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리는 온갖 사람들로 북적북적했어요. 상업이 발달해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하나 둘 중앙리에 정착했거든요”

화산 중앙리 이장을 맡은 지 3년째인 엄재영(67)이장. 그는 군대를 제대한 후 고향 석정리를 떠나 지난 1973년 중앙리에 터를 잡았다. 전파상 운영을 시작하면서였다.

중앙리는 온갖 사람들로 붐비던 마을이었다. 다양한 지역에서 상업에 종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이사왔고, 면소재지 근방이었기 때문에 유동인구도 많았다. 상가가 밀집되면서 화산장이 열리지 않은 날에도 손님들로 가득했다.

화산장은 한 번 장이 열리면 지금의 마을회관 주위에서 수협까지 사람들로 빽빽했단다. 주로 화산면민들이 애용하던 장이었고, 지난 1995년까지 그런 대로 유지가 됐다.

하지만 큰 길이 나고 교통이 편리해지자 해남읍 5일장을 이용하는 주민들이 늘면서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화산장은 사라졌지만 중앙리는 지금도 화산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큰 마을이다. 실 세대수 118호, 주민 수는 319명이나 된단다.

주민들 중 상업 종사자는 50% 정도다. 이전에는 더 많았지만 2000년도 이후부터 중앙리 상가가 침체되기 시작했고, 5년 전부터는 가게를 비우는 주민들이 많아졌다. 농업 종사자도 50%정도인데, 장사만으로는 먹고살기 힘들어지자 상업과 농업을 동시에 하는 주민들도 늘었단다.

“다양한 지역에서 찾아온 타지사람들로 이루어진 마을이다 보니 주민들끼리 뭉치는 게 힘들어요. 체육대회 때 중앙리보다 자신의 고향 마을을 응원할 정도였죠. 주민들이 중앙리라는 이름으로 단합될 수 있는 마을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꿈이 생겼어요”

엄이장은 마을에 봉사하다 보면 주민들도 자연히 다른 주민에게 관심을 갖게 될 거라고 믿었다. ‘사사언청(事事言聽)’이라는 말처럼 주민들의 말에 따라 행동하고 관심을 기울여야겠다고 생각했단다.

힘이 닿는 데까지 주민들의 일을 가족의 일처럼 여기고 해결해야겠다고 다짐한 엄이장. 마을 노인들이 전기가 들어오지 않거나 TV, 냉장고 등이 고장나 엄이장을 찾으면 군말 없이 달려가 뚝딱뚝딱 고쳐준단다.

또 주민들이 쾌적하게 살 수 있게 하기 위해 마을 정비에 욕심을 냈다. 가장 먼저 한 사업은 30여년 된 하수구 청소였다. 면사무소를 다니며 노후화 된 하수구 청소를 건의하고, 청소부들에게는 사비로 식사를 대접하며 깨끗한 중앙리를 위해 동분서주했다.

지난 1997년도에 들어온 상수도도 마찬가지였다. 시멘트로만 마감되어 있어 위생상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물탱크 부분은 3천만원을 들여 재정비한 상태다. 하지만 아직 통관은 시멘트로 되어 있어 이장 임기 동안 꼭 스테인리스로 교체하고 싶단다.

엄이장은 중앙리 마을회관을 짓는 게 숙원이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마을회관은 회관용도로 지어진 게 아니라 1층은 상여집, 2층은 수판학원이던 곳이었다. 지난 1998년 건물이 비자 대청소를 하고 회관처럼 사용하고 있다. 현재 화산 보건지소 뒤편에 부지를 마련하고 설계에 들어간 상태인데, 건물을 올릴 자금이 없어 고민이 많단다.

65세 이상 주민이 80% 가까이 되는 고령마을이기에 노인들의 안부를 묻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주민수가 워낙 많이 혼자 하기엔 벅차지만, 마을을 위해 열심히 뛰다보니 이제는 엄이장을 대하는 주민들의 반응도 달라져 뿌듯하단다.

그가 마을 화합을 위해 노력하는 건 사람을 사랑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신념 때문이다. 주민수가 워낙 많은데다가 딱 맞는 사람들만 있을 순 없어 오해도 생기지만, 서로 한 발짝 물러서서 상반되는 점이 있다는 걸 이해하고 다름을 받아들이면 차츰차츰 변하게 될 거란다.

“단시간에 쌓아올린 화합이 아니라, 차근차근 밑바닥부터 탄탄히 다져낸 화합을 이루고 싶어요. 앞으로도 이 마을에서 함께 살아갈 테니까요.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죠. 제지기처럼 주민들의 뜻을 따르다보면 언젠가 주민 단합으로 으뜸가는 중앙리가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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