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 성만리는 마을 구조가 독특하다. 마을 한 가운데에 저수지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축조된 저수지인데, 지금은 저수지를 중심으로 주민들이 둥그렇게 살고 있는 형상이다. 한 마을에 모여 살지만 저수지 때문에 띄엄띄엄 떨어지게 됐단다.

그렇다보니 박영배(65)이장의 일거리는 배로 늘어난다. 회관에서 하는 방송이 아예 들리지 않는 가구도 8가구 가량. 그런 주민들에게는 일일이 전화를 해 신청해야 할 서류며 새로운 정보들을 전달한다.

“예전에 차가 없을 때는 마을 한 바퀴 도는 것만 해도 한 나절이 걸렸어. 성만리가 3지구로 나뉘어 있는데, 회관은 2지구에 있거든. 저수지 건너편에 사는 노인들은 회관 나오는 게 힘들어서 자주 오지도 못해”

실 세대수 41가구 중 독거노인이 10가구 정도 되는데, 회관에 자주 나오지 못하는 노인들은 따로 찾아뵙고 안부를 여쭈어야 한단다. 거기에 심부름은 덤이다. 공공요금 고지서를 확인시켜드리기도 하고, 대신 납부하러 은행에 다녀오기도 한다. 주민들 연세가 많은 마을이다보니 자연스러운 일이다.

현재 살고 있는 주민들은 모두 82명. 이 중 65세 이상이 80% 이상을 차지한다. 대부분이 평생을 농사에 바친 노인들이다보니 기계조작이나 서류작업에 미숙해 박이장의 도움이 필요하다.

“성만리 사람들은 선해. 매년 추석이 다가오면 울력으로 추석맞이 마을 대청소도 하고 있어. 서로 돕고 상부상조하며 살다보니 조금 떨어져 살아도 화합이 잘 되지. 개발위원장이나 노인회장 등 주민들이 마을일에 적극적이어서 이장하기 수월하고. 매년 음력 2월 1일이면 리민의 날 행사도 해”

박이장이 주민들에게 봉사한 지 어느덧 10년차. 지금은 능숙하게 일을 해내는 그도 마을 일에 훤해지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그의 고향은 신안이다. 박이장 다섯 살이던 해, 해남에 내려가 살던 사촌이 신안으로 돌아오면서 대신 해남으로 내려가게 됐는데, 그 곳이 바로 황산 성만리란다. 어릴 때부터 성만리에서 자라다보니 이젠 고향이나 다름없다.

박이장은 그의 어머니 50세에 얻은 귀한 늦둥이었다. 하나라도 더 가르치겠다는 부모님의 마음에 옥동국민학교 졸업 후 목포로 떠났고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게 됐다.

그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1970년도. 박이장의 아버지는 벌써 75세였다. 당시 일할 만한 사람들은 모두 도시로 떠나는 상황이었다. 연로한 부모님과 함께 일하던 일꾼들과 식모들도 마찬가지.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박이장은 고등학교 3학년에 결혼을 했다.

“결혼한 고등학생이라고 학교에 소문났지 뭐. 그래도 우리 아내가 참 착해. 내가 군대 다녀와서야 성만리로 돌아왔는데 그 동안 우리 부모님 잘 모셨어. 광주에서 살까 싶어 집도 샀었는데, 아내와 부모님이 있어 성만리로 내려왔다가 이 나이 먹도록 살고 있네 그려”

낚시꾼들 때문에 쓰레기 몸살
쌀시장 개방으로 주민 생활 위태로워

박이장은 1998년 첫 이장을 맡았다. 이왕 성만리에 뿌리내리고 살게 됐으니 마을에 봉사하며 살고 싶었단다. 마을을 알아가게 되면서 오지마을이라 불릴 정도였던 성만리를 살기 좋은 마을로 바꾸는 목표가 생겨서였다고.

그가 최우선으로 생각했던 것은 농로포장이었다. 모든 주민들의 생업이 농업이었지만 경운기만 간신히 끌 정도의 좁은 흙길이어서 변화가 시급했다. 지금도 농로포장이 덜 된 곳이 있어 지난해 밭기반 정비사업 설명회도 열렸단다.

주거환경개선 사업도 펼치면서 주민들의 삶도 조금씩 나아졌지만 아직 손 볼 데가 많다. 지어진지 20년이 된 회관은 비가 오면 물이 새 주민들이 돈을 모아 수리했다. 미닫이문이 제대로 열리지 않아 노인들을 위해 교체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언제 될지는 모르겠단다.

그는 이장을 맡으며 꼭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있다. 바로 저수지다. 추수할 때쯤 되면 낚시꾼들이 몰려드는데, 제대로 뒷정리를 하지 않고 쓰레기를 마구잡이로 버리는 통에 주민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단다. 군에 쓰레기 불법투기 금지 안내판이라도 만들어 달라 요청했지만 묵묵부답이어서 올 가을이 걱정된다고.

요즘 박이장에게는 최대 걱정거리가 생겼다. 쌀시장 개방이다. 성실히 농사만 짓고 사는 성만리 주민들에게는 큰 피해가 될 거란다.

“이젠 큰일이야. 쌀시장 개방되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되나 모르겠어. 앞으로는 쌀 생산보다 판매가 더 중요해지는 세상이 될 것 같아. 안그래도 성만리는 오지마을이라 장사꾼들도맨 마지막에 오는데 말이지. 농산품 시장을 개방하고 공산품을 팔았으면 그만큼 농촌에 지원사업들을 많이 해줘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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