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아동센터는 국가에서 보조금이 나온다던데 후원이 왜 필요하냐는 분들도 있어요. 실상 운영해보면 열악한 상황인데 말이죠”

지난 2005년 문을 연 황산 시등지역아동센터(센터장 장정순). 황산 면소재지에 위치한 시등교회 교인들이 교회의 문턱을 낮추고 지역민들에게 도움을 주자는 생각에서 시작됐다. 황산의 서당이 되어보자는 것이었다.

시등지역아동센터도 처음엔 공부방으로 문을 열었다. 논과 밭에 나가 일하느라 저녁 7~8시에 들어오는 부모들을 대신해 숙제를 봐주고 보호하겠다는 목적에서다. 특히 조손가정이 많아 학교가 마친 후 제대로 된 학습지도가 이뤄지기 어려웠다.

또 생활 전반에 대해 가족끼리 얘기를 나눌 시간이 적다보니, 부모는 아이가 학교에서 나오면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관심 기울이기 힘들었다.

돌봄의 손길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누릴만한 문화적인 시설도 없었다. 황산 면소재지이지만 학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놀이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학교를 벗어나는 순간 아이들은 갈 곳이 없었다. 문방구 앞에서 삼삼오오 모여 군것질 하는 것이 전부였다.

6개월의 준비기간을 거쳐 교회의 1층 주차장을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으로 탈바꿈시켰다. 방을 정돈하고, 책상도 들였다. 아이들은 소문을 듣고 몰려왔고, 이후에는 부모들이 나서 아이들을 맡기기도 했다.

아이들이 늘어나고 정부의 지역아동복지센터 정책이 시행되면서, 지난 2009년 지역아동센터 신고를 냈다. 교회 내 공부방으로 운영되는 것을 독립시켜 하나의 단독 운영체가 됐다. 사무실, 공부방, 급식실, 상담실, 컴퓨터실 등도 갖췄다. 50여 평이나 되는 공간이다 보니 다른 아동센터에 비해 시설이 좋은 편이란다.

하지만 시설이 좋아도 가장 중요한 인력을 구하기가 힘들다. 현재 시등지역아동센터의 정원은 29명. 맡아달라는 주민들은 많지만 자리가 쉽게 나지 않는다. 전학을 가거나 졸업하지 않는 이상 아이들을 몇 년 동안 맡아주기 때문이다.

정원을 늘려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을 더 받고 싶은 마음은 장 센터장도 마찬가지다. 30명 이상 받기 위해서는 법적으로 생활복지사 한 명이 더 필요하다. 하지만 월급도 많지 않은 이 곳까지 와서 일하는 사람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지난해 암 수술을 받은 장정순 센터장이 아직도 센터장을 맡을 수밖에 없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장 센터장이 그만두게 되면 시등지역아동센터 자체가 문을 닫아야 할 위기였던 것이다.

장 센터장은 “저는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있지만 간호조무사, 아동복지교사 등 다른 자격증들도 있어요. 생활복지사 3년, 센터장 3년을 일한 저도 본봉이 130만원이에요. 자격증을 활용할 수 있는 다른 곳에 가면 더 받겠죠. 돈을 보고 하면 할 수 없는 일이에요”라고 말했다.

시등지역아동센터의 지원금은 426만원. 아이들 프로그램비며 운영비 등을 내기 위해서는 복지사들의 법적 최하금액인 145만원을 맞춰 주지 못한다. 아이들 귀가 차량 기름값도 부담돼 교회 차량을 이용하는 것도 다반사다. 연호리, 징의리에서까지 오다보니 차량 2대를 운영하지만 멀리 가는 코스는 1시간 30분가량 걸린단다.

지도교사 구인난, 정원 못 늘려
중고등생도 돌봄 필요

시골이다 보니 자원봉사자를 받기도 어려운 일이다. 그나마 교인들이 도움을 준다며 자원봉사를 해줄 때가 있어 한숨 돌린다. 다양한 사람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하도록 방학 때면 대학생 아르바이트생을 받고, 지난해부터는 해남 3함대 통신지원대대와 연계해 수학·영어 등 전공자 군인들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29명의 아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기 때문에 서로를 배려하며 자랄 수 있도록 매년 초 아동자치회의도 연다. 아이들이 직접 회의를 이끌어가며 지역아동센터 내의 규율을 직접 정한단다.

친구들과 싸울 시 15분간 벌칙의자에서 반성하기, 편식하는 경우 2일간 간식 금지령 등 아이들 시선에서 만든 재밌는 규칙들이다. 직접 만들어 더욱 열심히 지킨단다.

현재 아이들은 미취학 아동과 초등학생들로 구성돼 있다. 한창 예민할 때인 중·고등학생도 돌봐주고 싶은 게 장 센터장의 마음. 하지만 숫자가 많은 초등학생들을 챙기다보면 프로그램 수준이나 시간대가 맞지 않아 아이들이 나가겠다고 한단다.

“중·고등학생 돌봄은 많은 지역아동센터에서 고민하는 부분이에요. 3년마다 나오는 감사 준비 때문에 서류작업에도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고, 현재 있는 아이들을 챙기는 것도 벅찰 때가 있거든요”

다행히 황산에는 올해 문화의 집이 운영을 시작해 한시름 놨단다. 갈 곳이 없어 지역아동센터로 놀러오거나 해남읍에서 방황하던 아이들이 문화의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기 때문이다. 지난주에는 드림스타트 센터에서 황산 지역아동센터와 문화의집이 교류협약을 맺었다. 아이들을 위해 두 곳을 연계해 활용하자는 목적에서다.

“지역에 아이들이 돌아올 수 있게 하려면 사회에 발을 내딛을 때까지 지역의 사랑을 듬뿍 줘서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중요하지만, 이 곳에서 어떻게 자라는지도 중요한 거죠”

황산 아이들과 부모에게 가뭄 속 단비역할을 하고 있는 시등지역아동센터. 문화의 집과 함께 청소년 돌봄에 새로운 길을 열 수 있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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