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서른살에 사범대 입학한 만학도였어요. 배움의 아쉬움과 절실함을 알았죠. 그래서 직접 아이들을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16년째 화원 청소년의 꿈지기가 되어주고 있는 최진식(58)센터장. 인지리의 13평 마을회관에서 시작한 화원지역아동센터가 초·중학생 공부방, 작은 도서관을 갖춘 지금의 모습이 되기까지는 최센터장과 지역민들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

최센터장은 생활고를 겪으며 자랐다. 목포에서 태어난 그는 형편상 중학교에 바로 진학하지 못했다. 하지만 슴엔 늘상 배움에 대한 갈망이 남아 있었고, 17살이 되던 해 나전칠기 기술자로 일하며 뒤늦게 야간중학교에 진학했다. 늦은 나이였지만 배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군대에 다녀온 후 24살에 고등학교를 진학했지만 졸업할 수 없는 상황이 생겼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검정고시를 치러 합격했고, 서른살이 되던 해에는 목포대 사범대학에 입학했다. 늦깍이 학생이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달려온 값진 결과였다.

졸업 후에는 8년 동안 부천에서 입시학원강사로 일했다. 가정을 꾸리고, 이전만큼 부족하지 않은 삶이었다. 그러던 중 IMF가 터졌다. 주위에서는 생활고를 이유로 조부모의 손에 맡겨지고, 부모가 이혼하면서 제대로 돌봄받지 못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학원조차 보낼 수 없는 형편에 아이들은 밖으로 맴돌았고, 공부를 손에서 놓아버리는 모습이 최센터장의 가슴을 미어지게 했다.

“어렵게 공부를 해왔던 만큼 아이들의 시간이 귀해보였어요. 저라도 도움을 주고 싶었죠. 도시에서도 이정도인데 시골에서는 어떠겠나 싶어 인지리로 내려왔어요. 아무 연고도 없었고 아내도 반대했었지만, 어려운 지역의 아이와 부모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거든요”

지난 1998년 처음 인지리에 무료 공부방을 열었을 때는 인지리 아이들 15명을 데리고 영어와 수학을 가르쳤다. 학원이 없던 화원에서는 독보적인 공간이었던 셈이다. 입소문을 타고 옆 동네 아이들까지 참여하게 되자 13평 공간이 40여명의 아이들로 가득 차게 됐다.

아이들은 늘어나고 공간은 부족해지자 새로운 장소 찾기에 나섰다. 당시 면사무소에서 공공건물이던 빈 예식장을 소개해줬는데, 영리 목적이 아니니 무료 임차를 요구했단다. 덕분에 지난 2002년 지금의 공간에 둥지를 틀 수 있게 됐다.

넓은 장소는 생겼지만 공부방 시설은 갖춰져 있지지 않았다. 귀농 후 늙은호박 농사를 시작했던 최센터장은 농사 수익금과 주변의 도움을 받아 조금씩 리모델링을 해나갔다. 묵묵히 뒷바라지를 해주는 아내의 역할이 컸다. 그 덕분에 공부방에 다니는 아이들은 100여명으로 늘어났을 정도였다.

민간 공부방을 지역아동센터로 전환하는 움직임이 생기면서 지난 2006년 화원지역아동센터도 신고증을 냈다. 신고는 했었지만 제대로 된 운영비조차 지급되지 않던 때였다.

하지만 열악한 상황을 딛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노력이 방송 등에 소개되면서 관심과 후원의 손길을 받게 됐다. 지난 2007년 사회연대은행에서 1억 5000만원을 들여 리모델링을 해줬고, 삼성 꿈장학재단 등에서도 후원이 들어왔다. 자원봉사 문의도 이어져 다양한 수업도 할 수 있었다.

꾸준한 돌봄에 지역민도 관심가져
턱없이 부족한 운영비, 사비들여 아이돌봐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2~3년이면 그만두겠지 라는 인식이 많았어요. 돈도 받지 않고 사비를 들여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게 말도 안 된다는 거였죠. 하지만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니 시선이 달라지더라고요. 대한조선소 오진주 선생님처럼 3년째 매주 찾아와 영어수업을 해주시는 분들도 있고, 관심 가져주는 고마운 지역민들이 많아요”

지난 5월부터는 한국마사회의 지원을 받아 올 12월까지 ‘함아지 교육공동체’사업을 펼치고 있다. 화원의 지역공동체인 ‘함께하는 아름다운 지역사회(함아지)’ 회원들이 지역아동센터 아이들과 함께 수업도 하고, 생태문화탐방을 다니는 거란다. 학원이 없는 화원에서 지역민들이 아이들의 선생님이 되어주며 아이들을 키워내는 것이다.

특히 이 곳에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19명이나 다니고 있는데, 다문화에 대한 지역민들의 관심과 인식전환이 필요하단다.

“저는 아이들 앞에서 다문화라는 말을 절대 쓰지 않아요. 한국말이 서툰 엄마에게 영향을 받아 학습적인 발달이 느린 편이지만 개별지도도 하고 일반 아이들과 어우러지게끔 해주면 올곧게 자라나거든요. 지역민들도 이걸 알아야 해요”

현재 화원지역아동센터의 정원은 49명. 중학생이 20명 정도이고, 나머지는 초등학생이다. 연령대에 따라 하교시간을 맞춰 아이들 학습지도에 나선다. 저녁식사 후에도 8시 30분까지 공부한 뒤, 12인승 차량 한 대를 두 번으로 나누어 아이들을 데려다준다.

화원지역아동센터는 입학을 기다리는 대기인원이 많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조손가정이나 다문화가정에서부터 일반가정까지 화원지역아동센터에 아이를 맡기길 희망한다. 하지만 정원을 늘리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게 최센터장의 가슴 아픈 입장이다.

정원이 49명인 화원지역아동센터의 지원금액은 월 530만원이다. 이 중 15~20%를 프로그램비용으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운영비와 인건비로 사용된다. 하지만 센터장 1명과 사회복지사 2명이 의무인 이 곳에서 월급을 제대로 챙겨주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퇴직금을 포함해 약 120만원을 복지사 월급으로 주고, 최센터장은 70만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정원을 50명 이상으로 늘리게 되면 법에 따라 영양사가 필요하다. 지원금액은 크게 오르지 않으면서도 영양사 월급을 지급해야 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화원지역아동센터의 1년 급식비는 약 3300만원. 학부모들에게 쌀을 후원받고 사비를 들여 아이들의 끼니를 챙겼다. 급식비 지원이 없어도 의무급식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올해부터 급식비가 나와 한숨 돌렸단다.

“지역의 교육여건과 아이들의 돌봄에 기여하는 것에 비하면 지원비에는 현실적인 물가가 반영되어 있지 않아요. 턱없이 부족하죠. 그래도 좋아서 시작한 일이니까 계속 해요. 돈이 모자라 아이들의 교육을 포기할 수는 없잖아요”

어른들의 돌봄이 필요한 건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만이 아니라는 최센터장. 언젠가 모든 아이들이 지역민들의 돌봄과 사랑 속에서 행복하게 자라나길 바라며 그는 오늘도 아이들과 책을 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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