만 팔러 다녔다. 돈 있는 사람들이 쌀장사를 한다지만 쌀집을 크게 여는 사람들이나 가능한 소리란다.

번듯한 건물 하나 없었고 초가집과 기와집만 가득하던 시절, 한복을 입고 처음 장사를 시작했을 땐 아는 사람에게 쌀을 맡겨두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쌀 사시오’라고 물었단다.

창피한 마음에 쌀 사라는 말을 꺼내기 힘든 것도 잠시, 빠듯한 생활걱정에 고무신 바삐 이끌며 골목마다 ‘쌀 사시오’라는 목소리를 남기고 다녔다.

산다는 사람이 있으면 쌀을 맡겨놓은 곳에 다시 가 얼른 가져다 줬다. 이중 삼중으로 돌아다녀야 했지만 쌀을 팔았다는 재미에 다리 아픈 것마저 잊어버렸다.

장사에 익숙해지고 조금씩 쌈짓돈을 모으게 되면서 옛날 동아예식장 근처에 창고 자리를 하나 얻었다. 팔다 남으면 보관했다가 다음날 팔기도 하고, 창고 앞에서 좌판을 펼치기도 했단다.

매일시장 옆 주차장 자리에서 좌판을 펼치기도 했다. 예전에는 매일시장 내에서 쌀을 파는 해남 상인들이 여럿 있었다. 할머니처럼 타지에서 온 사람들은 그 주변에서 장사를 했다. 그때는 식당하는 사람들도 쌀집에서 쌀을 샀다. 짚으로 된 쌀 가마니 하나가 4말이 들어간다. 40되가 나온다는 소리다. 보통 스무되씩 많이 사갔다.

예전에는 쌀집들 모두 배달을 했다. 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점심도 굶고 장사를 하면서 배달까지 하려니 하늘이 노래지고 뱅뱅 돌 정도였단다. 못 먹고 못 입고 장사하던 시절, 정 배가 고프면 튀김 20원어치를 사서 먹었다. 당시 쌀 한 되에 2500원이었을 때였다.

“열 되, 스무 되를 머리에 이고 배달 했제. 매일시장에서 금강골 너머까지도 배달을 다녔어. 힘든께 쉬어감시로 그래 다녔제. 하도 무거운 걸 자주 날라서 지금 골병 들었어야”

외상하는 손님 때문에 고생도 많이 했다. 외상장부도 썼지만 가져가기만 하고 대금을 치르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돈을 주지 않았으면서도 줬다고 우기거나, 그대로 도망가는 사람들 때문에 손해 본게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도 그 때는 해남에 사람이 많이 살아 그런대로 장사는 잘 됐다. 시장에는 늘 사람이 북적였고, 별다른 먹거리가 없어 배를 곯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쌀이 잘 팔렸단다.

하지만 지금은 손님 보기가 힘든 세상이 됐다. 손님보다는 오고 가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러 들어온 사람들이 더 많다.

판매되는 종류도 달라졌다. 최근에는 백미를 사러 오는 손님은 거의 없다. 보리나 찹쌀, 녹두 등 잡곡류를 사러 오는 손님이 대부분이라 거의 한 되씩 팔리는 정도다.

또 됫박으로 담아주다 보니 딱 맞게 담는 것이 아니라 양 손으로 더 얹어 고봉으로 담아주게 된다. 그렇게 해도 더 달라는 성화에 한 주먹씩 쥐어주게 돼 남는 것이 별로 없단다.

“40kg 쌀 한 가마 팔아야 5천원 남어. 근디 요즘 다 마트가서 사불제 여서 쌀 한가마 팔라믄 한참이여 한참. 영세민들은 정부에서 쌀 나온께 안사고. 해묵고 살았던 것이 쌀장산께 이 자리 얻어갖고 이사한지 1년도 안 됐는디 월세 50만원 내기도 힘들어”

장사가 힘든 건 다른 곳도 마찬가지다. 근처 또다른 쌀집은 “방앗간을 20년 넘게 했는데, 농사지은 쌀이나 잡곡류를 조금씩 취급했던 걸 이번에 쌀집을 열었다. 하지만 쌀집 손님은 거의 없고 방앗간에 떡 하러 왔다가 보고 조금씩 사가는 정도다”고 말했다.

해남 5일시장 내 상인들도 마찬가지다. 20년 넘게 쌀장사를 했다는 모 할머니는 지난 11일 장날 손님이 고작 4명이었다.

“오늘 하루 6만원정도 폴았어. 마진은 얼마 안 떨어진디 나하고 동생하고 같이 한께 절반 나눠야되야. 재래시장 오는 사람들도 줄어들고 쌀집 오는 사람들은 더 줄어들었는디 말이여”

또다른 상인도 울상이다. 잡곡류 가짓수만 해도 31가지에 참기름까지 팔고 있지만 손님이 없어 낮잠까지 잤을 정도다.

“해남장 장사꾼들 다 장사 안 돼서 아우성이여. 벌려놓은 장사 재고가 많아서 접지도 못한디 고생한만큼 돈을 못 버니 재미가 없제”

마트에서 손쉽게 쌀과 각종 잡곡류를 구매할 수 있고, 소포장해서 필요한 만큼 구입할 수 있게 돼 쌀집으로 오는 손님이 뚝 끊겼다는 입장이다.

업주들은 시대가 변하다보니 ‘싸전’의 모습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며 시간이 갈수록 쌀집을 찾기란 어려워질 거라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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